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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바람결에 흩날리고 강을 따라 떠도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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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람들은 사내들이건 여인들이건 늙었든 젊었든 너나할 것 없이 나한테 달려들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이들이 뭘 바라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은 내가 누구 옷이 가장 고운지 평가하길 바랐다. 여행가라는 말에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이들의 여러 옷을 봤을 테니 안목이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진땀이 났다. 말을 잘못했다가는 두고두고 미움 받을 터였다. 나를 데려다준 선장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었다. 도리 없이 못 알아듣는 척했다. 선장은 그런 날 보며 피식 웃고는 배에서 짐을 내렸다. 다행히 사람들은 선장이 새로 가져온 물건에 눈을 돌렸다. 선장이 내린 물건은 대부분 염색 염료였다. 사람들 옷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들은 이미 온갖 색으로 옷을 물들일 줄 알았다. 그런데 염색 염료라?
 
나무 그늘에 누워 땀을 식혔다. 나뭇가지에 눈이 시리도록 푸른 새가 앉아있었다. 새가 날개를 펼치자 날개 밑에서 붉은 깃이 튀어나왔다. 새는 푸르고 붉은 깃을 이리저리 조합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그 앞에 있는 새는 비슷하게 생겼으나 색이 훨씬 옅었다. 다른 새가 날아와 옅은 색 새 앞에서 부채춤을 추듯 자기 깃을 구석구석 보여주며 춤을 췄다. 새들의 구애 중 이렇게 복잡한 춤과 노래는 처음 보았다.
 
섬은 일 년 내내 날씨가 좋아 고되게 작물을 심고 가꾸는 대신 자라는 걸 거두면 되었고, 그물만 던져도 물고기가 떼로 잡혔다. 섬사람들은 먹을거리도 잠자리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남는 시간을 옷과 머리 장식에 썼다. 아이들도 여섯 살만 넘으면 자기 옷은 직접 지어 입었다.

이들은 이 섬에서만 자라는 님이라는 갈대 비슷한 풀에서 실을 뽑아 천을 자았다. 님은 베어도, 뿌리만 남기면 다음 날 언제 베었느냐 싶게 왕성하게 자랐다. 섬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들은 모두 염색 염료로 썼다. 거기에 선장이 가져온 염료까지 쓰자 옷들은 갈수록 화려해졌다. 내겐 이 노랑이나 저 노랑이나 같은 노랑인데 이들은 작은 차이에도 완전히 다른 색 보듯했다.
 
옷보다 눈길을 끈 건 님을 이용해 만든 종이였다. 이들은 종이를 엮어 다음 달에 유행할 옷을 예측해 그림으로 그려 돌렸다. 서로 짜는 것도 아닌데 한두 달에 한 번 비슷한 문양이 마을을 휩쓸었다. 유행할 문양과 색을 가장 비슷하게 예측한 자는 잠시 마을에서 칭송받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새로운 문양이 나왔다.

재밌는 사실은 늘 문양과 색이 중요하지, 옷 모양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몸에 한 번 감고 목이나 겨드랑이, 허리에서 묶는 게 전부였다.
 
“저 노파 보이나?”
 
선장이 말했다. 나무 그늘 아래 감색 천에 짙은 귤색으로 큼지막한 꽃을 그린 옷을 입은 쭈글쭈글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다른 옷과 어쩐지 다른 느낌을 주는 옷이나 형형한 눈빛, 반듯하게 앉은 자태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 마을 사람들이 옷을 좋아하지만 본디 이 정도는 아니었다더군. 저 여인이 처음으로 님으로 종이를 만들어 그림을 그려 뿌렸다네. 그러다 하나둘 따라 하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옷에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하기 시작했지. 뭐, 이 마을은 달리할 일도 없지 않나. 그러다 문제가 생긴 게야. 아무도 지난달에 만든 옷은 입지 않으면서 옷감이 남아돌기 시작한 게지. 벽에 걸고, 지붕으로 쓰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나. 그때 내가 온 거야. 운이 좋았어.”
 
“장사가 잘 되겠네요.”
 
“그렇기도, 그렇지 않기도 해. 항구에서 천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매번 새 물건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번엔 꽃과 나비지? 저번엔 벌과 새였고, 그전에는, 아이쿠야, 도대체 무슨 문양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게 돌기도 했어.”

