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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D] 노벨상 탈락자가 더 큰 뉴스로 -2008년 로버트 갈로-

노벨 평화상만큼은 아니지만 과학 분야에서도 수상자 선정이 논란이 되는 때가 있다. 대개는 받아야할 누군가가 탈락한 경우인데, 일반적으로는 전문가 사회에서 취중방담(酒中放談) 정도로 지나간다. 하지만 2008년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로 프랑스인 두명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고 미국의 로버트 갈로가 탈락하자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놀라움을 표시하며 탈락 배경의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탈락자가 수상자보다 더 관심을 끌게 된 드문 경우이다. 배경을 살펴보자.
 
1981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LA 의료진이 정체불명의 면역결핍증에 걸린 환자들의 발생을 처음으로 보고한다. 젊은 백인남자 동성애자들이 많았다. 많은 증거들이 감염성질환임을 시사했다. 당시 게이 코뮤니티는 인권투쟁을 통해 정치적으로 많은 힘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성적 접촉으로 전염될 가능성과 맞물려 이 질환에 대해 미국 사회와 정계가 큰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일군의 과학자들이 그 원인을 찾고자 뛰어들며 경쟁의 불이 붙었다. 이 경쟁의 선두에 미국 정부 연구기관인 국립보건원 즉 NIH의 로버트 갈로 그룹이 있었다. 당시 에이즈에 대한 미국 과학계의 관심도는 유명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수와 질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저급한 실험결과들이 ‘사이언스’지를 비롯한 고급 학술지에 수없이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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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로는 1980년에 HTLV-1, 82년에는 HTLV-2라고 불리우는 바이러스와 혈액암과의 연관성을 밝혀 이미 주목받는 스타과학자였다. 1983년 5월 20일 ‘사이언스’지에 에이즈 관련해서 여러 편의 논문이 실렸다. 그중 2편은 갈로 연구실의 주도로, 1편은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몽따니에 그룹이 발표한 것이다. 이 발표를 통해 갈로는 에이즈 환자로부터 HTLV가 발견되었다며 이것이 원인 바이러스라고 주장했다.
 
반면 파스퇴르 그룹은 프랑스 환자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했다면서 이를 LAV라고 이름지었다. 갈로는 LAV가 HTLV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었기에 파스퇴르 그룹이 ‘사이언스’지에 논문 내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갈로는 이미 전년에 ‘라스카’상을 받은 유명인이었고 언론플레이 능력이 탁월했던 반면, 프랑스 그룹은 명성도 낮고 영어실력도 부족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84년 5월 4일에 갈로는 ‘사이언스’지에 무려 4편의 논문을 한꺼번에 내면서 에이즈 환자에게서 HTLV-3라는 바이러스를 발견했는데, 이 바이러스의 배양기술과 진단법을 개발하여 조사하니 이것이 에이즈의 주범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논문 발표 열흘 전인 4월 23일에는 미국 보건부 장관 마가렛트 헤클러가 정부 연구소인 NIH에서 일하는 갈로가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를 찾았고 이제 진단이 가능하며 백신 개발도 얼마 안 남았다고 ’미국 과학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그날 미국 정부는 특허를 출원했다. 추후 미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특허를 사용하니 엄청난 로얄티 수입이 들어왔다.
 
 
그런데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갈로의 HTLV-3는 몽따니에의 LAV와 동일한 바이러스라는 것이 밝혀졌다. 갈로는 몽따니에로부터도 샘플을 받았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당연히 갈로의 바이러스가 사실상 파스퇴르의 샘플에서 온 것이라고 의심했다.
 
