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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포트리스(The Fortress) #9. 규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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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이 꼴이 난 것은 규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신약을 먹은 부작용자들은 이성이 마비되었고 법과 제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신약의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부작용자들을 심신미약 상태로 규정하였고 보호받아야 할 환자로 분류했다. 반면에 그들을 상대하는 정상인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야만 했다. 심지어 제압할 때조차 부작용자들이 부상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비정상적으로 과다 분비된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부작용자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강했고 그런 이들을 상대하기에는 일반인들은 역부족이었다. 그들이 미쳐 날뛰기라도 하면 다치는 건 다반사였고 심한 경우엔 목숨을 잃기도 했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일반인들이 부작용자들을 죽이기라도 하면 처벌을 받았기에 상대하려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만큼 부작용자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사고 치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뒤늦게 법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정치인들은 그것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했기에 시간만 흘려보냈고, 야망을 가진 군부세력이 쿠데타와 동시에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원진은 이제 집에서도 규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단둘이 있을 땐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외부인이 들어온 이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규칙이 있어야 했다. 규칙이 없으면 각자의 기준대로 생각하고 행동을 하게 되고 그것은 반드시 충돌로 연결된다. 더욱이 원진은 동료가 규칙을 무시하고 행동하다 죽는 것을 직접 봤기에 그 필요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굴러들어온 자들이 혼란한 틈을 타 쿠데타를 꿈꾸기 전에 말이다.
 
원진이 모두를 거실로 불러 모았을 때, 외부인들은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내 희경이 그들에게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주었지만 정작 자신도 원진이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원진이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거취에 대해서 논의하려고 모이라고 했습니다.”
 
보원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고, 선경은 예의 그 화난 표정이 떠올랐다. 희경이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원진은 단호한 얼굴로 손을 들어 희경의 말을 막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여러분이 오늘 이 집에서 떠나주셨으면 합니다.”
 
선경이 발끈하며 입을 열었다.
 
“뭐예요? 이 애를 데리고 전쟁터로 나가라는 거예요?”
 
원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네.”
 
그의 짧고 단호한 대답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원진이 말을 이었다.
 
“아무 상의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분들에 대한 호의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내쫓을 수가 있죠?”

 
또 다시 따지는 선경의 시선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밖에 벽과 대문 보이시나요? 저렇게 지어놓은 이유는 침입자들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람들은 저와 상의도 없이 내 집에 마음대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고요.”
 
선경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 지금 우리가 침입자들하고 마찬가지라는 건가요?”
 
“큰 차이가 있죠. 여러분은 지금 제 집 거실에 들어와 있고, 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거죠.”

 
발끈해서 대꾸하려는 선경을 보원이 막았다. 보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을 좀 더 주실 수 있을까요?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해서.”
 
선경이 보원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가긴 어딜 가! 우리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선경의 날선 시선이 원진에게 향했다.
 
“원진 씨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동정심도 없나요? 그런 사람이었어요?”
 
“동정심은 남이 강요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렇게 따지는 선경 씨 태도가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는 선경에게 원진이 대뜸 물었다.
 
“선경 씨, 신약 복용했어요?”
 
고심하는 표정으로 앉아있던 보원이 깜짝 놀라 거의 고함을 치듯 외쳤다.
 
“아니라고!”
 
그의 고함소리에 원진은 순간적으로 그들을 전부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났다. 금세 이성을 되찾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살기가 남아있었기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희경조차 원진의 매서운 표정에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보원은 약간 민망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큰소리쳐서 죄송해요. 선경이가 원래 다혈질인데다 산후 우울증이 좀 겹쳐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원진이 바로 물었다.
 
“시간을 얼마나 더 드리면 될까요?”
 
“네?”
 
“다음 행선지 생각하는데 걸리는 시간.”

 
보원은 비굴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하, 한 달 정도만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일주일 드리죠.”
 
선경이 또 발끈하려는 걸 원진이 말을 이어서 막았다.
 
“그동안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드리죠. 지금은 전시 상황이나 마찬가지니까 민주주의 같은 건 기대하지 마세요. 집 주인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거니까 그게 싫으면 나가시면 됩니다. 이해하셨나요?”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원진이 강조하듯 재차 물었다.
 
