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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알 수도 있는 사람 #9. 음험한 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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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달았다. 적막하고 한없이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배처럼 잠 속엔 부드러운 햇살만 가득했다. 바람도 물결도 꿈도 없었다. 용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속에 서서히 가라앉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물속에 잠기면 숨을 쉬지 못할 것이라는 초조함이나 두려움은 일지 않았다. 잔잔한 물결이 사타구니를 축축하게 만들더니 허리를 타고 올라와 가슴을 적셨다. 물은 느린 속도로 목을 지나 입술을 삼키고 코를 막았지만 용주는 인어처럼 물속에서 숨을 쉬었다. 멀리 물속임에도 바다의 결을 지닌 사막이 보였다. 끝을 감춘 사막.
 
‘언젠가 저 사막 위를 달리게 되겠지. 혹시 거기에 가게 되면 용미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눈을 빤히 쳐다보던 용주의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흩뜨려버리는 용미의 손이 보였다. 왜 미안한 건지 모르겠지만 한 번쯤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미래는 괜찮을 거란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용주는 놀라 잠에서 깼다. 그녀였다. 노을은 아직 창틀에 걸려 있었다. 용주는 창가 쪽 벽면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방안에 들어온 뒤 20분쯤 흘렀다. 하지만 그 어느 시절에 들었던 잠보다 깊고 길고 달았다. 세상의 생김새도 세상의 이치도 세상의 즐거움이나 슬픔 따위도 알지 못했던 잠이었다.
 
그녀 뒤로 두 명의 여자가 상을 들고 들어왔다. 상 위에 수 십 가지의 찬과 밥과 찌개, 국이 깔려 있었다. 여사장 손엔 술병과 술잔이 놓인 쟁반이 들려 있었다. 언제 켜놓았던 것인지 천장에 매달린 전등에서 불빛이 쏟아져 내려 노을과 섞였다. 용주의 눈앞에 상이 펼쳐졌다. 색색의 반찬이 색색의 찬기에 담겨 있어 찬기마저 하나의 음식처럼 보였다. 상을 내려놓던 한 여자는 붉은 색이 감도는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고 맞은편 여자는 푸른색이 감도는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흰색 저고리에 검정색 치마 차림이었다. 방안은 온갖 색으로 넘쳐났다. 그래서 어지러웠다. 단조로운 색깔의 음식들만 먹어왔던 용주였다. 뭔가를 먹으면서 색 같은 걸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인 듯했다.
 
2년쯤 전 용주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취재차 학예사를 만나러 간 일이 있었다. 학예사가 일을 마무리하는 동안 그의 배려로 한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그날 전시되었던 작품은 폴 자클레의 판화 작품이었다. 강렬한 색감과 안정된 구도, 아시아의 색채라는 주제 속에 등장한 서구적 이미지의 인물들···. 판화가 그처럼 다양한 질감과 색감을 나타낼 수 있다는 걸 용주는 폴 자클레를 통해 처음 알았다. 용주는 취재 일은 까마득히 잊고 폴 자클레의 판화 속에 빠져 둥둥 떠다녔다. 용주는 특히 한 작품 앞에 서서 발길을 떼지 못했다. 플루왓이라는 한 작은 섬의 여자를 표현한 ‘플루왓’이라는 작품. 학예사가 용주를 찾아와 그를 부를 때까지 용주는 그 작품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보라색 꽃, 풀로 가린 몸, 여인의 풍만한 하체. 용주는 지금 폴 자클레의 작품 속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용주 앞 밥그릇의 뚜껑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곁에 술잔을 밀어놓았다.
 
“이 동넨 머루가 유명합니다. 이건 저희 집에서 담근 머루주 입니다. 20년이 넘은 머루주죠. 와인보다 훨씬 좋다고들 합니다.”
 
