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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바람결에 흩날리고 강을 따라 떠도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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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는 모래 폭풍을 만나 일행과 떨어진 이후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날이 밝을 무렵 일어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시를 뒤지다 우물을 발견했다. 이 우물을 만든 이는 흔적도 찾을 길이 없거늘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물이 떨어질 만하면 우물이 나오니, 별도, 땅도 내게 더 걸으라나 보다. 가자, 어디까지 가나, 한번 가 보자.”
 

그는 아마를 다독이며 최면에 걸린 듯 묵묵히 사막을 걸었다. 또다시 마지막 물주머니가 가벼워질 즈음 아마가 걸음을 멈췄다.
 
“아마야…….”
 
여행가는 헤아릴 길 없는 뜻을 담아 함께 걸어온, 이제 먼저 떠날 이를 불렀다. 부르는 말이자 동시에 작별 인사였다. 아마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아 새끼를 걱정하는 어미의 눈으로 여행가를 바라보았다. 여행가는 곁에 앉아 아마의 마지막 숨을 지켰다.

그는 아마를 뒤에 두고 짊어질 수 있는 만큼만 짐을 들고 걸었다. 문득 돌아보니 아마는 보이지 않았고, 청한 바 없는 독수리들만 하늘을 맴돌았다.
 
홀로 가는 길은 끔찍하게 고독했다. 물은 떨어졌고, 양탄자도 제정신이 아닌 어느 결에 버렸는지 잃어버렸는지 없어졌다. 밤이면 추위에 몸서리쳤고, 낮이면 땡볕에 말라갔다. 무얼 적을 기력도 없어 날짜도 세지 못해, 아마가 떠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지 못했다. 멀리 언덕 위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아마 뒤를 따를 때가 온 것인가……. 아이들이 그에게 달려왔다. 그는 멈춰 끝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그의 손을 잡아끌고 올랐다. 여기서 끝내고 싶었는데, 환영은 끈질기게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언덕에 오르자 도시가 보였다. 누군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을 걸며 물을 먹였다. 그는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돌로 두른 성벽, 진흙으로 만든 크고 작은 집, 건물마다 난 창문, 곳곳에 있는 우물, 빨래하는 여인, 채소를 씻는 사내, 물을 튀기며 노는 아이들……. 그는 홀린 듯이 거리로 들어갔다. 이발사들은 가위를 흔들며 손님을 끌었고, 낙타들은 거리를 걸으며 똥을 갈겼고, 염소는 줄에 묶여 끌려가며 ‘매매’ 울어댔고, 아이들은 그 사이를 맨발로 뛰어다녔으며 굽고, 끓이고, 튀겨서 파는 음식 냄새들이 코를 찔렀다.
 
닭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엎어져 울었다. 물을 길어와 아침 준비를 해야 하는데, 몸 깊은 곳에서 시작된 떨림을 멈출 도리가 없었다. 매일 스무 시간씩 글 연습을 해도 절대 이런 여행기는 쓰지 못할 것이다. 평생을 떠돌아도 이런 여행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먹을 게 떨어졌는데 왜 낙타를 잡아먹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잡아먹으면 당장 허기는 면할지라도 짐을 나를 수 없어서 그러나 했다.

나였으면 어땠을까? 낙타를 사람 대하듯 할 수 있었을까?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낙타도 말을 안 들어먹는다며 화를 냈겠지.

폐허가 된 도시를 만났을 때, 나였다면 거기서 포기했을 거다.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다시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는 듯했다.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모습이 이처럼 아름다울 줄 몰랐다. 비단 수개월을 홀로 있다 사람 사는 곳에 도착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아마가 죽었을 때 한 편으로는 슬펐지만, 기왕 죽은 거 어쩔 거냐며 남은 고기라도 썰어가야 하지 않나 여겼다. 그러지 않는 여행가를 이상히 여겼다. 여행기를 모두 읽은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는 이런 여행을 하지 못한다. 나와는 애초에 그릇이 다른 여행가였다.
 
이 여행가가 검은 사막으로 떠났을 때 지금 나보다 두 살이나 어렸다. 바로 옆에서 같이 걸었더라도 나는 이런 여행기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끝까지 가지도 못했을 게 분명했다.

노인은 같은 자리에 있어도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여행기가 된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마침내 알 수 있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려 나갔더니 노인이 이미 손수 양젖을 짜 아침을 차려놓았다.
 
“면목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맞을까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자금을 받지 않겠습니다. 전 여행가가 될 수 없어요.”
 
“아무나 그런 여행을 하는 것도, 그런 여행기를 쓰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여행가 중 그만큼 멀리 가본 이가 없단다. 그이의 발걸음이 황금 섬까지 이르렀단 말도 있지…….”
 
“황금 섬이 정말로 있답니까? 거긴 금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고, 강을 따라 흘러서 그저 건지기만 하면 된다면서요?”

