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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Bar)람이 분다…가볍게 즐기는 한 잔술의 매력

| 맥캘란·글렌리벳·발베니


전국에 100여 곳, 청담동이 핫 플레이스
싱글몰트위스키 등 20종 이상 다양한 술 갖춰

항구·증기기관 시대 이야기가 있는 바도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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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탐구하며 즐기려고 마시는 시대, 바(bar)는 트렌드 세터들의 놀이터이자 취향의 전시장이다.



술, 떼로 몰려가 마셨다. 빨리 취하려고 마셨다. 선택 대신 강요만 있을 뿐이었다. 이게 지금까지 우리의 음주문화였다. 그런데 요즘은 취하기보다 즐기려고 마신다. 회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서 퍼마시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술을 골라 즐긴다. 파인다이닝(fine-dining)을 즐기러 레스토랑을 가듯, 술맛을 음미하려 바(bar)에 간다는 얘기다. 이런 달라진 음주문화를 반영하듯 전문 바텐더가 하는 바가 크게 늘었다. 은밀한 바, 누가 왜 찾는지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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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는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육중한 나무 책장으로 가려진 ‘르 챔버’의 비밀 입구. [사진 각 바]


경리단길이니 뭐니 하는 아무리 새로 뜨는 동네가 속속 등장해도 서울 청담동은 여전히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세터들의 공간이다. 이런 청담동에서 최근 몇 년 간 가장 핫한 식음문화를 꼽으라면 단연 ‘바’가 아닐까. 단순히 폭탄주용 위스키와 맥주를 파는 곳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바텐더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잔술로 마실 수 있는 싱글몰트위스키를 20종 이상 갖춘 곳이 제대로 된 바의 기준이다. 지난해 말만 해도 이런 바가 청담동에 14곳이었는데 지금은 20곳으로 늘었다. 청담동이 뜨기 한참 전부터 외국문화의 통로 역할을 했던 이태원·한남동 일대도 같은 기간 바가 29곳에서 40곳으로 크게 늘었다.

바 전문가이자 관련 이벤트 기획자인 재키 유(유용석)는 “2013년 말엔 전국에 69곳에 불과했지만 매년 60곳씩 늘어나는 추세”라며 “싱글몰트위스키를 100종 이상 갖춘 바도 60곳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부터 네이버 카페 위스키&코냑의 회원 1만여 명과 페이스북 페이지 코리아 바텐더 포럼 회원 4000여 명과 함께 전국의 바 숫자를 취합·집계해오고 있다.

이렇게 바 숫자가 늘고, 특히 바 밀집 지역이 생겨나면서 지역 바텐더끼리 뜻을 모아 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지난 5월엔 청담동, 그리고 지난달엔 이태원·한남동에서 열린 ‘칵테일 위크’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이태원 칵테일 위크 땐 29개의 바가 참여해, 시그니처 칵테일을 할인해주고 방문 횟수에 따라 추가 혜택을 주기도 했다. 물론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바를 찾는 기존 고객이 많기에 가능한 이벤트였다. 이 기간 동안 총 2121잔의 시그니처 칵테일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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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바텐더로 꼽히는 임재진 대표.


한남동 소하라운지의 임재진 대표는 “이 기간 동안 시그니처 칵테일이 100잔 이상 팔렸다”며 “단골 고객이 더 많았지만 열에 셋은 처음 온 손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예전보다 술의 양보다는 종류에 더 관심을 갖는 손님이 확실히 늘었다”고 덧붙였다.

임 대표는 지난 10년 간 급변한 한국 바 문화를 증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타 바텐더다. 2007년 일본에서 들여온 바 커피바케이에 합류해 2009년 세계 바텐더 선발대회인 월드 클래스 한국 선발전에서 1위를 하면서 줄곧 최고로 인정받아왔다. 당시 우승을 다퉜던 엄도환 바텐더와 함께 2014년 청담동에 ‘르 챔버’를 열었는데, 전문화한 바텐딩으로 한국 바 문화에 일대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이 둘은 지난해 5월 위스키 증류공장 분위기의 스틸, 12월엔 세 번째로 소하라운지를 같이 열었다.

그는 최근 바가 늘어난 배경을 손님에서 찾는다. “전엔 테이블에 조니워커·발렌타인 같은 블렌디드위스키를 병째 시켜놓고 취하도록 마시는 중년이 많았어요. 요즘은 연령대가 낮아지기도 했고, 똑같은 위스키라도 해도 맥캘란·글렌리벳·발베니 같은 싱글몰트를 병이 아니라 한 잔씩 골라 마시는 분위기에요.”