귀한 손님 대접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눈앞에 어지럽게 떠다니는 색깔들,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수평선과 물결들, 풀냄새가 나는 여자. 용주는 그것들에 이미 취해 있었다. 그녀는 용주의 잔에 술을 따랐다. 용주는 두 손으로 술을 받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요?”
 
“몽월당의 역사 같은 거죠.”

 
용주는 잔을 비운 후 서둘러 녹음기를 꺼내 국그릇 곁에 놓았다. 그녀의 눈길이 녹음기에 머물렀다가 용주의 얼굴로 향했다.
 
“몽월당은···.”
 
몽월당의 역사는 400년쯤 되었다. 몽월당은 서원이었다. 끝내 중앙에 진출하지 못한 그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올린 서원이었다. 그녀의 집안은 왕족이었다. 인근에서 조금이라도 글 깨나 읽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작자들이라면 몽월당에 드나들었다. 한양에서 유람을 떠난 양반들도 몽월당을 찾아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져 간 집주인을 위로했다. 사람들이 몽월당에 드나드는 이유는 집주인이 왕족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몽월당의 부인네들이 지닌 각별한 음식 솜씨를 맛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몽월당은 언제나 사람들로 들끓었다. 그렇게 사람들로 들끓는 걸 보면 머잖아 몽월당의 주인은 중앙의 큰 권력을 잡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몽월당을 지은 본인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진 것보다 더 큰 고민이 있었다. 대대로 아들을 하나씩 밖에 두지 못했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아들은커녕 여식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저주가 그녀의 아버지 대에까지 이어지더니 그녀 대에 와서는 아예 아들의 씨가 말라버린 것이다. 그렇게 가문의 대가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선대가 이루어 놓은 서원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몽월당을 물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운명이란 저울과도 같아서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는 법인 모양이다. 자식을 줄줄이 낳지 못한 몽월당의 부인들은 손 귀한 집안에 큰 사랑을 얻진 못했지만 음식 솜씨 하나만큼은 인근에서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녀도 그걸 물려받았다. 나물을 하나 묻혀도 그녀의 손이 닿으면 천상의 나물로 바뀌었고 밥을 지어도 여느 여자들이 지은 밥과 달리 찰기와 윤기가 잘잘 흘러 오로지 밥만 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밥맛이 좋았다. 아무리 시원찮은 재료라 하더라도 몽월당 부인네들의 손이 닿으면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찬 못지않게 훌륭한 음식으로 변신했으며 임금조차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상위에 올라올 정도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낼 줄 알았다. 몽월당 부인네들의 요리 솜씨가 선비들이 몽월당을 찾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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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어머니는 선대 여자들과 달리 한 명의 아들도 낳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음식 솜씨는 탁월했다. 수십 가지의 김치를 담가도 한결같이 감칠맛이 돌아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인근의 사내들이 술병을 들고 찾아와 김치 맛보기를 목이 타도록 기다릴 정도였다. 인근 동네의 모든 음식의 기준을 만들었으며 잔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그녀에게 물어갔다. 힘으로 땅을 점령했던 일본인들도 그녀의 음식 솜씨에 놀라 그녀를 경배했으며 이미 그녀의 유명한 음식 솜씨는 대륙 깊은 곳까지 소문이 나 전쟁 때에도 몽월당은 장독 하나 깨지지 않은 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죄스러움을 음식에 쏟은 그녀의 열정은 깊고도 슬펐다. 그런 집안에서 그녀는 말을 배웠고 요리도 같이 배웠다. 그녀는 가문 음식 솜씨의 절정을 이루었다. 한번 그녀의 음식 솜씨를 맛 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녀의 아버지는 몽월당을 서원에서 음식점으로 개조했다. 그래야 서원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몽월당은 현재에 이르렀다. 그녀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도 몽월당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어머니 늘 그러셨어요. 음식을 만들 때 감정이 실리지 않으면 결코 좋은 음식이 나오질 않는다고 그러셨죠. 슬픔이, 기쁨이, 고독함이 담아야 한다고 그러셨어요. 사람들은 그 감정을 먹고 반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음식을 먹는 입과 위는 즐거웠다. 모든 찬은 혀가 안으로 말려들어갈 정도로 감칠맛이 돌았고 대부분의 음식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한번 첫 가락이 가면 서너 차례 저절로 손이 갈 정도로 맛이 깊고 풍부했다. 용주는 밥은 밀어버리고 찬과 그녀가 따라주는 술로 허기를 채웠다.
술병은 이미 바닥이 났다. 그녀는 술을 더 가져오라고 인터폰을 넣었다. 마지막 잔이 비워지기 전에 두 병의 술이 더 들어왔다. 술잔이 저절로 오갔다. 그녀도 용주가 따라주는 족족 마다하지 않고 술을 받았다. 머루주는 과일주스처럼 부드러웠지만 뱃속으로 들어가면 양주처럼 창자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가능하다면 부모님 취재도 좀 하고 사진도 찍으면 좋겠네요.”
 