“이해하셨나요?”
 

선경의 표정은 부작용자들과 다를 게 없었다. 모든 걸 때려 부수고 파괴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부작용자들과 다른 점은 그런 욕망을 참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원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규칙이 뭐죠?”
 
“간단합니다. 첫째, 제가 지정한 것 외에는 절대 출입을 하거나 만지면 안 됩니다. 특히 저 모니터 룸은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둘째, 임의적으로 외부에 나가거나, 허락 없이 타인을 출입 시켜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제 말에 절대적으로 따를 것.”

 
선경이 악문 이빨 사이로 중얼거렸다.
 
“독재자가 따로 없네.”
 

굳이 대꾸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지만 원진은 말을 했다.
 
“그 말은 여러분을 가족으로 받아들였을 때나 해당되는 말이에요. 외부인에게 독재라는 건 있을 수가 없죠.”

 
내부인과 외부인. 원진은 재차 선을 그어 그들이 착각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외부인이란 사실을 각인시키려 했다. 원진이 말을 이었다.
 
“규칙 어기면 그 즉시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건 말씀 안 드려도 아실 겁니다. 질문 있나요?”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질문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분이 더러워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원진도 알고 있었다. 원진은 먼저 일어서며 보원에게 말했다.
 
“일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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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일어났고, 선경은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면서 보원과 함께 그들에게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그들을 난감한 표정으로 보던 희경이 원진을 돌아보았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원진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자기가 보기에 어때? 선경 씨말이야.”

 
희경이 멈칫했다. 원진이 느끼고 있던 것을 희경도 느낀 것이 분명했다. 원진이 말을 이었다.
 
“이상한 거 없어?”
 
“나는 잘….”

 
잘 모를 리가 없었다. 오래전 이긴 했지만 지난번 집들이 때는 보지 못했던 거친 태도였다. 원진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신약 부작용자가 분명해.”
 
확신에 찬 원진의 말에 희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희경은 선경 부부가 들어간 방문을 힐끗 쳐다보고는 원진에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원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공격성, 다혈질적인 성향, 자기중심적 사고. 더 확인할 필요도 없어.”
 
“오빠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건 아니고?”
 
희경의 말을 모두 부정할 순 없었다. 원진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내쫓을 명분만 찾고 있었으니까. 원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모니터룸으로 향했다.

규칙을 이야기하고 난 이후부터 원진은 보원 부부와 더욱 관계가 불편해졌다. 희경이 간혹 그들 부부와 대화를 하고 원진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원진은 그런 희경을 말리고 싶었지만 희경 성격에 그게 편할 테니, 그냥 편한 대로 하게 해 두었다.
 
“오빠, 단수됐나 봐.”
 
화장실에 다녀오던 희경이 말을 이었다.
 
“물끊어진다는 방송 있었어?”
 
원진은 주방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봤지만 바람소리만 날뿐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얘기 없었어.”
 
계엄군이 수돗물만큼은 그냥 두었다. 가스와 전기 등은 계엄군에 붙은 민간 기업에게 공급을 맡겼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물만큼은 그냥 두었다. 만약 물까지 민영화를 해서 가격을 올린다면 원진부터 시위대에 바로 가담할 생각이었기에 계엄군의 판단은 옳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지.”
 
원진은 주방 별실로 들어가 벽에 붙어있는 레버를 돌렸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직수 파이프에 연결되어 있던 수도관이 물탱크 파이프로 전환되었다. 주방 싱크대에서 수돗물을 틀자 직수일 때보다 수압은 약했지만 물이 흘러나왔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집을 지은 자신이 대견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보원 부부의 방문이 열리며 선경이 아이를 안고 나왔다. 애가 또 대변을 쌌고 목욕을 시키기 위해 나온 모양새였다.
원진이 선경에게 말했다.
 
“목욕시키게요?”
 
선경은 날 선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런데요?”
 
원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안돼요. 단수됐어요.”
 
