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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네모를 버리다, 상식을 뒤엎다

| 판교 현대백화점 식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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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카페 ‘조앤더주스’. 라운지 음악이 흘러나 오는 가운데 직원끼리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낸다. 백화점 안에 있지만 철골로 만든 벽이 있는 독립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라 이런 자율성이 가능했다.



보수적이고 정형화된 틀 버려
축구장 2배 공간에 천장 높아 탁트인 개방감
사선으로 이어진 동선 골목길 걷는 느낌


놀이공원처럼 오감 자극 콘텐트로 꽉 채워
서울에 없는 브랜드 갖춘 핫플레이스로
외국 바이어들 인식까지 바꿔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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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를 뉴욕에서 본 정지선 회장.

판교 현대백화점은 정지선(44)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야심작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이탈리아 식자재와 레스토랑이 결합한 프리미엄 식음공간 이탈리(EATALY)를 보고는 통째로 들여오라고 직접 지시해 2년 만에 입점을 성사시켰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일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 회장은 “국내 어디에도 없는 최고 수준의 식품관”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판교점 성패의 승부수를 식품관에 걸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 승부수가 제대로 먹혔다. 지하 1층 식품관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분수효과’ 덕분에 지난달 개점 1년 만에 방문객 1500만 명, 매출 8000억원을 넘어서며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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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유치하려고 각별한 공을 들였다.


‘국내에 없는 식품관’이란 콘셉트가 잘 살아난 데는 이탈리처럼 국내에 처음 들여온 유명 식음업장 브랜드가 물론 한몫 했다. 컵케이크 브랜드 ‘매그놀리아’는 개장 초기 3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살 수 있었고, 인천의 유명 중식당 ‘신승반점’도 하루 종일 문전성시였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축구장 2배 크기의 매머드급 넓이를 기존 백화점 식품관과 달리 제대로 활용한 공간의 힘도 컸다. 경쟁 백화점조차 “식품관 문화를 완전히 새롭게 업그레이드했다”고 평가할 정도다.

공간에 대한 철학도 중요하지만 이를 구현한 사람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이탈리를 포함해 90개의 브랜드를 실제로 유치하고, 또 고객의 동선 등 공간 구획을 직접 짜는 건 백화점 담당 바이어들의 몫. 그래서 실제 작업을 한 상품본부 식품사업부 공산품팀 바이어 4명을 만나 이 공간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김병한 과장은 매그놀리아 등 해외 브랜드를, 이재원 바이어는 신승반점·유노추보 등 임대 형식의 식당매장을, 최재원 바이어는 커피원두같은 완제품 매장을, 강민지 바이어는 델리와 팝업 매장을 담당했다. 주로 김 과장이 답을 했고, 다른 세 명의 바이어가 설명을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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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점 식품관을 기획한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식품사업부 팀원들. 왼쪽부터 최재원 바이어, 김병한 과장, 강민지 바이어, 이재원 바이어. 신인섭 기자


-매대가 촘촘히 들어차있어 복작거리는 기존 백화점 식품관과 달리 공간 배치가 넓직넓직하다. 크기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식품관의 두 배지만 층고가 높아 시원한 느낌을 준다.

“맞다. 보통 백화점 식품관의 층고는 5~5.5m인데 판교점 식품관은 7m나 된다. 면적은 축구장 2배 넓이와 비슷한 1만3860㎡에 달한다. 판교 식품관으로 지하철이 곧바로 연결될 예정이라 돈 많은 VIP 고객보다 대중적 소비층을 더 염두에 뒀다. 이름은 분명 백화점이지만 몰 같은 공간을 구상했다. 백화점의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면서 몰처럼 누구나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식품관을 만들려다보니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각 점포는 물론 점포와 점포 사이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 모두 널찍하다. 곳곳에 의자와 테이블을 가급적 많이 배치한 것도 이런 이유다. 스페인이나 프랑스같은 유럽 작은 마을 광장의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쉬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비록 실내지만 이런 쉼을 줄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층고가 높은 건 꼭 판교점 뿐만 아니라 요즘 유통업계의 전반적인 경향이다. 천장이 높으니 지하 공간의 답답함이 사라지고 공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식품관은 환기시설이 필수라 천장이 높을수록 공사는 더 어렵다.”

