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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제8요일의 남자] #15. 왜 하필 장현수야?

세면실에 숨어있다 뛰쳐나온 학생은 생각보다 쉽게 쥬디에게 제압을 당했다.
처음엔 두 손을 압박당한 채로도 도망가려 발버둥을 치더니 경찰에 넘기지 않겠다는 쥬디의 말에 순순히 몸에서 힘을 풀었다. 

쥬디는 한 손으론 여전히 학생의 팔을 꺾은 채 벨소리가 끊어지기 전에 폰을 내게 건네려 애를 썼다. 하지만 소리는 내게 오기도 전에 뚝 그치고 말았다. 

벨이 멈추지 않았더라도 통화를 할 순 없었을 것이었다.
쥬디가 갑자기 몸을 날려 세면실 문고리를 잡던 순간부터 머리가 하얘지면서 온 몸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통화는 커녕 잠시 동안은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앳되어 보이던 학생은 옆 동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그의 말로는 처음 보는 손님이 폴더폰을 찾아오면 돈을 주겠다며 내 집 패스워드를 알려주었다고 했다. 현관 패스워드를 알고 있으니 당연히 가족이라 믿었다는 것이었다.  

“경찰에 신고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쥬디는 학생의 학생증과 소지품을 거실 바닥에 늘어놓고 꼼꼼히 살피느라 내 말엔 고개만 끄덕일 뿐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학생이 저녁을 못 먹었다는 말에 치킨까지 시켜놓은 쥬디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빨리 그 학생을 내 보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너, 집 어디야? 학교는? 부모님 전화번호는? ”

쥬디는 학생에게 심문하듯 한 마디씩 툭툭 던졌다. 학생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또박또박 답을 했다. 겉보기엔 조금도 불량해 보이거나 문제아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누가 돈을 준다고 해서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물건을 가져 나갈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는 누군가 폰을 가져오라고 했다는 말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 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오비서관과 나, 두 사람 뿐이었다.
내 집 현관의 패스워드 역시 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전 도둑이 든 직 후 내가 바꾼 번호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미리 알아야할 거 말해 줘.”

쥬디는 치킨이 오자 학생에게 안겨서 식탁으로 보냈다. 그리곤 소파로 와서 내 옆에 앉았다.
뭔가를 숨기고 있기라도 한 듯 학생에게 하던 것과 똑같은 톤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폴더폰은 오비서관이 준 거야. 그 오피스텔 서랍장에 있었대. 장현수 의원 사고 후에...”

“장현수 건데 왜....”

“주소록에 저장된 번호가 두 개였는데 그 중 하나가 내 번호여서.... ”

“나머지 하나는?”

“몰라. 따로 메모만 해놨어.”

“현관 비밀번호가 0808?”

“....누가 그래? 저 학생이 그래? ”

쥬디는 여전히 눈빛을 번뜩이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말도 안 돼. 그럼 정말 누군가 비밀번호를 알려줬다는 거네? 어떻게 알고?”

“그렇게 좋은 자기 머리를 못 믿고 왜 생일 날짜를 비밀번호로 써? 그 말 듣고 술이 확 깼어.”

쥬디도 나도 이미 술이 깬 지는 오래였다.
쥬디는 마치 내가 현관 패스워드를 쉽게 만들어 이 일이 일어났다는 듯 한심하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도둑이 들었었어. 그래서 급하게 바꾼 거야.”

“도둑? 그 얘긴 나한테 왜 안했구?”

금테 안경 너머 쥬디의 눈이 금세 렌즈를 뚫고 나오기라도 할 듯 나를 향해 부릅떠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쥬디를 쳐다보았다.
쥬디는 자신이 내게 선배라는 이유에선지 아니면 법관이라는 직업을 거쳐서인지 가끔 내게 고압적일 때가 있었다.
 
“그래... 잃어버린 건 뭐였는데?”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내 쪽으로 건너오는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집 안을 다 뒤지기만 하고 잃어버린 건 없었어.”

“저 폴더폰도 그대로 있었고?”

“아...!”