 
내가 놀라 물었다. 노인은 대답 대신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만한 여행가가 되지 못한다고 여행가가 되지 못할 건 아니다. 늦잠을 자나 방에 갔다 네가 우는 모습을 봤다. 아무나 그 여행기의 진가를 알아보는 게 아니야. 많은 여행가들이 자기도 그가 갔던 곳에 간다면 그만한 걸 못 쓰겠느냐 하지.
널 받기 잘 했구나. 내 눈이 틀리지 않은 게야. 아직은 서가를 지켜도 되나 보다. 넌 이제 진정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어.”

 
전날 한숨도 이루지 못했는데 피곤하지 않았다. 동시에 꿈속을 걷는 듯 멍했다. 나는 이 여행기를 필사한 사람처럼 글씨를 곱게 쓰고자 했다. 전에는 왜 글자를 반듯하게 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되지 뭘 그리 까다롭게구나 싶었다. 이 여행기를 읽고 나서야 고운 글씨 속에서 여행기가 더 빛남을 깨우쳤다. 이 여행기를 쓴 여행가의 필체는 어떨지 궁금했지만 차마 보여 달라 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가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한 여행기 중 하나이리라. 여행가의 이름은 엘야르히무였다. 엘야르히무, 엘야르히무……. 수없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마침내 여행을 떠나는 날이 왔다. 노인은 내게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 곡물가루, 가죽 물병, 겉옷 겸 이불, 여벌 신발, 부싯돌, 종이와 붓을 건넸다.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가 많이 보고 마음껏 담아오너라.”
 
나는 노인에게 인사하고 서가를 떠났다. 서가에 온 지 7년 만이었다.
이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노인이 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가능한 노숙을 하며 돈을 아껴, 3~4개월이 지나 서가에 돌아왔다. 서가에는 그동안 새로 온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제법 풍족한 상인 집의 둘째 아들로 서가에 오기 전 글을 모두 뗐으며, 아비를 따라 곳곳을 여행한 경험이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인사했다. 아이는 깔보듯 날 바라보았다.
 
“네가 바로 그 닭대가리구나?”
 
새로 온 아이의 입에서 나 다음으로 서가에 왔던 아이의 이름이 나왔다. 그 아이와 길에서 마주쳤다 했다. 그 아이에게 나는 한심하고 멍청해 도저히 여행가가 되지 못할 이로 남아 있었다.

기가 죽어 방으로 돌아왔다. 방은 넓었다. 우린 끝과 끝에 자리 잡고 말을 섞지 않았다. 정적만이 흐르는 방에서 사이사이 적어둔 걸 바탕으로 여행기를 써서 노인에게 올렸다.
며칠이 흘렀다. 노인은 분명 다 읽었을 텐데도 말이 없었다. 배운 대로 정사 이야기는 쓰지 않았다. 새로 온 아이는 노인이 차마 뭐라 할 말이 없어 부르지 않는 거라 여겨 날 비웃었다.
 
“쫓겨날 날이 멀지 않았어. 카누인이 받은 아이들을 다 여행가로 만들어 주는 줄 알아? 안 되겠다 싶으면 가차 없이 내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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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내가 대꾸도 못할 만큼 기가 죽은 줄 알고 의기양양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노인은 내 첫 여행기를 받은 날 밤, 여행기를 다시 읽고 내가 참고할만한 여행기를 찾아 밤새 서가를 뒤졌듯이 분명 어떤 조언을 하면 좋을지 고뇌하고 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규칙을 지킨 자는 끝까지 거둔다는 신조를 지키며 살아왔다. 세상엔 드물지만 목숨보다 신조가 중요한 사람이 있다. 시키는 바를 성실히 행하고, 거짓을 늘어놓지 않는 한 절대 내칠 리 없었다.

첫 여행을 떠나 여행이야말로 내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장사꾼이 아니었다. 나는 여행가였다. 여행가가 되어야 했다. 노인은 오래도록 많은 아이를 가르쳐 왔다. 나처럼 한심한 자는 처음일지라도, 어떻게든 길을 찾을 것이다. 나는 노인을 믿고 기다리며 힘겹게 날 지탱했다.

마침내 노인이 날 불렀다. 노인은 내가 영주의 저택에 들른 장면을 가리켰다. 영주의 생일이었고, 요란한 잔치가 벌어졌었다.
 
“이 부분을 보강해 오너라. 너답지 않게 대충 넘어갔구나.”
 
“네.”

 
나는 대답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빈 종이를 앞에 두니 막막했다. 내가 여행가임을 알아본 영주의 집사가 날 초대했다. 잔치의 최고점은 무희의 춤과 광대들의 묘기였다. 넋 놓고 구경하던 중 집사가 내 어깨를 쳤다. 그리고 창고로 데려가 다른 하인과 함께 영주의 잔치에 초대한 값을 받았다. 돌아왔을 땐 광대들의 묘기는 끝났다. 나는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본 장면을 적어 다시 건넸다.
 
“제대로 보지 못할 일이 있었구나.”
 