바를 찾는 사람들이 변한 건 음주 문화가 달라져서다. 과거엔 회식 후 2차로 떼로 몰려와 술을 퍼마셨지만 지금은 정말 술을 즐기는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짝지어 온다. 동성의 친구일 수도, 혹은 연인일 수도 있지만 회식 자리의 폭탄주처럼 취향과 무관하게 술을 강요받는 게 아니라 함께 마셔도 각자 취향대로 주종을 골라 마신다. 특히 20~30대는 한 끼 식사에서도 ‘미식’을 추구하듯, 술도 탐구하듯이 즐긴다. 이준영 상명대 교수(소비자주거학)는 “개인 기호에 맞추는 퍼스널라이즈드(personalised) 서비스를 음주 문화에서도 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음주문화에서도 집단성 대신 개성과 취향을 추구하면서 각 바 역시 이런 고객 니즈를 맞추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 판에 박힌듯한 올드한 칵테일 대신 끊임없이 새로운 칵테일을 개발하는 건 기본이고, 처음 공간을 꾸밀 때부터 다른 바와 차별화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에 고심한다. 소하라운지가 딱 그렇다. 소하(Soha)는 사우스하버(south harbor, 남쪽 항구)의 약자로, 항구를 출발하는 요트 느낌으로 꾸몄다. 임 대표는 “요즘 사람들은 ‘어딜 갔더니 뭐가 다르더라’라는 이야깃거리에 관심이 많다”며 “술뿐 아니라 공간까지 스토리텔링을 중시해 크루즈 느낌으로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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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을 모티브로 한 ‘마이너스’의 입구. 


소하에서 걸어서 5분 남짓 떨어진 마이너스(Miners, 광부들)는 이름 그대로 증기기관 시대의 탄광을 모티브로 했다. 임병진 대표 말대로 “너무 도회적이기보다 빈티지스러운 분위기를 원할 때”는 마이너스를 찾고, 카리브 해안가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이번 칵테일 위크 때 가장 많은 시그니처 칵테일을 판매한 ‘버뮤다 트라이 앵글’을 가면 된다.

하지만 역시 술집은 술로 승부하는 법이다. 특히 젊은층은 고유의 오리지널 칵테일에 이끌려 각 바를 찾는다. 마이너스의 오리지널 칵테일 ‘라퓨타’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모티브로 한 술이다. 진(gin) 베이스에 라임·진저 향이 어우러지는데, 잔에 솜사탕을 붙여 마치 구름을 나는 듯한 모양이다. 그런가하면 커피바케이(한남점)의 대표 칵테일 ‘미쓰 플라밍고’는 보드카 베이스에 패션프룻·라즈베리 등 과일 향을 첨가했는데, 플라밍고 새 모양의 용기에 담겨 나와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실 바 문화가 퍼지기 전 와인 대중화로 와인 바가 먼저 유행했다. 너도 나도 와인의 지역·품종·빈티지(제조연도)별 차이를 따지는 게 일종의 교양이 됐다. 이젠 위스키를 두고도 스모키·시트러스 같은 향의 유무를 논한다. 물론 와인 바와 위스키(칵테일) 바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와인 바에선 아무리 와인 종류가 많아도 극소소의 하우스와인을 제외하고는 병으로 시키지 않으면 다양하게 맛볼 수 없지만 위스키 바에선 잔술로 다양한 주종을 경험할 수 있다. 와인 바에 비해 비교적 젊은 층이 위스키 바에 많이 몰리는 건 이런 이유다.

지금 뜨는 바들은 이런 젊은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읽은 곳들이다. 재키 유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바들은 고객 눈높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9년 글로벌 주류업체 디아지오가 주최한 세계 바텐더 선발대회인 월드 클래스에 한국이 참가한 것도 바 문화 부흥의 전환점이 됐다. 이때 해외 네트워크를 쌓은 바텐더들이 교류 행사에 자주 참가하면서 국제적인 바 트렌드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대표적 인물이 르 챔버를 함께했던 소하의 임재진 대표와 엄도환 대표다. 엄 대표는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15년 간 바텐더·매니저로 일한 후 호텔식 서비스를 접목한 바를 내면서 독립했다. 그는 “당시 몰타르·루팡 등 은밀한 멤버십 분위기의 이른바 스피크이지(speakeasy) 스타일의 바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르 챔버가 바텐더 중심의 스테이지를 갖추고 500여 종의 위스키를 구비하자 전문성에 목말라하던 손님들이 일거에 몰려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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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는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꽃집처럼 꾸민 ‘앨리스 청담’. [사진 각 바]


그랜드 하얏트·JW메리어트 등을 거쳐 ‘앨리스 청담’을 낸 김용주 대표 역시 “해외 유명 바텐더를 데려오는 ‘게스트바텐딩’ 등을 통해 단순히 술 마시는 걸 넘어 일종의 문화체험을 제공한 게 바 문화 확산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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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청담’의 대표 칵테일 ‘매드 해터’.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장수 모양 잔에 담겨 나온다.


이제 바는 트렌드 세터들의 놀이터, 취향의 전시장이다. 물론 한 잔에 최소 1만원씩 하는 몰트위스키나 칵테일을 즐기는 건 주머니 얇은 젊은층에겐 적지않은 부담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칵테일 위크같은 행사로 문턱을 낮추는 시도를 하며 ‘숨어 있는 취향’을 이끌어내려 노력한다. 최근 위스키 입문서 『한잔의 맛』을 펴낸 김양수 만화가는 “이제 막 건전한 바 문화가 시작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태원·한남동 칵테일 위크에서 시그니처 칵테일 가장 많이 판 바 베스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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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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