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지진이 온다. 10초라도 달라”

기사 이미지

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

규모는 작지만 여진이 낳은 정신적 충격은 기습처럼 찾아오는 본진과 결이 다르다.

3년 반 전 중국 쓰촨(四川) 지진 때 일이다. 규모 7.0의 강진이 훑고 지나간 야안(雅安)시 루산(蘆山)현은 폭격을 맞은 듯 참혹했다. 취재차 갔던 곳은 루산현 진앙 인근 산촌이었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땅 속의 파동이 들이닥쳤던 그때 몸이 그네에 탄 것처럼 들렸다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길 아래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지어진 판잣집들의 지붕이 들썩이며 너울대기 시작했다. 길 아래쪽 지붕에서 위쪽으로 도미노처럼 파동이 이어졌다. 점프하듯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규모 5.4 여진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다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대낮에 길에서 ‘여진 한 방’ 먹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속수무책 맥이 풀렸다. 숙소에 들자마자 잠에 빠졌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푸드득, 푸드득’ 벽에서 시멘트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다. 동이 트려면 한참 남았지만 다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이번 진동이 여진인지 새로운 지진의 전조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경주를 비롯해 영남 지역 주민들이 빠졌을 법한 고민이 거듭됐다. ‘그나마 안전한 건물 밖으로 나가 길에서 밤을 새울 것인가, 아니면 잦아드는 여진이겠지 자신을 달래며 그대로 있을 것인가’.

지진 대응을 놓고 정부가 허둥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진대 위에 살고 있는 납세자들이 이런 기초 생존권 문제로 하루하루 시달리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정부 대응의 출발점이다. 근본적으로 내진 설계를 강화해 지진에 대처해야겠지만 한반도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닌 지금 당장의 현실에서 그나마 믿을 건 국가의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첫 지진파(P파) 이후 위아래로 진동하며 파괴력이 큰 S파가 도달한다. 두 지진파 사이의 간격은 10~20초에 불과하다. 살 길과 죽는 길을 가르는 골든타임이다.

일본은 말할 것 없고 1999년 9월 21일 규모 8.1 강진으로 2500명이 숨졌던 대만은 이제 10초 조기경보체계를 갖춰놓고 있다. 파상적인 S파가 도달하기 전 가옥에서 뛰쳐나올 최소한의 시간을 국가에서 확보해주겠다는 개념이다. 경주를 강타한 지진 때처럼 한참 지나, 그것도 못 받는 사람이 천만 명이 넘는 그런 문자 안내 서비스로는 참극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일단 2020년까지 우리 정부도 10초 안에 경보를 발령할 수 있도록 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놓고 말들이 많다.

엊그제 20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부실한 정부 대응에 대해 질타를 받자 “재난 대비 매뉴얼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고 변명했다. 상황 인식이 이래선 안 된다. 일 터지기 전에 스스로 혁신을 강조하며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나’라고 했던 여당 의원의 말이 아니더라도 국가라면 성실한 납세자들에게 10초는 벌어줘야 한다.


정 용 환
JTBC 정치부 차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