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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부(富)’가 아닌 ‘부당하게 축적된 부’에 분노”

[INTERVIEW]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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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턴 교수는 "평등한 기회가 제공돼 더 많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어야 저성장 같은 당면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본 저성장 시대의 해법은 뭘까.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불평등의 심화’ 논란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달 28일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2016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 공유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앵거스 디턴(71)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중앙SUNDAY가 단독으로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거구의 디턴 교수는 한 번 밝게 웃은 뒤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들은 불평등 자체보다도 부유층을 쫓아가기 어려워진 현실에 불만이 쌓여 분노하는 것”이라며 “교육을 통해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저성장 흐름에 대해서는 투자와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디턴 교수와의 인터뷰 자리에는 경제학자인 김준경 KDI 원장이 동석해 인터뷰어로 적극 참여했다.
저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에서 현 인류와 세계가 어느 때보다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만, 여러 국가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공정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썼다. 불평등의 심화에 대해 어떻게 보나.
“불평등은 양면적이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그는 저서에서 ‘과하지 않은 불평등은 노고와 혁신에 대한 유인책(incentives)을 제공하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성공하는 자와 성공하지 못한 자가 생긴다. 문제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부유층을 쫓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충분하지 못해 빈곤층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계층 사다리가 사라지면서 빈곤층을 중심으로 부자에 대한 분노도 확산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평등 자체에 분노하기보다는 간극을 좁히려 쫓아갈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한다. 부(富)에 분노한다기보다, 부당하게 축적된 부에 분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후보 지지자들은 단지 불평등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 아니다. 억만장자인 트럼프 자체가 불평등의 표본 아닌가. 그들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 때문에 불평등이 발생하며, 부유층과의 차이를 좁히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영국인들이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런 분노 표출의 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충분히 내면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확산해야”
한국에서도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금수저(Gold Spoon)’ ‘흙수저(Dirt Spoon)’란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다.
“교육이야말로 불평등한 기회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우수한 교육 시스템과 내용을 통해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 빈곤층도 성공할 수 있어야 하며,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회적으로 확산돼야 한다.”
성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뭔지 KDI에서 한국인들에게 물어본 결과 20~30대 젊은 세대의 50% 이상은 노력보다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60대 이상 노년 세대는 78%가 노력을 꼽았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세대 간 견해 차이도 크고 세대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매우 슬픈 일이다.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세계 다른 국가들도 이미 겪고 있는 문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평등한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무궁무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 젊은 세대가 과거 성공했던 세대로부터 거부당하면 안 된다. 예컨대 만약 한국에서 과거에 성공한 대기업이 젊은 세대의 가능성을 펼치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정치권이 이를 해결해줘야 한다.”
한국의 경우 실질적인 소득 불균형의 문제도 심각하지 않나.
“지난 5월 방한했을 때 한국의 소득 분배 현황에 대해 살펴본 적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크게 나빠 보이진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간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엔 대체로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이것도 어찌 보면 세대 간 갈등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젊은 인재들이 본인의 역량을 제대로 표출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이전 세대가 이걸 막아선 안 된다.”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역할이 커져야 할까. 재분배와 반독점 규제, 정치 개혁 등을 통해 말이다.
“분명 정부가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사람들이 ‘정부가 우리의 생각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큰 문제다. 사람들이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이런 문제가 극복된다. 많은 사람은 소수의 엘리트가 의회를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정치적인 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독점 규제나 정치 개혁과 같은 정부의 역할은 미국과 유럽에선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동분배율(labor share:생산된 소득 중 노동에 대해 분배되는 비중)이 처음으로 더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반독점 규제 때문으로 본다. (다만 그는 이날 세미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재분배만으로는 불평등이 제대로 해소될 수 없다”며 “뒤처지는 집단이 없도록 평등한 기회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정부 역할론의 일환으로 일각에선 부자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부유세에 찬성하진 않는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처럼 부유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미국에선 많은 사람이 여기에 찬성하지 않는다. 부유세의 문제는 정당한 방법으로 정당하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까지 과도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건전한 동기 부여에 걸림돌로 작용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저성장 극복 위해 '지적 혁신' 해야
한 강연에서 지금의 저성장 문제를 극복하는 열쇠로 '지적 혁신(intellectual innovation)'을 강조했다.
