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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D] 디올 ‘한국여성 비하’ 논란이 드러낸 것

“결과적으로 제 작품(사진1)이 그런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감도 느낍니다. 하지만 제 의도는 정말 그런 게 아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진에 나오는 거리는 퇴폐적인 곳이 아니라 광주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충장로의 한 골목입니다.

간판의 ‘룸 소주방’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룸살롱 같은 데가 아니라 대학생들도 많이 가는 소주 마시는 노래방이고요.

왜 하필 그곳을 골랐냐 하면, 저는 현대 한국의 전형적인 거리, 통일성 없이 제각각인 간판들이 어지럽게 몰려 있는 그런 거리를 찍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거리를 배경으로,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심지어 들고 있는 가방이나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이미지 스펙 경쟁까지 하는 피곤한 한국인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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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킨 이완의 사진작품 ‘한국여자.’ 프랑스 패션업체 디올의 미술협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진 작가 제공]

지난 14일 서울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미술가 이완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 청담동 디올 매장에 전시된 그의 사진작품이 거센 ‘한국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키고 전시에서 내려진 후였다. 그 사진은 프랑스 패션업체 크리스챤 디올이 세계 각지의 미술가에게 자사의 대표 핸드백인 ‘레이디 디올’을 주제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게 해서 전시하는 미술 협업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완의 사진작품에는 요란한 간판들로 찬 골목길에 어울리지 않게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레이디 디올 핸드백을 들고 무표정하게 서있는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 누가 봐도 풍자적이고 냉소적인 톤의 사진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많은 네티즌은 조롱의 화살이 가방 든 여성, 그리고 그녀가 대표하는 한국여성 전체라고 생각했다. 작품 제목이 ‘Korean Female(한국여자)’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룸 소주방’ 간판들이 워낙 눈에 띄니 가방 든 여성이 유흥업소 종업원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곧 “디올 백 드는 한국여자는 술집여자?” “한국여자는 성을 팔아 명품을 산다는 뜻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여성들의 분노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퍼져나갔다. 작품을 만든 한국 작가 이완은 ‘여성혐오자’로, 디올은 ‘한국 구매자를 조롱하며 호갱 취급하는 기업’으로 낙인 찍혔다.

그러나 미술 담당 기자로서 그 전부터 이완의 작품을 많이 봐온 나는 혼란스러웠다. 조각·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그의 작품 중에 여성비하적인 것은 없었다. 아니, 아예 남녀 성별(性別) 이슈를 주제로 한 작품 자체가 없었다. 그간 이완의 작품에 많이 나타난 주제는 우리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현대 경제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찰과 의문이었다.

  2014년 이완에게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안겨준 ‘Made-In(메이드인)’ 시리즈도 그랬다. 작가는 몇몇 소비재를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드는 실험을 했다. 즉, 설탕의 경우, 동남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것부터 설탕 가루를 만들기까지 모든 공정을 자신이 직접 하고, 그 과정을 담은 비디오와 관련 연구자료, 최종 생산물을 함께 전시했다.

이로써, 아주 단순한 일상용품도 자유무역체제에서 국가간 분업으로 생산된다는 것과, 그런 국제적 분업의 역사에 제국주의를 포함한 여러 복잡한 정치·경제·사회사가 담겨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그의 (어딘지 유머러스한) 최근 프로젝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길러서 과거 한국의 주력수출품이었던 가발로 생산하는 작업이었다. (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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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아트 바젤 홍콩에 참가한 이완 작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완의 ‘레이디 디올’ 관련 사진은 내게 ‘한국여성 비하’보다는 소위 ’명품’ 소비가 갖는 사회경제적 함의, 주로 미국 경제학자 톨스타인 베블런이 논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나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논한, 문화 소비 취향을 통한 계급간 ‘구별짓기(La distinction)’에 관한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작가는 도대체 왜 ‘한국여자’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그 제목은 제가 사진들을 평소에 ‘한국여자,’ ‘한국남자,’ ‘노동,’ ‘사물’ 식의 카테고리로 분리해 놓기 때문이에요. 공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분 사진은 ‘한국여자’ 카테고리와 ‘노동’ 카테고리에 중복되게 들어갑니다. 사실 ‘레이디 디올’ 프로젝트 사진 제목 ‘한국여자’에서 방점은 ‘여자’가 아니라 ‘한국’입니다. 어느 나라나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사치품 소비가 있지만 한국은 유독 개인의 소득 여건과 상관없이 사치품 소비 비율이 높습니다. 남자인 제 친구 한 명도 ‘최소 xx(독일 자동차 브랜드) 정도는 몰아야지.’ 하더군요.

