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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D] “인간은 섬이 아니다”

“어떤 인간도 그 자체로 전체인 섬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대륙의 한 조각이며 큰 것의 일부이다. 흙덩어리 하나가 바닷물에 씻겨나가면 유럽 대륙은 그만큼 작아진다. (중략)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하나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애도하고자 종이 울리는지 사람을 보내 묻지 말라,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기에.”

400년 전 영국 형이상학파 시인 존 던(John Donne)이 ‘묵상 17’에서 한 말이다. 바로 이 문구가 20세기 초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낳았고, 지금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브렉시트(Brexit)’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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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영국 국민투표 전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만났을 때 “인간은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를 인용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독일 출신 사진작가로서 2000년에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한 바 있는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는 “인간은 섬이 아니다”를 표어로 넣은 브렉시트 반대 포스터(사진)를 제작해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려놓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퍼가도록 했다.

그러나 결국 영국 국민투표는 브렉시트 찬성, 즉 섬으로의 복귀를 택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그 결과가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으니 얄궂게도 새삼 “인간은 섬이 아니다”를 실감하게 한다. 게다가 영국에서 한참 떨어진 한국의 포털 뉴스 댓글에서 브렉시트의 복합적 원인 중 하나를 찾을 수도 있었다.

막상 영국 국민투표 결과가 충격을 주기 전까지 국내 포털 뉴스에는 브렉시트에 동조하는 댓글들이 상당히 많이 달렸다. “난민 때문에 오죽하면 그러냐, 내가 영국인이라도 찬성하겠다.”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 진짜 문제야.” 등등.

보다가 답답해서 댓글을 하나 달았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대공황 때 각국이 자국 보호한답시고 서로 서로 무역장벽 높이고 정치적?경제적 고립주의의 길을 걷다가 결국 경제는 더더욱 망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그런 재앙까진 안 가더라도 각국이 고립주의로 가면 한국 같은 수출 의존 국가의 타격이 특히 클 텐데 걱정도 안 되나?”

그러자 누군가가 그 댓글에 댓글을 달았다. 기억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그건 수출로 돈 버는 양반들이나 금융시장에 있는 양반들이나 걱정할 일이지. 난 어차피 흙수저 밑바닥 인생이라 상관없다. 그 잘난 세계화로 내가 덕 본 게 대체 뭔데?”

그 댓글을 읽고 무릎을 쳤다. ‘바로 이거구나, 바로 이 정서가 영국에서 브렉시트 찬성을 낳았고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낳는구나.’

결국 지금의 현상은 2011년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Occupy movement) 때 이미 불거졌던 경제 양극화에 대한 분노와 박탈감이 비틀린 다른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20세기 후반에 수출로 일어선 한국도 21세기 들어 수출 대기업의 부가 국민경제 전체로 파급(spillover)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쌓여가고 있다. 신고립주의는 영국,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 문제에 대한 답이 고립주의일 수는 없다. 경제적 고립주의에서 결국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중산층, 그중에서도 중산층의 하층인 중하층(lower middle class), 즉 사회의 근간인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다. 또한 정치?사회적 고립주의에서는 마이너리티의 권리가 - 인종은 물론이고 심지어 성별 마이너리티도 - 개방된 사회만큼 존중 받지 못하게 된다. 트럼프의 유세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고립주의는 언제나 함께 맞물려서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난 어차피 흙수저 밑바닥 인생이라 상관없다”는 사람에게 통할 수나 있을까?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청년층의 희망이 제거되어가는 지금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고립주의의 물결은 거세지기만 할 것이며, 한국도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 안 나오리라는 법이 없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국가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계층간, 세대간, 그밖에 모든 집단간의 문제에 적용될 수 있고, 또 고려돼야 한다. 세계화를 지지한다고 해도 세계화의 수혜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이 단절되어 있다면, 그것 역시 대륙의 일부가 아닌 섬처럼 구는 것이며, 고립주의의 거센 물결을 해결할 수 없다. 신고립주의 문제와 양극화 문제는 서로 엉켜 있고, 그것을 함께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전제로 풀어나가야 한다. 이것이 4백 년 전 시인이 준 지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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