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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황순원문학상 수상자] 인간은 굉장히 잘 깨지는 존재…아픔 함께 슬퍼할 수 있다면

유리의 존재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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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의 시는 결핍에서 비롯된다. “요즘 들어 부쩍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슬퍼하는 능력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기자]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봄은 온다고 했던 이성부(1942∼2012)의 시구절을 비틀어 이렇게 사용할 수 있을까. 벅찬 기쁨, 오랜 소망 같은 것들은 그것들을 바란다는 사실조차 잊었을 때라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라고.

단단하면서도 가슴 아린 시 ‘유리의 존재’로 올해 미당문학상을 받는 시인 김행숙(46)의 경우가 꼭 그렇다. 김씨는 13일 인터뷰에서 “더운날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서늘한 세숫대야 물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최근 1년 새 “병명조차 모른 채 아팠다”고 했다. 심할 땐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 뼈와 관절들의 고통이었는데 진통제, 신경계통 약들을 오래 복용하자 시 쓰는데 필요한 예민함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당선작 ‘유리의 존재’를 포함해 최근 1년간 간신히 쓴 8편 은 그런 몸과 마음의 악조건 속에서 건진 것들이다. 그래서 올해 수상을 전혀 예상 못했다는 것. 시라는 정신의 영롱함은 생살을 찢는 아픔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문학의 역설이 다시 한 번 어깨를 드러낸 셈이다.

당선작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김씨는 “인간은 굉장히 잘 깨지는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힘들 뿐더러 충분히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떤 간격,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어서…”라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김씨의 등장은 ‘시단(詩壇)의 사건’이었다. 견고하고 단일한 시의 화자나 주체가 사라진 이상한 감각들의 세계에서 김씨는 오히려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인간 주체를 대신해 시의 주인 노릇을 하는 건 종종 귀신과 사춘기 악동, 혹은 분열된 시선 자체였다.

당선작은 그런 흔적을 품고 있다. 현실과 꿈의 질서가 교란돼 있고 심지어 죽은 자의 시선까지 상정한다. 살아있는 시인이 상상하는 시체의 시선, 그 시선에 비친 풍경은 그 이미지만으로도 섬뜩하고 참혹하다. 어떤 슬픔, 울음기마저 느껴진다.

시에 슬픔이 많은 이유를 묻자 김씨는 “요즘 들어 부쩍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슬퍼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고 했다. 천사는 천사이되 고통을 대신하는 천사가 아니라 곁을 지키며 함께 슬퍼해주기만 해도 좋을 천사가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슬퍼한다는 건 단순히 우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이건 아니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현실의 개선을 꿈꾸는 슬픔, 그래서 힘이 센 슬픔이라는 거다.

김씨의 문학도 결핍에서 출발했다. 여러 사람 앞에 나서기 꺼려하는 성격을 고치는 데 시 쓰기가 도움이 됐다. “지금도 시를 쓸 때 가장 큰 충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의 슬픈 시는 아팠던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다.

 
김행숙
1970년 서울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현재 강남대 국문과 교수.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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