‘왜 그래야 하지?’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저는 그게 한국의 극심한 스펙 경쟁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보이는 모습도 스펙의 일종으로 여겨지고 ‘명품’으로 그 이미지 스펙을 높이려고 모두 발버둥치는 겁니다. 핸드백이라서 여성을 등장시켰지, 시계나 자동차였으면 비슷한 사진으로 남성을 등장시켰을 거예요.”

그러면서 이것이 여성혐오 논란으로 갈지 꿈에도 몰랐다는 작가에게 나는 제목의 ‘한국여자’라는 말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언제나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인터넷 문화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이슈가 된 사람이 남성이면 그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사람이 여성이면 ‘한국여자의 문제’로 전체가 싸잡혀 비난 받고 성별(性別) 이슈로 프레이밍(framing)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냉소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한국여자’라는 제목이 달리면 그간의 왜곡된 프레이밍의 경험이 자동 상기되기 쉽다. 게다가 여성의 소비행태를 문제 삼아 ‘된장녀,’ ‘김치녀’ 등으로 규정하는 일이 만연하면서, ‘왜 남자들의 음주, 외제차 등의 소비행태는 검열하지 않고 여자들의 커피, 명품백 소비만 검열해서 규정하느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져왔다. (‘된장남,’ ‘김치남’도 있지만 그것은 맞대응의 의미로 사후에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완의 ‘한국여자’는 본의 아니게 이 갈등지점을 정확히 건드려 폭발시킨 것이었다.

디올 논란이 뉴스에 뜨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왜 함부로 ‘한국여자’라고 일반화하나, 명품 한 번 사본 적 없는 나는 뭐지?”라는 여성부터 “왜 여자가 명품을 갖고 있으면 자기가 정당하게 번 돈으로 샀다는 생각을 안 하고 성을 팔았거나 남자에게서 뜯어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여성까지, 주로 왜곡된 일반화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여자가 다 그렇지 뭐,” “한국여자가 자초한 일이다”라고 빈정거리는 남성들의 댓글도 많이 나타났고, 분노한 여성들이 “매일 사회면을 장식하는 성범죄자와 폭력범이 한국남자로 일반화되면 기분 좋은가?”라고 맞받아치면서 댓글판은 한마디로 전쟁터가 됐다.

이런 가운데 이완의 사진작품이 ‘성 팔아 명품 사는 여성’인 건 기정사실이 됐고, 작가의 본래 의도를 진지하게 물어보는 매체는 거의 없었다. 논란이 생기기 전 디올에서 게시한 작품 설명 동영상에 나온 작가의 다소 애매모호한 인터뷰가 뉴스에 반복 인용될 뿐이었다.

거기에서 작가가 “사진들을 합성했다”고 하는 말이 유흥업소 간판을 일부러 모아 합성했다는 말로 오해되어 ‘여혐’ 의혹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그간 인터넷 문화의 왜곡된 프레이밍과 그에 따른 분노와 의심이 낳은 또 다른 왜곡된 프레이밍이었다.

이완 작가는 자신도 뉴스 댓글들을 보았다며 고개를 끄떡였다. “내 작품이 일부 남성들에게 그런 공격의 빌미를 주고 여성들이 함부로 일반화된다는 분노를 일으키게 한 점을 인정합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그런 갈등들을 많이 생각해보게 될 것 같아요.

그러나 내 본래 의도가 정말 그게 아니었다는 것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합성으로 말하자면, 그 룸 소주방 간판들은 거기 원래부터 있는 것들이고 같은 장소를 낮과 밤에 걸쳐 15번 찍어 그것을 합성했다는 얘기입니다. 사진의 어느 한 곳에 초점을 두지 않고 모두 균등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기자 특유의 의심을 발휘해 문제의 골목의 다른 사진들을 찾아보았는데 작가의 말은 사실이었다. 또 작가와 아무 연고가 없는 광주 출신 여성 대학원생에게도 물어보았는데, “충장로는 광주의 명동 같은 곳이고 룸 소주방은 그냥 노래방 기계 있고 소주 마시는 곳이에요. 저도 학교 친구들과 많이 갔어요.”라는 답을 들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디올 한국 지부에서는 이런 사후적 오해가 발생할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가였다. 또한, ‘디올 백 사는 한국여자는 술집여자’라는 누명을 벗기더라도 이완의 작품이 결코 디올 백 소비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데, 디올은 어떤 생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전시장에 걸었을까? 이 점이 궁금해서, 작가와 인터뷰를 하기 전부터 계속 디올 측에 연락을 했으나 답이 없었다.