일단 두 개의 관점에서 큰 문제가 생겼다.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를 처음 밝힌 것이 누구냐는 것과 특허의 주인은 미국과 프랑스 연구소 중 어디냐는 것이었다. 더구나 파스퇴르 그룹은 미국 NIH보다 넉달이나 먼저 미국에 특허를 출원한 바 있었다. 거대한 미국의 NIH와 달리 파스퇴르연구소에게 돈은 중요했다. 1985년 8월 파스퇴르 연구소장은 미국 보건부를 찾아가 특허 로열티를 나누자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런데 그해 12월에 파스퇴르 연구소를 대리하는 변호사에게 익명의 제보 전화가 왔다. 갈로를 수퍼스타로 만든 84년 5월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바이러스 사진이 사실은 프랑스 바이러스인 LAV라는 것이다. 그제서야 미국 보건부는 파스퇴르연구소에게 로얄티 수입을 서로 나누자고 제안했지만, 이번에는 프랑스 측이 거절하고 아예 미국 정부를 고소했다. 게다가 86년 1월에는 ‘정보자유법’에 따라 갈로의 실험실 노트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정황은 갈로가 프랑스 바이러스인 LAV를 HTLV-3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켰으며 이를 숨기고 있음을 시사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자국 연구자가 에이즈 연구의 선봉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이 필요했고, 파스퇴르는 로얄티 수입이 중요했다. 1987년 3월 23일 갈로와 몽타니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 그간의 과정을 정리했다. 그리고 8일 후에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시라크 프랑스 총리가 만나 공동합의에 서명하였다. 두 사람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공동’ 발견자이고, 특허 로얄티 수입은 양국이 반씩 나눈다는 것이다. 이들의 합의는 HIV 발견 연대기 형태로 1987년 4월 ‘네이처’지에 상세히 실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달이 벌어졌다. 1989년 11월 미국의 저명한 신문 ‘시카고 트리뷴’이 갈로의 은폐 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한 무려 5만자 분량의 탐사보도를 낸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갈로의 최대 업적인 84년 ‘사이언스’지의 논문 4편과 특허는 모두 프랑스의 LAV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갈로는 이를 HTLV-3로 명명하고 자기네가 독자적으로 발견한 것처럼 은폐했다”라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1990년 미국 정부는 위원회를 꾸려 연구부정 가능성을 조사했다. 이와 별도로 갈로는 특허 조작과 국회 위증 혐의도 조사받았다.
 
3년의 집중 조사 끝에 밝혀진 것은 ‘허무 개그’와 같다. 몽따니에가 미국의 갈로 연구실로 보낸 샘플은 파스퇴르 측의 실수로 환자가 뒤바뀐 상태에서 분리된 바이러스였고, 갈로의 실험실에서 이를 받아 배양하는 과정 중에 다시 ‘실수’로 미국 측 세포와 섞여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갈로 실험실에서는 ‘이를 모르고’ 계속 배양해서 잘 자라는 것을 골라내어 연구한 결과가 84년 5월 사이언스에 실린 HTLV-3라는 것이다. 종국에 갈로는 법적 면죄부를 받았지만 그의 명성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바이러스 발견 과정에서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갈로의 업적은 뚜렷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IL-2 덕분에 T 세포를 효율적으로 배양했고, 따라서 에이즈 바이러스를 대량생산할 수 있었으며, 이 바이러스를 수거해서 단백질들을 만들어 진단법을 개발했다. 또 이를 이용해서 환자의 혈액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 환자가 이 바이러스로 감염되어 있음을 발견하여 에이즈의 원인임을 명확히 밝혀냈다. 몽따니에보다는 한참 더 수준 높은 실험을 한 것이다. 그 후에도 그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중요한 발견들을 거듭했다.
 
에이즈 분야에 노벨상이 다가옴을 느낀 갈로와 몽따니에는 2002년 ‘네이쳐’지에 일종의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87년 양국의 신사협정을 재확인하면서 이해 당사자 간에 ‘역사 바로세우기’가 이루어졌음을 알리며 수상을 준비했다. 그러나 갈로는 노벨상 선정에서 탈락했다.
 
미국의 많은 언론들은 이에 대해 비판성 기사를 냈다. 그의 기여가 몽따니에 만큼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몽타니에와 함께 노벨상을 받은 바레시누스는 몽따니에 밑에서 일하던 사람으로서 좋은 바이러스 연구자긴 하지만, 갈로를 탈락시키면서까지 이 특별한 상을 줄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궁색한 논리로 자신들의 결정을 방어했다. 우리말로 풀면 대충 “노벨상은 최초 발견에 초점을 맞추지 그 이후 업적에 주는 것이 아니다”, “수상 선정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변호사들의 합의 문서에 기반해서 주는 것이 아니다“는 취지였다.
 
노벨상에서 탈락한 후 그의 기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갈로는 “25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XXX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과학적 유산을 뺏아가지만 않는다면 괜찮다”라고 했다. 당시 71세가 된 갈로의 쿨한 반응이었다.
 
사실 갈로는 프랑스 그룹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업적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IL-2를 발견해 T 세포면역학 연구에 큰 기여를 했고, 레트로바이러스와 인간 암과의 관계를 최초로 밝혔다. 또한 HHV-6라는 새로운 종류의 헐피스바이러스를 발견하는 데도 기여했다. 거의 모든 발견에서도 그는 “공(功)은 모두 내 것”이라는 업적 독점욕으로 인해 논란을 일으켰다.
 
갈로는 노벨상 전 단계로 알려진 ‘라스카’상을 82년과 86년에 받았다. 이 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현재 79세인 그는 지금도 현역으로서 활동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새로운 에이즈 백신을 개발해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갈로는 총명함, 열정, 무자비한 적극성으로 생명과학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뤘다. 신세계 미국의 전형적인 선도 과학자를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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