노인이 말했다. 가슴이 뜨끔했다. 어떻게 여행기만으로 아는지?
노인은 다른 부분을 짚어 손보라 일렀다. 시키는 대로 몇 번이고 다시 썼지만 끝내 노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다음 해에 다시 자금을 받아 떠났다. 노인이 준 여행자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었다. 나는 굶거나 찬물로 배를 채우고, 사내에게 배운 대로 토끼 따위를 사냥해 잡아먹기도 하며 최대한 멀리 갔다. 그래봐야 거기가 거기였다. 대도시는 볼거리가 많으나 남들이 이미 다 둘러보았고, 작은 곳은 눈길을 끌만한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결국 돈이 떨어졌다. 나는 품에서 이무가 준 돈을 꺼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이부자리에서 꺼내 올 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그렇게 걷거나, 우마차 따위를 얻어 타며 항구 도시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는 상품들을 구경하다 웬 여인에게 눈이 갔다. 정확히는 여인이 입은 옷이 시선을 끌었다. 자수를 넣은 게 아니라 천에 그림을 그렸다. 색의 배합이나 옷에 넣은 큼직한 문양이나 사내를 따라 떠돌아다니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이었다.
 
“어딜 그리 보나?”
 
여인이 말을 던졌다.
 
“옷이 특이해서요, 곱네요.”
 
“이걸 가져오는 이는 나뿐이라네. 물길이 험하거든. 처음엔 다들 낯설어했는데 요즘은 제법 팔려.”

 
여인이 신나 말했다.
 
“어디서 가져오는데요?”
 
“그건 왜 묻는가?”
 
“전 여행가예요. 아니, 곧 여행가가 될, 아니, 되려는…….”
 
“여행가?”

 
여인이 신기해 날 훑었다.
우린 의기투합해 술집으로 갔다. 말이 좋아 술집이지 바닷가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만든 자리에 주인이 생선과 술을 가져다주면 직접 구워 먹는 방식이었다.

갓 잡은 생선은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사내는 주머니를 풀어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여인에게 술을 대접했다. 기분이 좋아진 여인은 날 배에 태우겠다고 했다.
 
“여행기에 꼭 미인이라고 써야 해, 알았지?”
 
여인이 말했다. 해가 지며 육지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차츰 사라졌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모닥불과 하늘에서 빛나는 별만이 어디가 땅이고, 하늘인지 알려줄 따름이었다.
 
“아부하지 않는군.”
 
여인이 말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알아요. 아부할 필요 없어요.”
 
내가 말했다.
여인은 서른다섯 살에 한 배의 선장이었다. 남들은 가지 않는 물길을 뚫어 육지와 교류가 없던 섬을 찾았고, 낯선 이를 경계하는 자들의 마음을 풀어 교역을 텄다. 여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배에서 내가 유혹할지도 몰라.”
 
“전 아까부터 유혹하고 있었는데요.”

 
여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날 밤 여인의 집에서 머물렀지만 말 그대로 잠만 잤다.
며칠 후 출항해 스무 날을 넘게 가 여인이 말한 섬에 도착했다. 섬이 가까워올수록 더워 처음엔 겉옷을 벗었고, 나중에는 소매를 걷었다.
 
“내 배에는 사내가 몇 없어. 자네도 믿을 만하다 여겨 받은 거니, 섬 여인들에게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말게.”
 
여인이 배에서 내리기 전 엄히 말했다.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섬이 가까워질 무렵부터 배에 있는 사내들이 대체로 나이 든 자들이거나, 뱃사람답지 않게 점잖은 자들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뱃전에 기대 배를 보고 몰려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내들은 천에 복잡한 주름을 넣어 허리춤에 묶었고, 여인들도 큰 천으로 모양을 잡아 몸에 둘렀는데 대부분 한쪽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천은 모두 붉고, 푸르고, 노란 원색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아찔했는데 거기에 보색으로 커다란 꽃, 나비 따위를 그려 넣어 현란한 꽃밭에 온 양 눈이 어지러웠다.
 
“흠……, 그새 또 바뀌었군.”
 
여인이 골치 아파 말했다.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꽃을 던지며 환영했다. 여인은 웃으며 그 지역 말로 능숙하게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처음 보는 나한테도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나는 가능한 한 여인들의 가슴을 보지 않으려 주의했다. 오면서 몇 마디 말을 배우긴 했지만 이들이 쏟아대는 말에 다 답변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인이 날 소개하자 섬사람들이 앞다투어 자기 집에 머물기 청했다.
 
“여행가가 뭔지 대충 설명했네. 조심해.”
 
여인이 짓궂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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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장편 [지우전 : 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 [부엉이 소녀 욜란드],
작품집 [원초적 본능 feat. 미소년], [각인]을 출간하고 다수의 공동 작품집에 단편을 수록한 이 인간의 작업 책상에는 컴퓨터, 프린터/스캐너 복합기, 지난 밤 마신 맥주 캔, 고양이가 있다. 네 발 달린 아해가 책상을 오르내리며 키보드를 밟아도 오타는 모두 작가의 책임이라는 게 냉엄한 현실.

오늘도 글을 쓰며 고양이와 키배, 아니 키보드 쟁탈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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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