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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oo으로 배웠네-시즌2] ‘센 언니’의 연애 방정식

“그러니까 이번엔 잘 좀 해봐!”

연이은 소개팅 실패에 친구 A는 답답하다는 듯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번엔 옷도 사서 입고, 화장도 곱게 하고, 센 척도 하지 말고, 괜히 바쁜 티도 내지 말고, 응?! 내 말 듣고 있니?”

“알겠어, 알겠다고.”

나는 슬픈 얼굴로 지는 해를 바라봤다. 저 붉은 노을이 마치 “네 인생에 더 이상의 연애는 없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 나는 ‘소개팅 백전백패녀’였다. 입사 이래 회사 선후배, 대학 동기, 동네 친구, 심지어 일로 만난 취재원까지 동원해 소개팅을 했지만 그 인맥이 한바퀴 도는 동안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지 못했다. “남자친구는 없냐?” “왜 연애를 못하냐?” “결혼은 언제 할거냐”는 주변의 닥달과 간섭에 마음만 초조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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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초조,고통…내 인생에 더 이상의 연애는 없나

마당발인 친구 A는 나에게 세 번쯤 소개팅을 시켜줬다. (참 좋은 친구다.) A는 외로움에 지쳐 백골이 되어 있는 내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새로운 소개팅을 주선하는 참이었다. 그리고는 잔소리를 잊지 않았다.

“이제 내 인맥도 한계다. 더는 없어. 그러니까 제발 내숭도 떨고 잘 좀 하라고!”

나는 소개팅을 앞두고 배수의 진을 친 장수처럼 비장하게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비(非)호감 내지는 무(無)호감으로 만든 것일까?

내 성향 때문일까. 나는 굳이 분류하자면 ‘센 언니’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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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들이 뭔데 날 퐌단홰!

일단 경찰서를 밥먹듯이 드나들었고(경찰 출입기자니까), 기가 센 형사나 사기꾼을 상대하느라 싸움꾼이 되어 있었으며, 회사에서는 술고래에 화를 잘 내는 무서운 선배로 통했다.

한 번은 여기자와 연애를 해봤다는 지인으로부터 이런 소리도 들었다. “솔직히 여기자와 결혼하는 건 조금 생각해봐야겠어. 세 가지 이유 때문인데, 1) 세다 2) 똑똑하다 3) 바쁘다.” 처음에는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반문했지만, 이렇게까지 소개팅에 실패하고 나니 정말로 내가 세기 때문에 남자들이 싫어하는 건가 싶었다. 연애의 바다에서 나 같은 ‘센 언니’란 짝 없이 전진하는 심해어인지도 몰랐다. 그래, 세상이 그렇다면야, 내가 바꿀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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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완료!

나는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염가에 사입고 소개팅 장소에 나갔다. 어색하게 저녁 메뉴를 고르고, 더 어색하게 자기 소개가 이어졌다.

“많이 바쁘시죠? 휴일에도 잘 못 쉰다고 들었는데.”

“그럴리가요. 그렇게 바쁘지 않아요. 한국 사람 중에 뭐 안 바쁜 사람 있나요?”

나는 주 6일 근무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있었지만, 저녁이 있는 사람처럼 여유롭게 거짓말을 했다.

“술은 잘 드세요?”

“아. 술이라.”

팔뚝을 비틀면 어제 퍼마신 ‘소폭’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지만, 나는 마치 '생(生)간'의 소유자처럼 맑은 얼굴로 또 거짓말을 했다.

“잘 못 마셔요. 맥주 한 잔 마시면 어지럽더라고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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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먹은 소폭이 올라온다.

“의외시네요. 경찰서 출입하는 건 어때요? 듣기만 해도 험한데.”

“아유, 저는 사건보다는 기획 기사를 주로 쓰는 편이에요. 그렇게 험하지 않답니다.”

며칠 전 취재한 살인 사건이 떠올랐지만 이내 머릿 속에서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 온화한 얼굴로 상대방을 안심시켰다. 그래 뭐, 대승적인 차원에서,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소개팅남과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상하게 허무해졌다. 연극이 끝난 뒤 두터운 무대 화장을 지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숭 떤다고 남긴 봉골레 파스타가 눈에 밟혔다. 나는 허기진 마음에 맥주 다섯 캔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바닥에 퍼질러져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키는데 “한 잔 먹으면 취해요”라고 웃던 게 생각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감춰야 하다니!

이렇게까지 부자연스러워야 하다니!!

이렇게까지 사랑을 구걸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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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싫다 싫어! 꿈도 사랑도!!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내 자신도 사랑할 줄 모르면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괜히 세상 탓을 했다. 일 잘하고, 일 많이 하는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센 언니)을 원할 때는 언제고, 연애할 때는 고분고분하고 외모까지 잘 가꾸기를 바라는 것이냐. 아, 싫다 싫어. 꿈도 사랑도.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나는 그 이후 아주 오랫동안 소개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를 찾는 대신 열심히 일을 했다.

세상도 조금씩 변했다. 사람들은 성 역할 바꾸기를 통해 가부장제를 풍자하는(JTBC '최고의 사랑2') 코미디언 김숙에 열광하게 됐고, 자기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래퍼 제시에게 연호하며,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하는 전사 퓨리오사(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대중문화 속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교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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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세 퓨리오숙

“그렇게 세서 연애는 하겠냐”는 비아냥은 여전하지만 나는 괜찮다. 두터운 가면을 쓰고 사느니, 나는 그냥 나답게 살기로 했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센 언니와의 연애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세다는 건 독립적이고 심지가 굳고 강하다는 뜻이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그건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센 언니를 만난다면 당신 역시 ‘남자이기 때문에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고, 나는 그런 당신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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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

이 험난한 세상에서 세다는 건 얼마나 큰 메리트인가.

나는 더욱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퓨리오 기자 girlcrush@joongang.co.k*r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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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