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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D]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앨런 튜링(A. Turing)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천재의 어둡고 고독한 인생을 그렸다. 요즘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공지능(AI : Artificial Intelligence)의 기본 개념은 튜링이 1950년에 발표한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으로 거슬러 오른다. AI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56년 ‘다트머스 컨퍼런스’에서의 AI 프로젝트 기획에서 비롯된다. 튜링의 ‘생각하는 기계’를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개발하자는 얘기를 하는 자리였는데, 장차 컴퓨터가 세계 체스 챔피언이 될 거란 예측도 나왔다.

이러한 예언은 컴퓨팅 기술의 혁신으로 실현되기 시작한다. 주요 기술혁신이 그랬듯이, AI 연구도 미 국방부가 냉전시기에 연구개발을 지원한 데 힘입어 60년대에 활기를 띤다. 하지만 연구비가 삭감되고 비판 여론이 일면서 주춤한다. 그러던 중 80년 미 카네기 멜론 대학이 세계 체스 챔피언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10만 달러짜리 프레드킨 상(Fredkin Prize)을 내건다. 컴퓨터와 인간의 머리싸움이 프레드킨 재단 지원의 프로젝트로 본격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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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첫 번째 시상(5천 달러)은 81년 마스터급 체스 기계를 개발한 벨 랩 팀에게 돌아간다. 두 번째(1만 달러)는 89년 그랜드 마스터급 체스 기계(Deep Thought)를 개발한 카네기 멜론 대학원생 다섯 명이 차지한다. 드디어 세 번째(10만 달러)는 초당 평균 2억 개의 체스 착지를 처리하는 수퍼컴 딥 블루(Deep Blue)로 개량시킨 IBM 팀에게 돌아간다. 97년 딥 블루는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G. Kasparov)를 꺾는다. 이어서 2011년 IBM 수퍼컴 왓슨(Watson)은 TV 퀴즈쇼 제퍼디에서 역대 챔피언들을 물리치며 기계 지능의 위력을 과시한다.

프레드킨 재단의 설립자인 프레드킨(E. Fredkin, 1934- )은 AI 기술의 권위자이자 디지털 물리학 등의 프론티어다. MIT·카네기 멜론 대학 교수 등을 지내며 산업·군사 연구 응용에 이름을 떨친 그는 138억 년 우주의 진화에서 우주의 탄생, 생명의 탄생, 인공지능의 탄생을 우주사(宇宙史)의 3대 사건이라 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첫 대국 때 나는 그 옆방에서 현장의 긴박한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프레드킨의 예언이 실현되는 건 시간문제로구나 싶었다. 90년대 이후 사물의 특징을 파악하게끔 컴퓨터 알고리즘이 진화하고, 판단 근거인 빅 데이터가 접목되면서 AI 기술은 어느새 사람을 닮게 된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는 인간의 두뇌처럼 학습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의 소산이었다.

사람의 딥 러닝의 머리는 6세 때 거의 완성되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책 읽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프로 기사가 평생 동안 수만 판의 바둑을 둔다 한들 한 달에 100만 개의 기보를 학습하며 40수 앞을 보고 바둑알을 놓는 알파고를 이겨낼 도리는 없을 터이다. 오히려 1승을 기록한 이세돌 9단의 승리가 신기해 보이는 이유다. 딥 블루에게 패한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는 영국 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에 “바둑이여 잘 싸워라.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썼다든가.

세기의 대국이 몰고 온 신드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대결을 패러디한 TV 연예기획이 등장하고, 유치원에 놀이바둑 교실이 차려졌다. 대세에 뒤질세라 정치권은 20대 총선 비례대표에 과학기술계를 전진 배치시켰다. 정부는 한국형 알파고 개발 투자를 대폭 늘리고 기업형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세운다 한다. 지능정보기술이란 용어는 AI를 비롯해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 데이터 등의 기술을 포함하는 신조어다.

AI 기술에 대한 흥분과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최근 인공지능 채팅 봇 테이(Tay)가 잇달아 에러를 냈다. 미국인 16세 소녀의 생각과 말투를 본떠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애가 “히틀러가 옳았어요. 난 유대인이 싫어요.” “페미니스트는 암이얘요.” 등의 황당 발언을 트위터에 올린 것이다. 테이를 세상에 내놓은 마이크로소프트는 기겁을 하고 트윗 송출을 중단했다. 그런데 다시 또 얌전치 못하게 욕을 하는 바람에 송출이 중단됐다.

구글은 AI 개발에만 연간 3000억 원 이상을 투입한다. 구글의 알파고는 세 가지 데이터를 쓴다. 바둑 규칙, 인간 최고수들의 기보(棋譜), 그리고 딥 러닝에 의해 스스로 생성해 낸 데이터다. 입력된 기보 정보를 분석하고 학습해서 규칙에 따라 바둑 패턴을 익혀 선수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인류 최고수를 이겼다. 과학에 무관심하던 우리 사회가 기술혁신의 충격에 대해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갖게 된 건 이세돌이라는 인류 대표 덕분이다.

