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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던 그 곳, 친근함을 입다

| 변화하는 프리미엄 푸드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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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마트라지만 너무 럭셔리해 부담스럽기보단 산지 공판장같은 편안한 느낌이 물씬 나는 하남 스타필드의 PK마켓 농산물 코너. 청바지에 헌팅캡 차림을 한 청년 종업원들이 친근한 말투로 시식을 권한다.


‘럭셔리의 끝, 평범’,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지난해 꼽은 키워드 중 하나지만 올해도 이 흐름은 계속 이어진다. 사치가 대중화하니 소비자들은 오히려 평범함과 자연스러움에 더 가치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소비자 심리를 읽은 것일까. 진귀하고 값비싼 식재료, 물건에 손대기도 부담스러울 만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추구하던 프리미엄 푸드마켓도 ‘사람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푸근하고 친근한 재래시장 콘셉트로 매장을 꾸미고 합리적 가격대의 물건도 함께 진열하는 식이다. 프리미엄 푸드마켓의 원조격인 도곡동 타워팰리스 ‘스타슈퍼’부터 인간미 넘치는 하남 스타필드 ‘PK마켓’까지, 변화하는 프리미엄 푸드마켓 트렌드를 살펴봤다.


스타필드 PK마켓·롯데 프리미엄 속속 오픈
상위 1%만 공략하던 매장들 대중화 추세
재래시장 콘셉트에 일반인 접근성도 높혀


초창기에는 부유층 타깃 초고가로 승부
이젠 저가부터 최고가까지 다양한 가격대
건강에 투자하는 포미족·쿡방 증가 영향




“안녕하세요,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포도 한 알 맛보고 가세요. 농약 안치고 순환농법으로 길러서 모양은 못생겼지만 맛 하나는 기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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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마켓 수산물 코너.울퉁불퉁한 콘크리트 바닥엔 수조에서 흘러넘친 물이 스며있어 꼭 수산물 시장같다.


하남 스타필드 지하 1층의 PK마켓. 입구에 발을 내딛는 순간 프리미엄 푸드마켓에 대한 편견은 사라진다. 고급 백화점 식품매장같은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산지 공판장같기도 하고, 동네 시장같기도 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직원도 깔끔한 마트 유니폼을 입은 중년 여성이 아니라 청바지에 헌팅캡 차림의 청년들이다. 친근한 얼굴로 시식을 권하니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결국 사과와 포도, 비트와 로메인 등 산지에서 막 도착한 듯 나무상자 위에 쌓여있는 과일과 채소를 바구니에 담게 된다.

다른 코너도 비슷한 느낌이다. 수산물 코너의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바닥엔 랍스터와 대게 등이 담긴 욕조에서 흘러넘친 물이 무심하게 스며들어 있다. 육류코너에서는 6000원만 더 내면 막 고른 고기를 4m 길이의 철판에서 곧바로 구워준다. 바로 앞 테이블에서 내가 직접 고른 고기를 먹는 게 흡사 동네 정육점 식당같은 콘셉트다. 또 델리코너엔 스페인의 빠에야부터 대만호떡 ‘총좌빙’까지 11개국의 특색있는 요리를 길거리 음식먹듯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지난 9월 문을 연 프리미엄 푸드마켓 PK마켓이 선택한 콘셉트는 이렇게 ‘소박하고 친근한 사람냄새’다. 신현우 점장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제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화려함’보다는 ‘편안함’을 내세웠다”며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상품부터 최고급 상품까지 가격 스펙트럼도 넓다”고 말했다 . 예컨대 육류코너에는 100g에 1만4300원인 드라이에이징 한우부터 100g에 1780원인 호주산 등심이 함께 있다. 주류코너에도 병당 170만원이 넘는 와인부터 1만원대 와인까지 다양하다. 1인 가구를 위해 과일과 채소는 낱개로도 팔고, 곡류코너에선 치아씨드와 렌틸류 등의 식재료를 원하는 만큼만 갈아서 제공한다.

아이와 함께 매장을 찾은 김희연(35·서울 잠실)씨는 “전체적인 매장 분위기가 미국 살 때 자주 다니던 파머스 마켓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은 신선한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는 재래시장 스타일의 마트로, 일반 대형 슈퍼마켓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PK마켓이 신선식품 코너를 설계할 때 파머스 마켓을 벤치마킹해 매장 곳곳에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담아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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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프리미엄’을 내세운 서울 도곡동 롯데 프리미엄 푸드마켓. 동네 마트와는 다른 프리미엄 마트지만 이곳 역시 화려한 인테리어보다는 친근한 느낌으로 매장을 꾸몄다.