“.... ”

“그날도 도둑이 저걸 찾았던 건가? 저 폰은 그날 회사에 뒀었거든. 충전 코드가 없어서....”

“이번처럼 현관으로 들어왔구?”

“경찰이 창문이나 다른 곳은 침입 흔적이 없댔어. 현관문도 깨끗했고.”

“그땐 비밀번호가 뭐였는데?”

“....”

“설마 핸드폰 번호 뒷자리 이런 건 아니었겠지?”

“0919.”

쥬디는 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한참 뭔가를 검색했다.

“장현수 생일이군. 그런데 왜 하필 장현수야?”

“그냥....”

지난 5년 동안 나는 한 번도 에프의 생일 챙긴 적이 없었다. 에프는 늘 집에서 화려한 생일 파티를 하리라 생각했었다.

지난 해 우연히 에프가 생일을 혼자 보냈다는 말을 들었었다. 토요일이었는데 혼자 차를 운전해 어머니 묘소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내가 챙겨주고 싶어 잊지 않으려 그랬던 뿐이었다.

“혹시 장현수 오피스텔은 현관 키는 네 생일번호니?”

“....”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깊은 관계였나 보네..”

쥬디는 담담히 아무렇지 않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그 말이 마치 나를 야유하는 것처럼 들렸다.

“선배 맘대로 생각 해. 더 이상 묻지 마. 취조에 응하지 않을 거야.”

쥬디가 소리 내 웃었다.

“지금부터 15분 정도 시간을 줄게. 필요한 것 챙겨. 당분간 우리 집에 가 있자.”

“... 무슨 말이야.. ”

“현관 비밀번호는 며칠 그대로 두고 다음 주 쯤 부동산에 집 내 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도록 해. 우리 집이 불편하면 어머니 댁이나 동생 집이나... 대신 당분간 혼자선 지내지 마. 위험할 것 같진 않지만 계속 놀랄 일이 생길 수 있어서 그래. 이집은 다른 사람과 동행하기 전엔 들어오지 마. 그게 좋겠어. ”

“.....”

“그 다음 얘기는 우리 집에 가서 하자.”

쥬디는 나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곤 단숨에 치킨 한 마리를 먹어치운 학생을 불러 조용히 차근차근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그 학생 경찰에 신고 안하고 그냥 보내도 되는 거야?”

쥬디의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내가 물었지만 쥬디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지 답이 없었다.
자기 집에 들어서자마자 쥬디는 곧바로 말을 쏟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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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모르지만 그 폰이 꼭 필요한 사람이 있어. 분명히 장현수와 관계된 사람일 거야. 그걸 가지고 있으면 네가 위험하니까 그들에게 어떻게든 주긴 줘야 해. 그런데 그 전에 그들이 폰에서 뭘 얻으려고 하는지 먼저 알아내거나 최소한 그 라인을 막아버리고 건네야 한다는 거야. 일단 내가 하라는 대로 해.”

그리고 덧붙였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알지? 저들이 폰을 손에 넣기 전엔 너를 미행하거나 네 행동을 주시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며칠은 그걸 염두에 둬야할 거야.”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쥬디와 함께 나와 엄마 집으로 내 소지품을 옮겼다. 다른 곳으로 이사할 때 까지 지내려면 엄마집이 가장 편할 것 같았다.

오늘은 튜즈와 저녁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누군가 나를 주시할 수도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퇴근 시간에 앞서 회사를 나왔다.
 
‘오늘 약속 알지?’

튜즈의 문자였다. 너무 오랜만이라 내가 저녁 약속을 잊었을까 보낸 문자였다.  
나는 이미 약속 장소에 와 있었다.

쥬디는 폴더폰 수신번호로 회신을 해서 발신자를 확인하라 했지만 나는 하루정도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전화는 거의 매일 한 두 차례 걸려오고 있는데다 상대번호가 핸드폰이 아니므로 오는 전화를 받는 게 훨씬 정확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폰 주소록에 이름 없이 저장돼 있던 번호가 있었다. 