단지 디올은 논란이 계속 확대되자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작품에 대한 논란으로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이 사진 작품의 전시를 이미 중단했고 앞으로도 전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작품의 본래 의도와 그것을 전시하게 된 과정에 대한 자세하고 적극적인 해명은 없었다. 뉴스 댓글판의 반응은 싸늘했고, “술집여자 취급 받을까 봐 무서워서 어디 사겠냐?”라는 댓글만 줄을 이었다.

이완 작가에 따르면, ‘레이디 디올’ 아트 프로젝트는 파리의 디올 본사에서 진행하는 것이고, 작품 의뢰와 전시 결정도 프랑스 본사에서 했다. “저는 작품을 완성했을 때 관람객들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고 단지 디올 본사가 싫어할 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디올 본사는 워낙 이런 미술 협업 프로젝트를 많이 해왔고, 자사 제품이 사치품이라는 것도 인정하고, 미술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있더군요. 디올 본사는 제 작품을 좋게 평가했고 구매도 했어요. 전시에서 내리는 것도 반대했는데, 한국 지사에서 상황이 심각하니 내려야 한다고 거듭 요청해서 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작품이 내려진 것을 매우 유감으로 여기고 있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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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디올 정신’ 전시. [사진 디올 제공]

즉, 디올 본사는 한국인의 디올 백 소비를 ‘과잉 스펙 경쟁의 일환’으로 비판적으로 해석한 이완의 작품을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예술을 존중하는 기업의 면모를 보였지만, 그 대가로 구매자들에게 욕만 잔뜩 먹고 있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인 것이다. 지난해 디올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또다른 미술 협업 전시 ‘Esprit Dior(디올 정신)’을 열어서 큰 성공을 거뒀었다. (사진 3) 전시 내용도 좋았고 무료였기에 많은 관람객들이 블로그와 소셜미디어에 호평을 남겼다. 지금 디올은 그때 쌓은 이미지를 모조리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사실 기업이 예술 후원을 하거나 예술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 이런 리스크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오랜 예로 20세기 초에 미국 라커펠러 재단에서 멕시코 벽화운동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에게 벽화를 주문했다가, 공산주의자인 리베라가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얼굴을 커다랗게 그려놓는 바람에 기겁한 뉴욕 시민들에게 온갖 비난을 받고 결국 벽화를 철거한 사례가 있었다. (사진4) 그런데도 기업들이 예술 협업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또한 예술가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종종 나오는 이런 역작용의 결과는 쓰디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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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리베라가 라커펠러 센터의 의뢰로 그린 벽화. 오른쪽에 레닌의 모습이 보인다. 물의를 빚고 뉴욕에서 철거된 후 작가가 멕시코시티에 다시 그렸다.

지금 디올의 문제는 프랑스 본사와 한국 지사의 커뮤니케이션 부재에 있는 것 같다. 본사는 예술에 대한 열린 마음의 원칙만 고집하면서 지금 이완의 ‘한국여자’가 한국 인터넷문화의 성별 프레이밍으로 쌓여온 갈등과 어떻게 잘못 맞닥뜨려 폭발했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지사의 대응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무력하다.

얼렁뚱땅 작품을 치울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 작품을 보고 분개한 관람자들과 소비자들을 초청해서 아티스트 토크라도 열어서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관람자들이 의문 가는 점들을 속시원히 묻고 답을 듣게 하는 식으로 오해를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이대로 침묵하고 있다가는 이번 사건은 디올뿐만 아니라 기업 예술 협업의 대표적인 역효과의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결국 이번 디올 ‘한국 여성비하’ 사태의 전말은,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사치품 소비에 대한 복합적인 시선과 함의, 소비현상을 성별 프레이밍으로 몰아간 기존의 인터넷 문화와 그에 따른 반발이 아이로니컬하게 낳은 또다른 성별 프레이밍, 여기에 기업 미술 협업의 본질적 리스크와 미숙한 사후 대처가 만나 빚어진 사건이다. 생각할 것이 참 많은 사건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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