“혁신이란 현재의 성장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경제 발전의 역사를 보면 늘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에서 혁신이 탄생했다. 언제나 성장의 열쇠는 혁신이다. 지적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한다는 개념이다. 애플 아이폰이나 삼성 갤럭시 같은 스마트폰이 지적 혁신의 좋은 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차나 우버의 공유경제 모델도 인상적이다. 기업뿐 아니라 학계·정부에서도 이런 혁신은 일어난다. 예컨대 제약 부문의 기초 연구는 정부 산하 기관이나 연구소 등에서 많이 수행되고 있다. 이런 데서 나온 결과물을 토대로 기업들이 시너지 효과를 통해 더 혁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하는데도 왜 더딘 저성장의 문제가 생길까. 여기에 대해선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과감한 투자가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 더 나아가 생산으로 이어진다. 최근 미국·유럽에선 금융위기로 인해 투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한국은 일본처럼 고령화 추세로 저성장 늪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어떤 정책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연금과 의료보험으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연금 정책의 경우 항상 한 발 앞서서 설계해야 한다. 인구통계학자들이 향후의 고령화 집단 형성에 대해 수치로 분석하면 이에 맞게 정책을 수립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 연금에 돈을 붓는 젊은 세대가 ‘나이가 들었을 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의료보험의 경우 국가적인 체계를 갖춘 한국은 비용 통제 측면에서 미국보다 나은 상황이다. 미래에는 암 관련 신약이 많이 나오는 등 수명 연장이 늘어날 것이다. 이때마다 어려운 의사결정을 해야만 하는데, 문제가 생기기 전에 국가적으로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외 원조를 받는 게 경제 발전엔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런데 한국은 1960~7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엄청난 해외 원조를 받았다. 한국은 왜 예외였나.
“해외 원조가 모든 상황에서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아파서 약을 줬을 때 어떤 경우는 약이 잘 듣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에는 해외 원조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한국은 전쟁 이후 열성적인 교육열과 강력한 통치에 힘입었다. 또한, 한국인 스스로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했다.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제 성장에 대한 강한 의지가 한국인들에겐 있었다. 해외 원조에서 중요한 건 돈보다 지식의 이전이다. 지식의 공유가 원조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다.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들엔 지식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발전은 고속성장기에 상대적으로 빠르고 평등하게 이뤄져 쿠츠네츠(Kuznet)의 가설이 잘못됐다는 것을 입증했다. 농촌·농업 부문에 대한 보조금 지원, 새마을운동 같은 농촌지역개발프로그램을 통한 직접적 정책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이런 상향식(bottom-up)의, 그리고 지역공동체 중심의 개입이 경제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정부가 지원하는 것 사이에 이견이 생겼을 때 조정해가면서 경제는 발전한다. 한국에선 정부와 농촌이 협력을 했고, 이런 부분이 발전의 요인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감으로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드느냐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삶과 행복을 안겨줄까.
“온종일 얘기해도 부족할 주제다. 예전에 연구해본 바에 따르면, 행복을 어떤 감정적인 기분이라고 정의할 경우 사실 물질적으로는 부가 어느 정도 행복감 형성에 기여했지만, (부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된 후에는 더 기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본인의 삶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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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경 KDI 원장(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앵거스 디턴 교수 인터뷰에서 질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디턴 교수
‘항상소득이 변해도 소비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디턴의 역설(Deaton Paradox)’을 처음 이론적으로 입증했다. 디턴 교수는 소비자 행동 분석을 통한 미시적 접근법으로 소득 증감에 따라 소비도 변한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항상소득가설’을 반박했다. 디턴의 소비행태 분석법은 2000년대 개발도상국의 빈곤과 소득불평등 문제를 연구하는 데 폭넓게 활용됐다. 미·거시경제학과 계량경제학·개발경제학 등을 연구하는 데 있어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경제 발전과 빈곤 연구 등으로 경제학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저서로 불평등의 기원을 논한 『위대한 탈출』 등이 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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