-판교 현대백화점 식품관은 뭔가 다르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무엇 때문일까.

“백화점의 보수적이고 정형화된 틀을 고집하지 않고 각 점포, 각 브랜드별 이미지를 최대한 살렸기 때문이 아닐까. 예컨대 덴마크 카페 브랜드 조앤더주스는 식품관 안이 아니라 꼭 야외에 있는 것처럼 사방이 탁 트인 공간 안에서 자체적으로 흥겨운 클럽 음악을 튼다. 직원들끼리 큰 소리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일하기도 한다. 기존의 백화점 접객 매뉴얼로 치면 감점 요인이다. 백화점은 층별로 잔잔한 음악을 통일해서 깔아야지 점포별로 음악을 따로 트는 건 금기다. 그런데 이런 파격을 허용했더니 식품관 전체가 이태원처럼 트렌디한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공간을 개방적으로 구성한 것도 다른 느낌을 주는 요인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나 신세계 센텀시티 식품관은 중간 중간 벽을 세워 공간을 분리한다. 우리는 정반대다. 너무 넓기 때문에 막히는 공간이 있으면 오히려 고객 흐름을 단절할 거라 봤다. 대신 식품관 중앙에 광장을 배치해 이곳을 기점으로 구획을 분리하는 효과를 냈다. 이 광장에는 6.6㎡(2평) 남짓한 팝업부스 서너 개를 배치해 모히또바(모히또), 전구소다(전구모양 용기에 담아주는 음료), 청년장사꾼(감자튀김) 등 캐주얼한 음료와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기존 백화점을 생각하면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가게들이지만 재료를 절구로 찧고 먹음직하게 감자를 튀기는 모습이 식품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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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훠궈식당 ‘단단’. 보통 백화점 식품관 식당들은 의자 높이를 똑같이 맞추는데, 판교점은 각 식당별로 의자 높이를 알아서 정한다. 브랜드별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판교 식품관 공간의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뭘까.

“놀이공원. 그만큼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방송인 홍석천의 레스토랑 ‘마이타이’‘마이치치’ 두 개가 입점해 있는데 본인 가게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요리를 직접 하는 모습을 꼭 보여준다. 유명 셰프의 오픈키친으로 운영하는 ‘셰프스테이션’도 마찬가지다. 보는 재미를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매장을 꾸몄다.”

(이재원 바이어)“동의한다. 놀이공원만큼 오감을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처음부터 인근 판교 주민뿐 아니라 멀리 지방 고객들까지 찾아오는 명소로 식품관을 기획했기 때문에 단순히 먹고 쇼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탈리를 예로 들자면, 여름철 야시장 느낌의 ‘나이트마켓’같은 시즌별 이벤트를 많이 벌인다. 오감을 자극하게끔 다양한 콘텐트와 체험 요소를 접목한 국내 첫 식품관이다.”

-동선이나 점포의 위치도 특이하다. 특별한 계산이 들어간 건가.

“대형 몰은 동선이 어지럽게 꼬이거나 곳곳이 벽으로 막혀 미로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걸 피해 층 전체가 개방된 느낌을 주도록 노력했다. 솔직히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엇갈렸다. 경쟁 백화점 식품관처럼 구획별로 벽을 세워 프라이빗하게 구성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식품관은 VIP 고객보다 폭 넓은 대중을 타깃으로 하기에 개방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재원 바이어)“고객이 헤매지 않으려면 기존 식품관처럼 네모반듯한 동선이 최고다. 문제는 이런 공간은 지루하다. 그래서 식당가는 서쪽 벽면에 배치해 안정감을 높였고, 식당가와 델리(바 형태로 앉는 식당) 사이에는 조앤더주스 같은 사방이 뚫린 카페를 배치해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델리나 베이커리 구역으로 이어진 길은 사선, 혹은 곡선이다. 직각으로 꺾이는 길이 없어 사각지대 없이 식품관 전체를 넓게 볼 수 있다. 최대한 많은 매장이 노출되는 구조라 소위 ‘C급’으로 불리는 매출 낮은 자리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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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사이사이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된 광장. 다른 백화점 식품관과 다르게 고객이 앉아서 쉬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설명대로 식품관 내부 통로가 구불구불하거나 사선으로 이어져 마치 골목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국 소비자 특성이 정형화한 몰보다는 이태원 경리단길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처럼 길가를 걸으며 쇼핑하는 걸 선호한다. 획일화된 공간보다 동네와 골목길에 끌리는 정서가 있기 때문에 식품관도 골목길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흥미로운 브랜드가 많다. 어떤 과정으로 입점했는지 궁금하다.

