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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D] 책가도를 보며 반지성주의를 반성하다

“무식은 미덕이 아닙니다, 정치에서나 삶에서나.”

지난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럿거스 대학 졸업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반지성주의에 대해 이렇게 돌직구를 날렸다. 여기서 ‘무식’과 반지성주의는 학력과 상관 없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길게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문제를 길게 설명하는 전문가들에게 “짜증나니 한 마디로 말하라”고 외치는 것. 시간을 두고 다각도로 접근해야 할 문제를 “이게 다 xx 때문이다”로 요약해버리는 것. 그리고 그 ‘명쾌한 정답’을 밀어붙이기 위해 정보와 데이터를 끼워 맞추는 것.

경제학의 큰 별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대공황 때 위기에 처한 시장경제를 구했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정책을 이야기할 때 결코 명쾌하게 말하지 않았고 일관되지도 않았다. 그것에 대해 시비 거는 사람이 나오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새로 바뀐 정보를 얻으면 결론을 수정합니다. 귀하는 어떻게 하는데요?”

아마 반지성주의자라면 당당하게 대답할 것이다. “응, 결론은 정해져 있고 거기 맞는 정보만 진짜 정보야. 딴 건 다 반대자들의 음모야.” 그래서 일본의 지식인 우치다 다쓰루는 “반지성주의자들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했다. 앞 세대의 시행착오를 숙고하는 일도, 자신의 ‘정답’을 시간을 두고 반성하고 검증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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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가도

사실 이런 반지성주의적 욕망은 우리 모두 안에 꿈틀거린다. 나는 얼마 전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의 ‘조선 궁중화 민화 걸작: 문자도文字圖 책거리冊巨里’ 전시에서 조선 후기의 장려한 ‘책가도’ 여러 점을 보며 (책 정물화인 ‘책거리’ 중에서도 책장에 꽂힌 책을 묘사한 그림이 ‘책가도’다. 사진 1,2 참고), 거기 담긴 순수한 호기심과 다양한 지식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내 안의 반지성주의를 몰아낼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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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가도 부분 확대

이 매혹적인 그림들에는 한국 전통 채색화법과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화의 투시원근법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고, 단정하게 쌓인 책들 사이로 값진 문방구와 중국 도자기, 향로, 산호가지에 매달린 서양 시계를 비롯한 각종 진기한 물건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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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메니코 렘프스

미술사학자 조이 켄세스(Joy Kenseth)와 김성림에 따르면, 이러한 책가도의 기원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왕족과 학자들이 만든 'The Cabinet of Curiosities,' 즉 '호기심의 방' 또는 '진기한 것들의 방'으로 번역되는 초기 소형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을 묘사한 서양화와도 닮은 데가 있다.(사진 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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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보각경도

이것이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청나라에 전해져 황실의 다보각(多寶各)이 되었고, 선교사들이 서양화법으로 다보각을 묘사한 그림 ‘다보각경’(사진 4)이 조선에 알려져 책가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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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한종의 책가도

그런데 조선의 그림은 진기한 물건보다 책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며, (사진 5) 더구나 이것이 하나의 그림 장르로 집중 발달한 예는 세계에서도 찾기 어렵다고 한다. 즉 책가도는 낯선 서양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개방적 호기심과 중국인도 인정한 조선인의 유별난 책 사랑이 결합된 세계적이면서 한국적인 그림이다. 여기에는 동서양을 관통하는,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알고자 하는 백과사전적 지식에 대한 열망이 스며있다. ‘호기심의 방’이 유행한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인문학자들은 편협함을 피하고 다양한 지식과 학파를 섭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선 중기 문장의 대가 장유(張維) 역시 다양한 지식과 철학을 배워야 한다면서 그의 『계곡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의심하고 여름 벌레는 얼음을 의심하니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 이는 식견이 좁기 때문이다. 세상의 군자라고 하는 이들 역시 (중략) 자기 식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여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마니, 얼마나 식견이 고루한가. 옛날 위 문제(魏 文帝)가 『전론(典論)』을 지을 때, 처음에는 화완포(火浣布 불에 타지 않는 직물)가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 그 잘못을 깨닫고는 다시 바로잡았다. 위 문제처럼 박학한 사람도 이런 실수가 있었는데, 하물며 후대 사람들이야.”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김낙철 역)

이처럼 책가도에 담긴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지식을 섭렵하며 답을 찾아나간다면, 또한 위 문제와 케인스처럼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 자기 생각을 고쳐나간다면, 진영논리나 독선에 빠져 답을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 지식과 정보를 끼워 맞추는 반지성주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책가도를 보며 장유의 문장을 되새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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