테이의 트윗 얘기로 돌아가서, 테이는 검색 엔진이 수집한 웹문서와 온라인 대화의 데이터베이스를 교과서 삼아 대화법을 학습하며 말을 배웠다. 그 과정 어디선가 인종 차별의 편견과 욕지거리를 배운 것이다. 이런 인공지능으로 갖가지 정보 서비스를 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찌 될까. 무엇이 편견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어떤 기준으로 가르쳐야 할까. AI 기술에서는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등의 신뢰성이 생명이다. 신뢰성이 흔들리면 결과는 오류가 되고 만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AI 기술의 군사적 이용이다. 미 국방부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이미 도시나 건물 속에서 목표를 찾아내 공격하는 초소형 비행체를 연구하고 있다 한다. AI의 자동무기 체계 개발은 핵무기에 이은 무기혁명의 공포시대를 예견케 한다. AI 기술의 윤리가 중차대한 과제가 될 것임을 깨우치는 대목이다.

그 끝을 모르는 채로 AI 기술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애플의 시리(Siri), 마이크로소프트 코르타나(Cortana), 삼성 S보이스, 구글의 검색, 페이스북의 맞춤형 정보 추천 등 여기저기서 버츄얼 비서 역할을 야무지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택시 기사의 말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길 안내를 하는 아가씨의 기계음을 들으며 “요샌 집 안팎에서 다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세상이예요.”

AI의 원조 기업이라 할 수 있는 IBM의 왓슨은 어느새 인공지능의 통합 서비스로 진화됐다. 병원·보험사와 손잡고 의료 진단과 처방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2013년에는 폐암 처방 앱을 내놓았다. 2014년에는 제약·출판·바이오 연구개발, 빅 데이터 정보 제공 등을 담당하는 IBM 왓슨 그룹이 탄생했다. 진단율의 정확도가 매우 높아 신참 의사를 뺨친다. 왓슨의 디지털 법률 전문가 로봇 로스(ROSS)는 음성 명령에 따라 판례 등 법률 정보와 승소 확률 등을 알려주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금융분석 로봇 켄쇼(Kensho)를 도입했다. IBM의 셰프 왓슨은 수많은 레시피를 검색해 새로운 레시피를 내어놓는다. 일본 도쿄와 미국에서는 왓슨의 레시피에 따라 조리해 서비스하는 곳도 있다.

사람의 뇌의 진화는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다. 이미 몸무게에 비해 커질 만큼 커졌다. 반면 인공지능의 용량에는 제약이 없다. 기계에 인공지능이 장착되면 자율성을 갖추게 된다. 무인항공기나 자율주행차가 그런 사례다. 그리 되면 사람의 역할은 밀려난다. 한 가지 일을 잘하는 인공지능을 여럿 융복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사람의 지능보다 훨씬 뛰어난 초지능(超知能)의 출현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2040년경엔 인간의 판단 능력과 비슷한 인공지능이 나오리라 한다. 10년 뒤 AI 시장규모는 2000조 원이 될 거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실업 때문에 고전하는 터에, 일자리가 급감한다니 걱정일 수밖에 없다. 미래직업 리포트가 더욱 주목을 끄는 이유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 보고서는 20년 내에 인공지능 때문에 47%의 직업이 사라질 거라 예측한다. 감성과 창의성으로 사람과 공감해야 하는 직업은 살아남을 거라지만 그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를 일이다. 2016년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은 앞으로 5년 사이에 선진국과 신흥시장 등 15개국에서 일자리 710만 개가 사라지고 210만 개가 생길 것이라 예측한다.

올해 세계경제포럼은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다루면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슈밥(K. Schwab)은 “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라 말한다. 과학자 출신의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의 번영을 위해 디지털 산업화, 인더스트리 4.0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밀려오는 건 실체적인 변화다. 그렇다면 이번 파고는 앞서 있었던 세 차례 산업혁명과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

