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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더 이상 대기업의 낙수효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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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
중앙SUNDAY 플래닝에디터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27일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무릎을 꿇었다. 지난 9일 청문회에서 눈물을 흘렸다가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과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악어의 눈물’이란 비난을 받았기 때문일까. 최 회장은 의원들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사재 출연 의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 회장은 이번 고비만 넘기면 피 같은 개인 재산을 지켜낼 것이다. 검찰의 수사도 영장이 기각되면서 쉽지 않은 분위기다. 결국 최대 피해자들은 이미 해고당했거나 난민처럼 바다를 떠도는 선원들이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강대 교수 시절 대기업 중심의 성장 논리를 펴 왔던 경제학자다. 그랬던 그가 최근엔 대기업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기업이 성장하면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나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사라졌다는 논리에서다. 야당 의원으로 변신하다 보니 입장이 변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성은 있어 보인다. 그는 정치권 영입을 제의받기 훨씬 전인 지난해 8월 ‘주류 학자의 참회록’이란 정년퇴임 강연에서 철저한 자기 고백을 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 양극화, 취업난에 시달리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신념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최근 대통령을 포함한 1급 이상 공직자, 대기업 임원은 물론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까지 임금을 삭감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대신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거나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자는 것이다. 대기업 노조의 표를 얻어야 하는 야당 의원으로선 참 용기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절대 양보할 리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철도·지하철 노조 등은 현재 파업을 벌이고 있다. 대우조선·한진해운 부실 대출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국책은행 노조원들은 지난 23일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주도했다. 파업 집회에선 노라조·바다 등 인기 가수들의 공연도 벌어졌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일본이 걸어온 길을 가고 있다. 어쩌면 대기업이 수출을 주도하는 일본의 경제발전 전략을 벤치마킹한 숙명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본의 구조적 병리현상을 상징하는 일본병(日本病)까지 전염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가네코 마사루 게이오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 경제를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분석한다. 그는 고다마 다쓰히코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와 지난해 말 『일본병』이란 책을 출간했다. 경제학과 생명과학을 융합한 독특한 시각으로 일본 경제의 문제점을 진단한 내용이다. 그는 현재 일본이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은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된 중증 상태라고 주장한다. 특히 돈을 풀어 대기업의 주가를 부양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아베노믹스’는 고통을 잠깐 넘기는 마약과 같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대해선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워진 대졸자 취업률을 들어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반면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부정론이 맞서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초기의 추진력을 잃었으며 장기화되면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아베노믹스의 성패는 대기업에 풀린 돈이 얼마나 일반 국민에게 흘러 들어가 선순환을 할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이 경제의 역동성을 사라지게 한다고 말한다. 사회가 양극화되면 수치상으로 성장하더라도 일반인들의 삶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나빠진다. 미국도 경제 규모가 1970년대 후반의 두 배로 커졌지만 노동자들의 구매력 기준 실질임금은 늘지 않았다. 한국의 일하는 사람 100명 중 14명만 대기업에서 일한다. 상위 10%가 소득의 45%를 가져가는 구조다.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는데 청년고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청년들이 꿈을 잃은 나라는 미래가 없다. 대주주와 기득권 노조의 고통 분담을 동반한 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대책도 약발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한국도 무기력하게 장기 침체에서 못 벗어나는 일본병에 전염될 것인가.


정 철 근
중앙SUNDAY 플래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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