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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대피소 없어 비닐하우스서…‘지진 노숙자’ 만든 한국

“무서버 죽겠어예. 춥고 어두운데 어데 가겠심니꺼.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있었지예.”

20일 오전 9시30분쯤 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1리 마을회관 앞. 전날 규모 4.5의 비교적 센 여진이 일어난 진앙이다. 피곤한 표정의 이모(78·여)씨가 손으로 옷을 털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지난 19일 오후 8시33분 규모 4.5의 여진이 나자 집에서 뛰쳐나왔다. 집이 무너질까 두려워서다. 12일 규모 5.8의 지진으로 이미 집 곳곳에 균열이 간 상태다.

당시 이씨는 허둥지둥 집 앞으로 뛰어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마을회관 역시 400여 차례 계속된 여진으로 건물 곳곳에 금이 갔다. 하는 수 없이 이씨는 집 앞 작은 비닐하우스를 지진 대피처로 선택했다. 그러고는 밤새 지진 공포와 추위에 떨었다.

경주 도심인 동천동에서 만난 최모(47)씨는 “여진 발생 이후 대피를 어디로 해야 할지, 언제쯤 안전해질지 몰라 차에 가족을 다 태워 3시간 가까이 도심을 왔다 갔다 했다”고 말했다.

안절부절못한 국민이 일순간 ‘지진 노숙자’가 된 셈이다. 한뎃잠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지진 발생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허둥지둥 지진 대비’는 이미 일상이 됐다. 경주 지역 43개 초등학교 중 29곳이 지진 피해를 봤다. 교실에 균열이 생기고 화장실 천장이 무너져 내린 곳도 있다. 이런 교실에서 아이들은 ‘정상 수업’을 하고 있다. 복구는커녕 안전점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진앙 인근 마을회관, 집 안으로 물이 줄줄 새는 한옥마을. 늑장 재난 발생 문자, 여진 이후 2시간가량 먹통이 된 국민안전처 홈페이지, 다보탑·첨성대 등 문화재 파손, 건축물 내진설계 비율 6.7%….

지진으로 발가벗겨진 부끄러운 ‘지진 대비 후진국’의 속살이다.

지진 대비 선진국인 일본의 빈틈없는 지진 대응이 부럽다. 연간 4000여 건의 크고 작은 지진을 겪는 일본의 지진 대응 매뉴얼은 실전에서 빈틈없이 가동된다. 첨단 지진분석시스템을 이용해 지진 발생에 앞서 예보한다. ‘곧 OO 지역에서 지진 발생 예정’ 같은 문자가 방송과 휴대전화로 신속히 발송된다. 지진 알림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발생 10초 안에 끝난다. 지진 4월 구마모토(熊本) 대지진 땐 발생 3.7초 만에 TV에 경보가 떴다. 한국은 최장 12분이 걸렸다.

지진이 나면 노숙하는 한국인과 달리 일본인은 지진 발생 직후 대피방법도 세련됐다. 주로 가까운 학교를 지진대피소로 미리 지정해 두고 수시로 관리한다. 지진으로 균열이 나서 대피소 가동이 힘들면 곧바로 다른 대피소를 지정해 주민을 이동시킨다. 민방위훈련을 하듯 미리 피난 경로를 확인하고 내진설계가 잘된 대피소를 1차와 2차까지 준비해 둔다.

법과 예산 탓만 하며 뒤틀린 건물 그대로인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복구시스템도 짜임새 있다.

홍성삼 서울소방재난본부 현장대응단 담당은 “지진이 나면 일본은 소방과 경찰, 민간 기업 등이 스스로 중장비 등을 챙겨 복구를 시작한다. 사전에 출동협정을 맺어 복구 속도도 빠르다. 심지어 택배회사도 복구장비나 구호물품을 현장에 무료로 배달한다”고 소개했다.

‘지진 대비 후진국’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지진 대비 선진국’인 일본을 철저히 벤치마킹하는 것뿐이다. 서용석 충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일본의 지진 매뉴얼을 벤치마킹해 배포하고 숙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경주에는 일본 교토(京都)의 매뉴얼을 추천했다. 경주는 21일 오전 11시52분에도 규모 3.5의 여진이 땅을 흔들었다. “또 알아서 대피하라고?”

김윤호 내셔널부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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