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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의 함정|장을병<성균관대 교수·정치학>

민주정치는 수를 소중히 여기는 정치다. 소수인의 의견보다는 다중의 의견이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공리 위에 수립된 정치가 바로 민주정치다. 따라서 민주정치는 수를 소중히 여기고, 소수보다는 다수를 더 중요시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하기에 민주정치에 있어서 판단의 기준은 다수의 지지이고, 다수의 지지에 따라 사리를 판결하는 것을 다수결의 원리라고 한다.

정파 이익 넘어 소수의견 수렴을

민주정치는 수를 소중히 여기는 이상 다수결의 원리를 부인할 수는 없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최종적인 판단은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내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수적인 개념으로만 파악해서 다수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우기면,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망각해 버린 사고방식으로 규정된다.

소박한 다수결의 원리에 집착해서 소수의 의견을 깔아뭉개 버리는 것이 다름 아닌 비민주적인 전체주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을 전제로 해서 그것을 다수의 의견 속으로 흡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절차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는 정치이고, 그것을 수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는 정치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네 지난날의 헌정사를 돌이켜 보면 독재자의 의사를 미화시키기 위해서 다수결의 원리를 악용했던 일이 허다했다. 오히려 독재적인 결정이 있을수록 다수의 지지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주체적인 실례를 들어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던 유신체제도 92·2%란 엄청난 다수의 지지로 출범했다.

그런가 하면 몇 번에 걸쳐 실시된 헌법개정에 있어서도 그 절차가 비민주적이면 비민주적이었을수록 압도적인 다수의 지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예컨대 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빚어내면서 강제로 통과시킨 발췌개헌의 경우 1백36대0, 말하자면 1백%의 지지를 기록했다.

이러한 현상들이 되풀이해 빚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다수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또는 지지표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결정은 정당하다는 사고방식이 우리네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탓이다.

실상 민주주의는 단순한 수적인 개념도 아니고, 지지가 많을수록 보다 더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원리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51%의 다수가 이상으로 여겨지고 있고, 소수의 반대의견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되고 있다.

바로 민주주의란 소수의견의 존립을 전제로 해서 그것을 다수의견 속에 반영시키려는 절차 내지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민주주의가 토대로 삼고 있는 다수결의 원리는 다수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소박한 수적인 개념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당파에 따른 다수·소수와는 관계없이 되도록 모든 의견들을 빠짐없이 수렴해 보려는 노력 안에서 다듬어진 정치관행이다.

말하자면 진정한 다수결의 원리란 정파의 다수·소수를 넘어서 대표되어야 할 모든 의견들을 가능한 한 수렴해 보려는 노력 속에서 만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다수결의 원리란 정파의 다수·소수의 구별을 초월해서국민 전체의 의사에 근사한 진리를 발견해 내려는 원리이며 다수파의 겸허한 자기억제를 전제로 한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진정한 다수결의 원리란 다수파가 소수파를 규제하려는 관행이라기보다는 다수파와 전체와의 관계를 조정·보완하는 정치관행이라는 것이다.

이러하기에「한스·켈젠」은 말하기를『진정한 다수결의 원리는 소수의 의견이 전기반응처럼 다수 안에 반영될 때만 성립된다』고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는 개헌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번의 개헌이야말로 또다시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매듭지어질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합의하고 숭앙 심을 가질 수 있는 정치체제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마무리지어져야 한다. 이번 개헌과정에서 국민들의 의사가 올바로 반영되지 못하면, 70년대이래 빚어진 정치적 비극인 정치체제논쟁이 해소되지 못해서 개헌은 하나마나 한 결과로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헌은 정파의 다수·소수를 초월해서 국민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향, 말하자면 진정한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마무리지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다수파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루어질 때 우리네 정치도 민주주의로 향한 거 보를 내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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