이보다 앞서 지난 6월 도곡동에 문을 연 롯데 프리미엄 푸드마켓 역시 ‘대중성’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기존 프리미엄 푸드마켓이 타깃 층을 소득상위 10%이상으로 잡은 반면 이곳은 10~30%로 넓혀잡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제품을 준비했다. 총 7000여 개의 상품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3600여 개의 상품은 기존 롯데슈퍼에서 유통 중인 제품, 2900여 개의 상품은 백화점 식품관이나 다른 프리미엄 푸드마켓 수준의 상품으로 구성했다. 전체의 딱 3%만 드라이에이징 서동 한우 등 최고급 제품이다. 농산코너의 채소는 100% 유기농이지만 기존 롯데슈퍼의 유통망을 활용해 가격거품을 뺐다. 와인코너는 3만원대 와인이 가장 많지만 1만원대부터 100만원이 넘는 최고급 와인까지 가격대별 다양하게 400여 종을 구비했다. 매장의 전체적인 인테리어 역시 대리석같은 고급 건축자재보다 목재를 주로 활용해 친근한 느낌을 주도록 꾸몄다.

롯데슈퍼 커뮤니케이션팀 오세훈 매니저는 “롯데 프리미엄 푸드마켓이 고급형 매장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상위층만을 공략하는 매장은 아니다”라며 “기존 프리미엄 마켓은 인테리어부터 으리으리하고 제품 가격대가 비싸 일반인은 들어가기조차 꺼리지만 우리는 일반인이 들어와서 구경하다가 신기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대중적인 매장”이라고 말했다. 이마트 홍보팀 이경환 과장도 “기존 프리미엄 푸드마켓들은 극소수 부유층을 타겟으로 콘셉트를 설정해 놓은 탓에 점포확장이나 고객층 확장에 장애물이 많다”며 “요즘 새로 문을 여는 프리미엄 푸드마켓들은 백화점 식품관과 대형마트 사이에 무주공산으로 남아있는 고급 식재료 시장을 공략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런 방향 전환이 트렌드를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6전망’ 공동저자 이준영 교수는 “프리미엄 푸드마켓의 대중화는 2015년부터 본격화한 ‘킨포크 라이프’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라며 “일상의 평범함과 여유로움을 즐기되 그 수준은 친환경 유기농 등 최고급으로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타워팰리스에서 시작된 ‘프리미엄 푸드마켓’

초창기 프리미엄 푸드마켓은 소득상위 1%의 부유층을 타깃으로 했다. 2003년 도곡동 타워팰리스 지하에 문을 연 ‘스타슈퍼’가 그 원조격으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진귀하고 값비싼 식재료가 가득했다. 캐비어를 비롯해 푸아그라·트러플 등 세계 3대 진미가 다 있었고, 2L에 1만5000원이라 ‘휘발유보다 비싼 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일본산 해양 심층수는 아예 개장 초기 판매하는 생수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에쁘아스 치즈 등 당시 다른 곳에서는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던 수입산 치즈를 50여종 가까이 모아놓은 치즈코너도 화제였다.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황모(28)씨는 “지금이야 SSG푸드마켓같은 프리미엄 슈퍼마켓이 곳곳에 생겨났지만 당시에는 스타슈퍼에 가야만 구할 수 있는 제품이 많았다”면서 “가격대가 부담이 되긴 했지만 각종 수입 디저트류와 신선식품은 확실히 질적인 측면에서 차별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쿡방, 1인가구 증가 프리미엄 푸드마켓 메스티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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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인테리어에서부터 프리미엄 마트 분위기를 솔솔 풍기는 고급스런SSG 푸드마켓 청담점. 매대에서 파는 물건 역시 트러플 등 최고급 식재료가 가득하다. [사진 SSG 푸드마켓]


프리미엄 푸드마켓이 활성화한 건 2012년 유명 백화점들이 ‘명품 먹거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부터다. 신세계 백화점이 청담동에 문을 연 SSG푸드마켓을 비롯해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은 식품관을 리뉴얼하면서 이태원의 ‘부자피자’와 ‘바토스’, 서래마을의 ‘브루클린 버거 조인트’ 등 유명 맛집을 들여와 푸드마켓(Grocery)과 레스토랑(Restaurant)이 합쳐진 그로서란트(Grocerant) 컨셉트의 고메이494를 선보였다.