튜즈와의 약속은 30분 정도 남아있었고 레스토랑은 사람들이 그리 붐비지 않아 통화를 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전화를 걸려고 주소록을 열었는데 이상하게 번호만 쳐다보는데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혹 그 보석목걸이의 주인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에프에게 사고가 생겼다는 걸 알고 있을까.
정작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첫 신호음이 길게 갔다. 그리고 다음 신호음이.. 그 다음 신호음이... 끊기지 않을 것처럼 신호음이 길게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추더니 목소리가 건너왔다.

“...여보세요?”

남자였다. 자다 깬 듯 나른하고 지루한 음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장현수씨 핸드폰인데요... 혹시 장현수씨 잘 아시는 분인가요?”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누구요? 장현수요?”

“네 장현수씨요. 아신다면 어떻게 아시는 분인지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장현수라는 사람은 모르고... 전화번호 바뀐 지 한 달 좀 넘었는데.... 그런데 장은영을 찾는 전화는 많이 오던데요. 은행에서 문자도 가끔 오구요.”

“장은영씨요? 그럼 전에 쓰시던 분이 장은영씨라는 말인가요?”

“그렇겠죠? 하여튼 장현수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번호를 바꾼 지 한 달이 좀 넘었다면 에프의 사고 시기와 맞물리는 때였다.  

한연수는 지난번 내게 에프가 보석목걸이를 사서 어떤 여자에게 걸어주었고 그게 CCTV에 찍혀있지만 여자를 찾을 수는 없다고 했다.
만일 여자가 장은영이라면... 생각을 채 정리도 하기 전에 소리가 날아들었다. 

“반미주! 웬일이야? 시간이 20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왔어?”

오랜만이었다. 튜즈는 내가 많이 반가웠는지 다가오면서 벌써 높은 목소리를 냈다.
주변의 사람들에 민망해 슬쩍 옆을 돌아보았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어떤 사람이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하며 인사를 했다. 어디선가 스친 기억은 있는데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반미주씨... 맞지요? ”

그가 일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영등포경찰서 김진수 계장입니다.”

그제야 어둑한 머릿속에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몰라 뵀어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장현수 의원 사건 재수사 들어간 거 아시죠?”

“네..”

“참고인 조사 힘 드셨던 거 아는데... 또 연락 가더라도 한 번 더 협조 부탁드립니다.”

김진수 계장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꾸벅했다.
그는 처음 통화할 때부터 반듯하고 온화한 느낌이었다.
옆의 튜즈가 의아하게 보고 있어서 빨리 인사를 마무리하려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말을 걸었다.

“저... 보석상 CCTV에 찍힌 여자 분이요.. 혹시 신상은 알아내셨나요?”

“네?”

김진수는 무슨 말이냐는 듯 생뚱맞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의원님이 보석목걸이를 준 여자분... CCTV에 찍힌....”

“장현수의원 사건 말씀하시는 거 맞지요?”

김진수는 눈을 크게 뜨고는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보석목걸이....”

“목걸이요? 글쎄요.. 저는 금시초문인데.. 잘못 들은 거 아닙니까? 저는 초등수사부터 참여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제가 모를 리가 없는데요? 국회에서 흘러나온 얘긴가요?”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보석목걸이에 대해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 혼란스러웠다.

“제가 잘못 알았나 봐요. 죄송합니다.”

김진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리에 앉았다.

“왜 그래.. 괜찮아?”

내가 잠깐 휘청거렸던 모양이었다. 튜즈가 내 어깨를 감싸고 자리에 앉도록 도와주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에프의 폴더폰이었다.
 
▶ 제8요일의 남자 더 보기
#1. 화요일의 남자, 튜즈
#2. 7분의 1을 넘나드는 남자, 에프

#3. ‘당신의 어둠 속에 나도’
#4. “그날,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것”
#5. 엠, 월요일을 싫어하는 남자
#6. 어떤 고백
#7. 한 잎의 여자
#8. 당신은 어디 있나요?
#9. 그 여자 미주 -내 이름은 튜즈
#10. 이미 시작된 일
#11. 말할 수 없는 비밀
#12. 점점 깊은 곳으로
#13. 기억의 영속
#14. 카메라오브스쿠라

< 목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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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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