제1차 산업혁명은 1750년 영국에서 시작돼 유럽 대륙으로 번지며 1830년대까지 퍼져나갔다. 당시 영국이 선두주자가 된 배경은 식량 증산과 인구 증가로 신산업 창출의 여건이 조성된 탓이었다. 기술적 돌파구는 1760년대 석탄으로 가동되는 증기기관 보급, 방적기 개량(제니 방적기, 수력 방적기 등)의 면직물 공업의 기계화가 주도했다. 나폴레옹 군대는 군복이 화려하기로 유명한데 그 옷감은 영국 산이었다. 철의 제련 방식 혁신으로 생산속도가 빨라져 기계와 수송용 철도 건설 수요를 충당한 것도 주요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기술혁신은 기존 산업의 개량 수준이었다. 기초과학 연구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기술혁신도 아니었다. 오히려 1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인은 기업가 정신이었다. 장차 얻게 될 산업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당장의 리스크를 무릅쓰는 대담한 기업가 정신이 돋보인 성취였다. 물론 금융 지원도 중요했다. 이런 의미에서 제1차 산업혁명은 18세기가 낳은 3대 사회혁명의 하나라고도 한다. 18세기의 다른 두 혁명은 대영제국의 통치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미국 혁명(1765-83), 공화정과 자유 민주주의를 세운 프랑스 혁명(1789-99)이다.

당시 흥미로운 것은 1810년대 영국의 중부·북부 직물공업 지역에서 기계 파괴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러드(N. Ludd)라는 인물을 지도자로 하는 비밀결사체의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었다. 당시 상황은 기계화로 인해 직물산업의 일자리가 줄고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경기 불황에 빠진다. 물가 상승과 임금 체불, 실업난 등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그들의 고난의 원인을 기계화의 탓으로 돌리고 기계 파괴운동을 벌인 것이다. 이에 자본가와 정부는 초기에는 무력으로 탄압하고 나서지만, 결국 사회개혁 운동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제2차 산업혁명은 1870년대부터 화학염료·전기·통신·정유·자동차 산업 등의 신산업을 근간으로 전개된다. 이 때 기술혁신의 주체로 부상한 것은 대기업이었다. 기술 주도권은 영국에서 독일과 미국으로 옮겨간다. 그 과정에서 기존 기술 시스템의 혁신이 일어난다. 그러나 제2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상 최초로 과학에 기반을 둔 기술(science-based technology) 혁신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초반부터 독일에서 시작된 연구중심 대학의 출현은 과학-기술 사이의 연결의 단초가 된다.

제2차 산업혁명은 사회혁신과 연결된다. 대량생산 방식의 포드주의(Fordism)와 과학적 관리(mamagement)의 테일러주의(Taylorism) 등의 이즘이 전 세계로 전파된 것이다. 그리하여 시스템·질서·컨트롤 등의 개념이 핵심 가치로 등장한다. 크고 빠를수록 좋고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지향주의 믿음도 힘을 얻는다. 요컨대 제2차 산업혁명은 기술혁신과 생산체제의 변화로 경제와 사회를 변혁시켜 현대산업사회라는 새로운 문명 형태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60년대 들어 반과학주의와 환경사회운동 등 대항문화(Counterculture)를 낳게 된다.

제3차 산업혁명은 60년대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정보통신기술 혁명을 가리킨다.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에 기초한 기술혁신으로 일상생활은 물론 제조업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된 것이 특징이다. 그 과정에서 글로벌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어디서나 가능한 컴퓨팅 파워를 이용해 3D 프린터나 세계 곳곳의 공장과 연결함으로써 거대한 메이커 공간(Maker Space)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 상하이시는 100개의 DIY 제작 스튜디오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본다면 3차 산업혁명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런데 돌연 4차 산업혁명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3차와 4차의 질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3차 산업혁명은 정보 기술의 확장과 그것에 의한 생산 자동화로 규정하는 것 같다. 그것과는 달리 4차 산업혁명은 사람과 사물과 공간이 인터넷으로 초연결되고, 거기서 생산되는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이버 시스템과 물리적 시스템이 연동된 복합 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으로 재편되는 한편, AI 기술에 의해 최적의 상태로 제어되는 새로운 차원으로의 진화를 일컫는다. 요컨대 초연결과 초지능의 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는 AI, 사물인터넷(IoT, IoE), 로봇, 드론, 가상현실(VR), 3D 프린터, 자율주행차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기술의 융합으로 산업 간, 기술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플랫폼, 미국의 산업 인터넷 컨소시엄, 일본의 로봇 혁명 이니셔티브 등이 선두에 섰다. 이들 프로젝트에 의해 기술혁신은 물론 표준화 등의 글로벌 경쟁과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2011년부터 제조업 발 IoT로 새로운 생산 방식을 실현하고 있는 독일의 전략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 산업혁명에서의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은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사회체제 혁신과 서로 조응하며 전개됐다. 슈밥 회장의 예측처럼, 4차 산업혁명은 필경 산업·경제·고용·사회·정부 형태까지 바꿀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 개발 중심과 일자리 감소 우려에서 나아가 기술과 사회를 엮어서 보고 입체적 대책을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기술혁명기에는 그것을 이용하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 사이에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급속도로 전개될 사회 변동의 폭과 깊이를 미리 가늠하고 통합적 관점에서 실효성 있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한국과총 차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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