선경은 원진의 말에 인상을 썼지만 그럼에도 화장실로 들어가 수돗물을 기어이 틀어보았다.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흘러나왔고 선경은 더욱 불편한 표정으로 원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단수라고요?”
 
“단수돼서 물탱크 물로 돌린 거예요.”
 
“그럼 목욕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껴야 돼요. 애기 목욕은 오늘만 벌써 두 번 했으니까 이번엔 티슈로 처리해요.”
 
“애가 똥을 쌌는데 어떻게 안 씻겨요?”

 
원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애가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상식적인 것도 몰라요?”

 
엄마의 고성에 아이가 놀랐는지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원이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원진이 선경에게 말했다.
 
“네, 저는 애가 없어서 몰라요. 목욕은 안돼요.”
 
“이러다 병에라도 걸리면 책임 지실 거예요?”

 
아무리 정상이 아니라지만 이건 아니었다. 원진은 자신도 모르게 발끈해서 대꾸했다.
 
“애 병까지 내가 책임지면 당신 부부가 책임지는 거는 뭐요?”
 
원진이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달은 보원이 슬그머니 나와 선경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선경은 보원에게 아기를 떠맡기며 원진에게 대꾸했다.
 
“집 좀 있다고 유세하는 것도 유분수지,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원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언제든지 나가도 좋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대꾸를 하려던 선경의 입이 막혔다. 입술은 연속 들썩였지만 원진의 귀에까지 도달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원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목욕은 안돼요.”
 
그를 노려보던 선경은 화났다는 것을 발걸음으로 표출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보원은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보원 씨.”
 
원진이 그를 부르자 그가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원진이 말했다.
 
“저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괜찮으시죠?”

 
원진은 그가 무위도식하도록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침입자들이 망쳐놓은 담벼락 위의 전기 철조망을 보수하기로 했기에 보원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전기 철조망을 설치했던 업체를 불러 수리를 해야 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부작용자가 되었거나 계엄군에게 맞아죽었거나 시민군에 가담했거나, 셋 중 하나인 상황이 분명했다. 어느 경우이건 간에 그들은 수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직접 하기로 한 것이다.
보원은 아기를 앉은 채 엉거주춤 대답했다.
 
“아, 네, 물론입니다.”
 
“그럼 준비하고 정원으로 나오세요.”
 
“알겠습니다.”

 
원진은 나가려다 말고 주방 별실로 들어갔다. 원진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선경이 물을 쓸 수 없도록 레버를 원상태로 돌려놓고 별실 문을 잠가버렸다. 별실 문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돌아서는 원진의 말에 뭔가가 차였다. 작은 수첩이었다. ‘육아수첩’이라고 쓰여 있는 걸로 보아 선경의 것이 분명했다. 원진은 무의식중에 수첩을 펼쳤다가 표정이 굳었다. 마침 수첩을 찾으러 나왔던 선경은 원진의 손에 들려 있는 수첩을 보고는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리고 한동안 원진을 노려보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원진의 손에는 육아수첩이 없었지만 여전히 있는 것처럼,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육아수첩에 적혀 있는 엄마의 이름은 다른 이름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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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중앙대학교 졸업. IT 회사 입사, 경영기획, 전략기획, 사업제휴 등의 다양한 직무 경험.
1999년 포털사이트에 <왼팔> 연재. 2001년 출간. 이후 소시오패스를 전면에 내세운 액션 스릴러 <Business is business>(2010), <유령 리스트>(2015)로 액션물 출간.
 
2001.08 「왼팔」
2003.03 「왼팔II」
2005.07 「적경」
2008.06 「피해의 방정식」 (한국 스릴러문학단편선)
2010.01 「위험한 오해」 (한국 스릴러문학단편선II)
2010.10 「Business is business」
2013.11 「사이비」 (원작 : 연상호)
2014.03 「조난자들」 (원작 : 노영석)
2015.08 「유령 리스트」
2015.10 「살인의 기원」 2015 부산영화제 북투 필름 피칭작 선정
2016.04 「왼팔 rebuild」
2016.04 「블랙러시안」, 「증오」, 「복수의 미학」 (맨 헌터 태성 시리즈)
2016.05 「십이 죄」
2016.07 「세일즈 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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