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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우울한 코끼리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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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경제기획부장

‘웬 코끼리?’ 하는 분이 꽤 있을 거다. 미국 대선이 코앞이니 공화당 상징인 그 코끼리 얘기인가 하는 국제뉴스 애독자도 있겠다. 한데 요즘 뜨는 코끼리는 좀 다르다. 국제화(Globalization)의 불편한 진실을 한눈에 보여주는 우울한 코끼리다.

그래프를 보자. 긴 코를 들어올리고 있는 코끼리 모양이다. 이름도 그렇게 붙었다. 2012년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였던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만들었다. 그는 올 초에 쓴 『글로벌 불평등(Global Inequality)』에서 코끼리를 집중적으로 다시 조명했다.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어떤 세계 시민이 돈을 많이 벌었을까. 세로축은 가계의 1인당 누적 실질소득 증가율, 가로축은 백분위로 표시한 글로벌 소득 분포다. 1988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한 해 전이고, 2008년은 리먼브라더스의 몰락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해다. 이 20년은 전세계에 국제화 열풍이 불었던 시기다. 90년대 김영삼 정부가 목소리 높여 ‘세계화’ 슬로건을 내걸었을 때도 이 시기 중간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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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한경쟁의 이득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프에서 보듯 글로벌 소득 중위층의 실질소득은 70% 가량 올랐다. 주로 중국의 부자들을 포함해 개도국의 잘 사는 사람들이 재미를 봤다. 글로벌 엘리트그룹인 상위 1%의 부자들도 비슷하게 소득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사이 구간은 푹 꺼져있다. 선진국 노동자 등의 중산층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의 소득은 별로 늘지 않았다. 이로 인한 선진국 중산층의 박탈감을 알아야 미국 대선의 예상 밖 트럼프 열풍과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결정, 난민에 대한 유럽의 차가운 시선을 이해할 수 있다. 코끼리가 트럼프와 브렉시트, 유럽의 민족주의를 부른 셈이다.

국제화가 번영과 성장을 가져온다는 오래된 믿음은 코끼리 앞에서 일순간에 빛이 바랬다. 흔들리는 신화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대기업 문제를 비판적으로 파고들었다. 구글·애플·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대표되는 거대기업들만 잘나가는 세상이 됐다는 내용이다. 다국적 대기업이 플랫폼을 지배하며 몸집을 계속 불리고 있으며 자유로운 시장 경쟁의 산물인 이들이 외려 경쟁을 옥죄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기업은 안정된 플랫폼 위에서 특권을 누리며 오로지 시장 패배자들만 ‘경쟁’하는 세상, 개그콘서트의 옛 유행어를 빌리자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런 기사를 보며 혹자는 합리적 보수로 분류되는 이 잡지의 ‘변심’을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이 잡지는 2012년 ‘작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Small is not beautiful)’는 제목으로 규제에 안주하는 유럽의 중소기업을 비판하고 ‘규모의 경제’로 더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의 장점을 설파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당시엔 “중요한 것은 기업의 크기가 아니라 성장”이라고 주장했던 잡지가 이제는 “기업의 크기도 중요하다”며 다른 결론을 내린다. 이러다가 초기 자본주의 시절에나 나왔던 ‘악덕 대기업(robber baron)’ 얘기까지 다시 등장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다. 국제화 열풍에 ‘우리도 뒤처지지 말자’며 안간힘을 썼듯이, 국제화와 대기업에 대한 나라 밖의 비판적인 시각도 곱씹어 봐야 한다.

이제까지 경쟁과 효율, 대기업 중시는 주로 보수의 논리였고, 불평등은 아무래도 진보의 이슈였다. 이제는 보수도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짚을 만한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본지가 후원하는 보수-진보 합동토론회 주제가 불평등이다. 첫 토론회를 지켜보다가 주최 측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에게 ‘보수 토론자가 잘 안 보인다’는 관전평을 전한 적이 있다. 김 원장은 “불평등을 연구하는 보수 쪽 학자가 많지 않다”고 했다. 걱정이다. 저렇게 코끼리가 몰려오는데 말이다.


서 경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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