청담동 SSG푸드마켓은 최고급 식재료뿐만 아니라 차별화한 서비스와 세련된 인테리어로 화제를 모았다. 매장을 찾는 모든 고객에게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발레 파킹(Valet Parking) 서비스를 제공하고 깨지기 쉬운 물건은 계산대 직원이 스티로폼 포장지에 일일이 담아줬다. 지금은 웬만한 백화점 식품관에서 다 하는 서비스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또 ‘아는 사람들만 안다’는 분홍색 소금, 트러플이 들어간 꿀 등 고가의 희귀한 식재료와 드라이에이징 한우(현재 가격 100g에 2만2000원)를 포함한 2만여 가지 고급 식재료를 갖춰 프리미엄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갤러리아 명품관의 실제 번지수를 딴 고메이 494 역시 오픈 당시 다른 프리미엄 마켓과 마찬가지로 럭셔리한 인테리어와 제품구성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다. 여기에 하나 더, 차별화한 서비스까지 무기로 내세웠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생수·쌀 등의 물품은 차까지 실어주거나 집까지 배달해주는 ‘바이 빅(Buy Big)’ 서비스와 구매한 농산물을 무료로 손질해주고 굽거나 쪄주는 ‘컷 앤 베이크(Cut & Bake) 서비스 모두 갤러리아가 국내 최초로 선보인 것들이다.

이처럼 소수만을 위한 최고급 식재료와 서비스를 고집하던 프리미엄 마켓들이 ‘평범한 럭셔리’를 선택한 배경에는 쿡방·먹방 등 음식 프로그램의 인기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1인 가구 비율같은 사회적 흐름이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고급 식재료가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들만의 음식문화’였다면 최근 쿡방·먹방 등 음식관련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식재료 자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가 높아졌다”면서 “중산층도 좋은 먹거리에 기꺼이 투자를 하게 됐고 그런 면에서 이 흐름을 겨냥한 ‘대중적인’ 프리미엄 슈퍼마켓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영 교수 역시 “건강과 라이프스타일에 돈을 아끼지 않는 포미족(For me)족의 등장이 고급 먹거리 시장 확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먹거리는 저성장기의 대표적인 스몰 럭셔리 상품이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니라면 이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범하게 포장한 프리미엄 마켓이 우리 삶 속에 더욱 더 깊이 파고든다는 전망이다.


 
프리미엄 푸드마켓의 고급 식재료 8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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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땅 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트러플(송로버섯). 인공 재배가 불가능한 데다 땅 속에서 자라 채취가 어렵다. 50g 6만 5000원.

 ② 나폴레옹이 와인과 함께 즐겨먹었다는 에프아스(epoisse) 치즈. 브랜디로 씻어 숙성시킨 치즈로 강렬하고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250g 3만 4000원 대.

 ③ 고기를 진공포장한 후 숙성시킨 ‘웻 에이징(wet aging)’ 한우.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풍미는 좋아진다. 100g 1만 5000원.(판매처 PK마켓)

 ④ 콜럼버스가 '천사의 열매'라고 표현할 만큼 맛과 영양이 뛰어난 열대과일 파파야. 비타민 C와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하며 칼로리가 낮다. 개 당 3500~5000원.

 ⑤ 마누카(manuka)라는 야생 관목의 꽃에서 채집되는 마누카 꿀. 풍미뿐 아니라 항생·향균 효능이 뛰어나다. 100g 1만원~1만5000원 대.

 ⑥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제주 옥돔. 담백하고 깊은 맛으로 생선 중의 생선으로 꼽힌다. 마리 당 3만 5000원 대.

 ⑦ 미네랄이 풍부하고 염분이 낮은 히말라야의 분홍 소금. 과거 바다였던 곳이 육지가 되면서 남아있던 소금이 암석처럼 굳어져 만들어진다. 590g 3만원 대.

 ⑧ ‘왕 중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샤또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프랑스 귀족 만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고 한다. 2005년 빈티지 병 당 178만원.


글=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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