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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50주년 특별전 여는 윤정희 “인생에 젊음만 있나요 마지막까지 배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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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화려함이 아니라 인생을 그리는 것”이라 말하는 윤정희씨. 사진 촬영 직전 그가 가방에서 꺼낸 건 귀퉁이가 낡은 손거울이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화려함 때문에 영화를 동경했다면 지금 다이아몬드를 걸치고 나왔겠죠. 나는 영화를, 영화배우를 화려하다고 생각 안 해요. 영화는 인생을 그리는 거에요.”

연기 인생 반세기에 이른 배우 윤정희(72)씨의 말이다. 22일부터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데뷔 50주년 특별전 ‘스크린, 윤정희라는 색채로 물들다’를 앞두고 그를 만났다.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음악제 심사를 맡았던 헝가리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된 참이었다. “장 기유라고, 세계적인 오르가니스트인데 우리하고 가깝게 지내요. 공연차 한국에 처음 왔길래 어제 함께 인사동을 갔어요. 한국음식을 우리보다 더 잘 먹고, 길을 가는데 사람들이 다 ‘미자’를 알아본다며 자기 일처럼 즐거워하는 거에요.” 이 은막의 대스타는 가까운 이들에게 본명 그대로 ‘손미자’로 통하는 모양이다. ‘윤정희’는 데뷔하며 직접 지은 이름이다. “고요할 정(靜)이에요. 아무리 화려한 세계에서도 조용히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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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가 배경인 데뷔작 ‘청춘극장’(1967)의 윤정희(왼쪽·당시 22세)와 신성일. [영상자료원]

역설적이게도 ‘윤정희’의 시작은 놀랍도록 화려했다. 1966년 합동영화사가 실시한 ‘청춘극장’의 주연공모에 1200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힌 것부터 그랬다. ‘청춘극장’(1967)과 곧이은 ‘안개’(1967)는 각종 신인상을 휩쓸었다. 먼저 데뷔한 남정임·문희씨와 더불어 60년대 스크린에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럭키한 것 같아요. 한국영화의 전성기였죠. 서로 이미지가 달랐기 때문에 각자의 역할을 했고. 라이벌 의식? 당연히 더 잘하려는 경쟁심이 있었죠. 라이벌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는 게 현실적이죠.” 문득 그는 92년 암으로 별세한 남정임씨를 애틋하게 떠올렸다. “언젠가 제가 촬영한다고 한국에 와서 선배들과 다들 모였는데 정임이가 우리끼리 2차를 가자고 해요. 따라갔더니 자기 인생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 얼마 뒤 하늘나라로 갔어요.”

트로이카 중 두 사람은 결혼 등으로 70년대에 은퇴한 터였다. 그는 달랐다. 프랑스 유학을 떠나고, 결혼해 파리에 살면서도 틈틈이 여러 한국영화의 주연으로 활약을 이어갔다. 혹 영화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을까. 그는 고개부터 저었다. “저는 마지막까지 영화배우를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가 인생을 그리는 건데 어떻게 인생에 젊음만 있나요. 제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일 거에요.”

‘만무방’(94) 이후 16년만에 스크린에 나선 ‘시’(2010)에서는 생활고와 시적 감성, 외손자에 대한 애정과 윤리적 난제에 고루 직면한 노년의 여성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국내는 물론 칸국제영화제의 호평과 LA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 등이 이어졌다. ‘시’를 돌이키며 그는 “촬영현장이 좋아져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전에는 너무 고생했죠. 그게 제 인생에 도움이 돼요. 이거 하나 못 해, 옛날에는 더 고생했는데 하는 마음이죠.” 많게는 한 해 수 십 편의 영화를 찍느라 “잠 좀 자는 게 꿈”이던 시절을 살아온 그다. 덕분에 남편의 연주 일정을 따라 한 해 절반을 길에서 보내는 강행군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단다.

듣자니 그는 시작부터 꽤 자존심 강한 배우였다. 김래성 원작 소설에, 주인공 오유경의 매력에 흠뻑 빠져 ‘청춘극장’ 주연공모에 나섰을 때도 그랬다. “마지막에 카메라 테스트가 있었어요. 저기 황정순 선생님을 보고 ‘어머니’ 하며 가서 우는 장면이었는데…제가 뛰쳐나갔죠.” 사연은 이렇다. 테스트를 위해 모인 가운데 누군가 이미 주연으로 정해졌다는 말이 들렸단다. 자존심이 상해 뛰쳐나간 그를 붙잡으려 조감독과 제작부장이 쫓아오는 소동 끝에 카메라 앞에 섰다. “덕분에 ‘어머니’ 하면서 진짜로 울어버렸어요. 그랬더니 제가 됐대요.”

배우로서 자존심 혹은 욕심을 짐작하게 하는 또다른 면모가 있다. 후시녹음, 또 주연배우의 목소리도 성우가 녹음하는 게 흔하던 시절에 그는 일찍부터 ‘독 짓는 늙은이’(69) ‘무녀도’(72) 등 주요 작품을 직접 녹음하며 여러 주연상을 받곤 했다. “물질적인 욕심은 없어요. 물질은 필요한 만큼, 남 도울 수 있는 만큼, 그거면 돼죠. 근데 일에 대한 욕심은 있어요.”

인터뷰 말미에 사진을 청하자 그는 낡고 소박한 손거울을 꺼내 매무새를 다듬었다. 척 봐도 한 두 해 쓴 물건이 아니다. “이거 나가면 나한테 거울 사주고 싶어할 사람이 너무 많을텐데.” 낭랑한 웃음이 흘렀다.
 
윤정희 특별전
다채로운 활약을 보여주는 대표작 20편을 10월 2일까지(26일 휴관) 무료로 상영한다. 24일과 25일은 각각 ‘시’의 이창동 감독, ‘무녀도’의 최하원 감독과 윤정희씨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열린다. ‘청춘극장’과 ‘분례기’는 국내에 필름이 유실돼 한국영상자료원이 2007년 홍콩에서 발굴한 중국어 더빙판에 한글자막으로 상영한다. 자세한 상영일정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koreafilm.or.kr) 참조.
글=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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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