 
우린 일주일 후 섬을 떠났다. 그동안 선원들도, 선장도 아무도 날 유혹하지 않았다. 항구에 도착하자 선장이 말했다.
 
“작별인가.”
 
“감사했습니다.”
 
“이대로 보내기 좀 아쉽군. 자넨 묘한 구석이 있거든.”

 
난 기대를 품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이 유혹한다면 기꺼이 응할 생각이었다. 여인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 온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번 돈은 선원들과 똑같이 나눴고, 선원의 가족 중 누구라도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왔다. 체벌을 가하거나 목청을 높이는 일도 없었다. 선원들은 당연한 일처럼 그녀의 말에 절대적으로 충성했다.
 
“내가 만든 규칙일세. 혼인한다 선언할 게 아니면, 선원들은 사귀면 안 돼. 태운 객도 마찬가지야. 오갈 곳 없는 배에서 어설프게 감정이 오가면 자칫 감당 못할 상황이 발생해.”
 
“전 이제 내렸잖아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요.”

 
나는 아쉬운 마음에 말했다. 여인이 빙그레 웃었다.
 
“자넬 그냥 보내기 싫은 게 나 하나가 아니니까. 다른 선원들도 다 참았는데…….”
 
여인이 작별 인사로 손을 내밀었다.
 
“언젠가 배가 아닌 육지에서, 길에서 만나면, 그땐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거죠?”
 
내가 물었다. 여인은 소리 높여 웃었다.
 
“좋아,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여인과 악수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서가에 도착하자 노인이 안도했다. 준 돈에 비해 오래 걸려 걱정한 모양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울컥한 마음을 감추려 머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새로 온 아이는 네가 가봐야 어딜 갔겠냐는 듯 비웃으며 날 맞이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여행기를 쓰리라 다짐했다. 독특한 풍습을 가진 곳이었으니만큼 자신 있었다. 선장과 나눴던 이야기만 빼고 몇 날 며칠을 여행기를 붙들어 써 건넸다. 그날 밤 설레서 밤잠을 다 설쳤다.
 
아침을 먹으며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간밤에 푹 잠들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식사를 마치자 노인이 방으로 따라오라 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단다.”
 
노인이 말했다. 그런데 왜 그런 얼굴을 하는지?
 
“평범하고 무난한 여행기였다. 네가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제대로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네게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니었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무얼 위해 굶고, 찬물로 허기를 달래고, 이무가 준 돈까지 썼단 말인가? 이무가 목숨을 걸고 마련한 돈이었다.
 
“그래도 이 여행기라면 어쩌면 어느 영주의 눈에는 찰지도 모르겠다만……. 여행기를 앞에 두고 이리 고민한 게 얼마만인지 싶다. 어렵구나, 참으로 어려워…….”
 
영주의 눈에 찰지도 모른다고?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 여행기는 그곳에 간 이라면 누구든 쓸 수 있는 여행기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 여행기를 쓸 때 즐거웠느냐?”
 
“힘들었습니다만……, 다른 여행기라고 쓸 때…… 쉬웠던 건…….”

 
눈물이 쏟아져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여행기는 네가 다른 사람이 되려 한 여행기다. 그간 서가에서 보고 배운 바에 따라 썼어.”
 
“그리하라 하셔서…….”

 
나는 양 손바닥으로 눈을 누르며 제발 눈물이 그치길 바랐다.
 
“그래, 내가 그리 가르쳤다. 내가 네 자질을 망치는 건 아닌지 두렵구나. 그리 울 것 없다. 널 나무라는 게 아니야.”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훗날 어떤 이는 내가 말년에 노망이 들었다 할지도 모르고, 어떤 이는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굴했다 할지도 모른다.”
 
“네?”
 
“네 안의 자질과 여행기 사이에서 답을 찾아보자꾸나. 네가 처음 썼던 여행기를 기억하느냐?”
 
“네…….”
 
“사내가 옥을 팔던 자에게 된통 당했던 이야기가 있었더랬지?”
 
“네.”