“백화점도 일반 점포를 낼 때와 마찬가지로 상권조사가 첫 번째 단계다. 팀원들이 판교 지역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 결과 소득 수준이 강남 못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이들 눈높이에 맞추려면 서울에도 없는 브랜드를 갖춘 핫플레이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글로벌 1위 브랜드를 국내 1호로 입점시키는 걸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트렌드 변화가 빠른 외식업 특성상 가장 핫한 브랜드만 입점시키기 위해 입점업체 확정을 최대한 미뤘다. 백화점 개점 한달 전에야 입점을 결정한 브랜드가 있을 정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 자주 등장한 브런치 레스토랑 ‘사라 배스’(2층)를 비롯해 매그놀리아, 조앤더주스, 이탈리 등을 모두 국내 1호점으로 유치했다. 덕분에 유행에 민감한 젊은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다.”

-해외 브랜드는 물론 콧대 높은 국내 맛집도 즐비하다. 유치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나.

(강민지 바이어)“해외 유명 브랜드는 개점 2~3년 전부터 한국 시장을 설명하는 자료를 보내며 꾸준히 접촉했다. 답변이 없어도 계속 이메일을 보냈다. 서울도 아닌 판교에 1호점을 내자고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라고 지역 특성을 설명하며 소득 수준이나 인구통계학 자료 등을 리포트로 만들어 몇 차례나 보냈다.”

(이재원 바이어)“국내 맛집도 마찬가지다. 다들 왜 굳이 경기도냐며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셰프들은 셰프 나름대로 백화점은 제약이 많을 거라며 입점을 꺼렸다. 설득하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썼다. 사업성에 관한 세밀한 리포트를 작성하는 정공법부터 지인을 통해 부탁하며 인정에 기대기도 한다. 그래도 무시 당하고 거절도 많이 당한다. 이건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기껏 섭외한 오너셰프가 갑자기 입점 안하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우리가 메뉴와 레시피까지 다 개발해서 붙잡은 경우도 있었다.”

(최재원 바이어)“다 예전 얘기다. 판교점에 들어간 해외 브랜드가 높은 매출을 올린 덕분에 해외에서도 이젠 국내 시장을 예전과 다르게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점 당시 엄청나게 고객이 몰렸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 못해 주방 직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그만뒀다. 당시 설거지 할 직원을 뽑지 못해 일당을 20만원까지 불렀다. 여차하면 바이어까지 팔 걷고 주방으로 뛰어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업체가 워낙 많다 보니 식자재를 운반하는 엘리베이터가 밀려 2시간씩 대기했는데 그 사이 식자재가 썩어서 내다 버리는 일까지 생겼다. 100개 가까운 매장이 한날 한시에 오픈하려니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살이 5kg씩 빠졌다.”

-앞으로 백화점 식품관의 트렌드는 어떻게 흘러갈까.

“글로벌 브랜드 중 알 만한 업체는 대부분 한국에 들어왔다. 브랜드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통업체가 수수료율을 지나치게 낮게 부르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결국 해외 브랜드만 좋은 일 시키는 거다. 판교점에서 신규로 모히또 바를 기획했듯이 앞으로는 백화점 자체 콘텐트 개발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글=박미소 기자 smile83@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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