고개를 돌리고 잔을 수줍게 비운 후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버진 5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닌 49일 전에 돌아가셨죠.”
 
“그럼 오늘이···.”
 
“네, 오늘이 어머니 49제예요. 제가 49제를 치르느라 손님을 안 받기로 한 거죠. 선생님만 빼고 말이죠.”
 

용주는 그제야 술잔을 비우면 비울수록 그녀의 눈이 더 축축해 보였던 이유와 한적한 몽월당의 풍경이 이해되었다. 용주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입맛은 살아 있었지만 더 밀어 넣을 여유가 없었다. 상 위 찬기의 찬은 이러 저리 헤쳐졌어도 여전히 알록달록한 색깔은 물론 윤기 또한 그대로였다. 수저를 내려놓은 후에야 용주는 그녀가 하는 양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용주의 젓가락이 닿았던 찬을 다시 이리저리 모아 가지런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면 찬은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살아났다. 퍼내고 또 퍼내도 비워지지 않는 마법의 항아리처럼 찬이 그대로 남아 있던 이유를 깨달았다. 용주는 더할 나위 없이 풍족했다. 기분 좋은 피로와 취기가 피를 따라 전신을 돌았다. 방바닥에 온기가 느껴졌다. 어느새 창밖의 수평선은 어둠에 지워졌고 섬들의 검은 형체와 집어등을 단 배들이 출렁거렸다. 벽에 걸린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잠깐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는 잔을 들고 홀짝였다.
 
“···부모님 살아생전에는 한 번도 말 한 적 없지만··· 가끔은 여기가 지긋지긋해요. 매일 똑같은 바다, 수평선, 산, 길 그리고 식탐에 눈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그럼, 정리하고 도시로 나가시면 되잖아요.”
 
용주는 가볍게 말했다. 그는 생각은 심각하지만 체질적으로 심각한 이야기 듣는 건 싫어했다. 그런 분위기도 싫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딱 질색이었다.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저도 어머니 돌아가시면 여길 정리하고 서울로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떠나지지가 않네요.”
 
말을 채 끝내지 못한 그녀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그녀는 느닷없이 흐느꼈다. 용주는 길게 뻗으려던 다리를 접고 긴장했다. 길고 흰 그녀의 뒷목이 용주의 눈에 들어왔다. 말아 올린 머리카락의 끝선에 검은 점 하나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녀의 비밀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용주는 점에서 눈을 뗀 후 연거푸 잔을 비웠다. 그녀의 어깨가 바다 위의 잔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어느 순간 검정색 치마 위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용주는 문득 상 위에 차려진 모든 음식 속에 그녀의 눈물과 욕망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주는 여자의 눈물을 보며 잔을 비웠다. 슬픈 침묵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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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추계예술대학교 문예 창작학과 졸업
· 상명대 대학원 소설 창작학과 재학 중
· 2012년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그 외의 작품
·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불의 기억’
· ‘13월’
· ‘9일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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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