 
“그 이야기를 다시 써오너라. 다만 아낙과 그 뒤에…… 있던 일은 빼고, 옥은 어디서 캐고 어떤 식으로 유통되는지, 품질은 어떠했는지도 기억나는 대로 자세히 써 보거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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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가 종이를 펼쳤다. 그 일이라면 전에 썼던 여행기를 다시 되짚지 않아도 줄줄이 쓸 수 있었다. 수없이 장터에서 했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쓰며 노인이 즐거웠느냐 물은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길 땐 글로 쓴다는 게 막막해 오래 걸렸다. 지금은 물 만난 고기처럼 붓이 움직였다. 나는 새로 온 아이가 그만 불 끄고 잠 좀 자자고 화를 낼 때까지 붓을 놓지 못했다.

며칠 후 여행기를 가져갔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읽더니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마음을 놓을 새도 없이 마지막 장을 덮은 노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참으로 재미있는 재주를 가졌어. 불쾌하고 힘든 경험을 희화할 줄 아는구나. 다만……, 이 여행기의 맛을 볼 줄 아는 영주가 있을런지……. 내가 네 앞날을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닌지…….”
 
“혹여…… 정 안 되면, 먼젓번 여행기라도…….”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단다.”
 
“네?”
 
“그 길을 간다면 머지않아 이 재주는 잃을 게다. 그리하여도 좋으냐? 그래도 여행가가 되는 게 더 낫겠느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두 여행기를 쓸 때 내 마음이 너무 달랐고, 이제 그 차이를 아는 탓이었다.
 
“해보자꾸나.”
 
노인이 나를 대신해 대답했다.
나는 매일 쉬지 않고 여행기를 필사했다. 새로 온 아이도, 내가 먼저 떠난 다른 아이의 여행기를 필사했듯 내 여행기를 필사했다. 새로 온 아이가 글을 쓰는 속도가 나보다 빨라 부끄럽고 미안했다.
곡물을 사오는데 서가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전 도저히 필사 못하겠습니다! 이런 천박한 걸 따라 쓰다 보면 제 문장이 망가진다고요!”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소리를 하느냐!”

 
이제껏 노인이 목소리를 높이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야단맞는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보호하려 손으로 감쌌다. 한동안 튀어나오지 않은 버릇이었다.
 
“여행가가 의지할 건 같은 여행가 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 서가에서 배웠다면 형제처럼 서로를 아껴야 할 터인데, 오기 전 글줄을 익혔다 해, 형제에게 함부로 입을 놀려? 네 글줄이 그리 대단하다 누가 그러더냐? 어디서 그런 못된 태도를 배웠느냐? 서가에선 누구든 여행을 마치고 온 이의 여행기를 함께 옮겨 주어야 한다. 그게 서가의 법도다! 지키지 못하겠다면 당장 나가거라!”
 
새로 온 아이가 잘못을 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기듯이 방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었다.

노인은 여러 곳에 여행기를 보냈지만 어떤 곳에서도 답이 오지 않았다. 하루는 새로 온 아이가 나한테 말했다.
 
“너 때문에 노인네가 얼마나 곤욕을 치루는 줄 알아?”
 
“나 때문에 무얼?”
 
“지금껏 뛰어난 여행가를 배출한 서가가 어찌 이리 질이 낮아졌느냐는 질타를 받고 있어.”
 
“뭐?”

 
무릎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 너는 그걸 어찌 알아?”
 
“그거야 노인네에게 온 서한을…….”
 

아이의 눈빛이 변했다.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그간 자라 어깨는 나보다 넓었다.
 
“노인네한테 이르면…….”
 
아이는 주먹을 쥐어 보였다. 나는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이 오질 않았고,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몇 번이고 노인에게 그만 날 놓으라 하고 싶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행가가 되고픈 내 욕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노인이 스스로 날 감당하는 중에 감히 내가 먼저 나서 못한다 말할 수 없었다.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것만이 내게 자질이 있다 말한 노인에게 할 수 있는 보답일 터였다.
노인은 다음 해에 다시 여행 자금을 주었다.
 
“너다운 걸 써오너라.”
 
노인이 말했다.
서가를 나와 골목에서 어린아이들이 돼지 오줌통을 굴리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길이 이토록 막막했던 적이 없었다. 도시를 떠나지도 못했는데 해가 저물어 갔다. 바닥에 붙기라도 한 양 떼어지지 않는 발을 움직여 길을 나섰다.
노인이 준 돈으로는 멀리 갈 수 없었다. 정식으로 여행가가 된 후에는 다른 이가 간 곳은 가지 않는 게 법도였다. 하지만 첫 여행은 상관없었다. 몇 번을 떠나든, 서가에서 받은 돈으로 떠난 여행은 첫 여행으로 쳤다.
나는 앞서 첫 여행을 떠났던 이들이 쓴 여행기를 떠올렸다. 내가 가본 도시도 있었으나 나는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썼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도시를 보고 왔다. 굳이 멀리 갈 필요 없었다.
 
나는 돌아갈 길에 쓸 자금을 계산하며 도시와 마을을 떠돌았다. 무엇이 나다운가? 나답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나다움을 잃지 않으며 영주의 마음에 들 여행기를 쓰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너 달을 헤매다 서가로 돌아갔다. 그동안 새로 왔던 아이도 여행을 떠나 서가엔 노인뿐이었다. 노인은 장에 심부름이라도 보냈던 양 나를 맞았다.

몇 주 동안 고심했으나 여행기는 쉬이 나오지 않았다. 무얼 써도 성이 차지 않았다. 얼마 후 새로 왔던 아이가 돌아와 일주일 만에 여행기를 마치고 노인에게 건넸다. 저 아이도 나보다 먼저 떠나겠구나…….

노인은 여행기를 읽고 아이를 불렀다.
 
“허영과 기만, 과장과 편견이 가득하구나. 넌 여행가가 될 싹이 아니다. 그만 짐을 꾸려라.”
 
날벼락 같은 말이었다. 아이는 노인의 다리를 잡고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노인은 매섭게 아이를 내쳤다. 아이는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부으며 서가를 떠났다.
 
“저런 머저리도 두 번, 세 번 자금을 주면서 나는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아이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노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께 여쭙습니다. 저는 벌써 세 번이나 여행 자금을 주셨는데, 왜 그 아이는 더 기회를 주지 않으셨는지…….”
 
“애초에 받을 아이가 아니었다. 살아오며 진 빚이 있다 보니 기회를 주겠노라 약조했고, 그 약조는 지켰다. 갈 곳 없는 아이면 한 번은 더 기회를 주었을 터이나 저 아이는 부모가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줄 것이다.”
 
“그럼 전 갈 곳이 없어 계속 거두시나요?”
 
“사지 멀쩡하니 어디든 일자리라도 못 알아보겠느냐. 다만 너도 머물러 살 팔자가 아니고, 무엇보다 지켜야 할 바를 다 지켰다. 거짓을 섞지 않았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제 여행기를 받아줄 영주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전 밥값도 못하는 머저리에 불과해요.”
 

“누가 너더러 머저리라더냐.”
 
노인은 내 여행기를 받을 영주는 없다는 말은 부정하지 않았다.
 
“제가 정말 여행가가 될 수 있을까요?”
 
“여행기나 쓰고 말을 하여라.”
 
“저답다는 게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몇 달 간 고민하며 떠돌았으나 답을 찾지 못했고, 종이를 앞에 두면 머리가 아득하고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럼 너답다는 걸 몇 달 안에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느냐?”
 
“네?”
 
“여행가라면 누구든 평생 그 질문을 품고 살아야 하느니라. 매번 종이를 앞에 두고 고뇌해야 해. 첫걸음은 떼었구나.”

 
노인은 더 이상 투정을 듣지 않겠다는 듯 자기 볼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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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장편 [지우전 : 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 [부엉이 소녀 욜란드],
작품집 [원초적 본능 feat. 미소년], [각인]을 출간하고 다수의 공동 작품집에 단편을 수록한 이 인간의 작업 책상에는 컴퓨터, 프린터/스캐너 복합기, 지난 밤 마신 맥주 캔, 고양이가 있다. 네 발 달린 아해가 책상을 오르내리며 키보드를 밟아도 오타는 모두 작가의 책임이라는 게 냉엄한 현실.

오늘도 글을 쓰며 고양이와 키배, 아니 키보드 쟁탈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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