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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레드카펫은 ‘최고 예우’ 의미 … 항저우선 오바마만 레드카펫 못 밟아

G20 정상회의 통해 본 의전의 세계

지난해 10월, 중국 시진핑 주석이 영국을 방문했다. 영국은 “가능한 모든 팡파르를 울린다. 레드카펫도 깐다”며 최고의 예우로 맞았다. 런던 거리엔 유니온잭(영국 국기)과 오성홍기(중국 국기)가 나란히 걸렸고, 시 주석을 태운 왕실 마차 주변에 근위대가 사열했다. 극진한 의전은 양국의 우호 관계와 경제적 협력으로 이어졌다.

3일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항저우 공항. 미국 대통령을 태운 에어포스원이 도착했지만 밟고 내릴 트랩이 제공되지 않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내려야 했다. 외국 정상 방문 시 레드카펫이 깔린 트랩을 제공하는 의전 관례가 지켜지지 않은 거다. 의전은 국가 간 공식 의례에 통용되는 예법이다.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의전에 담긴 의미를 신문과 교과서에서 살폈다.

‘레드카펫을 깐다.’ 영국은 ‘최고의 예우’를 이렇게 표현했다. 레드카펫의 기원은 기원전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가멤논이 귀국하는 장면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맞이하기 위해 붉은 천을 깔아 그 위를 밟게 한다. 아가멤논은 빨간 색은 신의 색이라며 그 위를 걸을 수 없다고 거부한다. 빨간 색이 가진 ‘신성’의 의미, 아내가 남편을 위해 바닥에 깔았던 ‘환영과 존경’이 더해진 데서 지금의 레드카펫이 탄생했다는 설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버킹엄궁에 깔린 레드카펫의 붉은 빛은 유독 짙었다. 시 주석은 영국 여왕과 함께 황금마차를 타고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도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시 주석의 취향에 맞춰 캐머런 영국 총리와의 만남도 맨체스터시티 구장에서 이뤄졌다. 모든 게 파격적이고 지극정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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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레드카펫을 깔아준 이유는 달라진 중국의 위상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중국 기업을 유치하려는 거다. 고속철·금융·인문 교류 등 150개 항목에 시 주석이 합의하면 영국은 120조원 이상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된 움직임이다. 중국 입장에선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 손잡을 필요가 있다. 양국의 필요가 맞닿자 레드카펫이 한층 붉게 빛났다.

영국 방문 한달 전, 시 주석은 미국을 방문했다. 때맞춰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인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사이, 시 주석의 방문은 묻혀 버렸다.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마주한 자리에선 점잖고 냉랭한 대화만 이어졌다. 세계 최대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하는 미국, 이런 미국을 극복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는 중국의 만남에선 레드카펫은 빛이 바랬다.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선 레드카펫을 아예 치워버렸다. 항저우 공항에 도착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박근혜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 다른나라 정상들은 모두 의전에 따라 레드카펫이 깔린 트랩을 밟았다. 오바마 대통령만 뒷문에서 구부정한 모습으로 비행기를 빠져나와야 했다. 이를 두고 호세 과히르 전 주중 멕시코 대사는 “수퍼 파워에 맞선다는 걸 보여주고 민족주의를 고취하려는 중국의 노림수”라 풀이했다.

의전이 예법이라면, 그 예법은 상대가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지켜지는 게 상식이다. 상황과 필요에 의해 냉온탕을 오가는 예법이라면, 말보다 또렷한 메시지가 담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미를 부풀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라진 레드카펫 트랩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파악했을 거다.

자문자갑 내공쌓기

식사 예절을 아는 대로 나열 한 뒤, 예절이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얘기해보시오.

자신이 알고 있는 예절 중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얘기해보시오.

 
선생님과 신문 속 교과서 읽기
버선발 vs 정제된 의관
‘버선발로 뛰어나와서 맞이하다’는 표현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기쁘고 반갑게 맞이할 때 씁니다. 자신의 몸을 살필 겨를도 없을 만큼, 상대를 맞는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는 의미니까요.

‘의관을 정제하고 손님을 맞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상황에 맞는 옷과 기타 장신구를 가장 정확하고 깨끗하게 갖추고 상대를 맞이하는 모습입니다. 옷을 빨고 장신구를 덧대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기 위해 정교하고 갖춰진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위의 두 상황은 겉 모양은 정반대지만 상대에게 온 마음을 집중한다는 의미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버선발이든 의관을 정제한 상태든 항상 똑같이 해석될까요. ‘그렇다’는 사람도 몇 명 있겠지만, 대다수는 고개를 저을 겁니다. 똑같이 ‘환영’의 마음을 담고 있지만, 의관을 정제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은 또 언제일까요.

외면적 형식 vs 내면의 가치
외면적 모습을 통해 내면의 가치를 미루어 짐작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수영장에 야구복, 운동장에 하이힐이 어울리지 않듯, 어떤 의상은 항상 특정한 상황과 필연적인 관련이 있게 마련이죠.

그렇다고 특정한 상황에 어울리는 것만 따져 갖춰입은 옷의 가치를 판단할 순 없습니다. 누군가 입고 있는 옷에는 그걸 고른 사람이 추구하는 의식과 그에 상응하는 가치 또한 드러납니다.

옷으로 표현되는 가치 중에는 윤리적인 것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자신의 마음을 옷과 장신구 등으로 드러내는 것이지요. 윤리적인 가치와 관련된 표현들은 대부분 그 사회의 공통된 의식을 반영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려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챙겨 입었다면 상대도 이를 알아차려야겠지요.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서 어느 사회건 대체로 일반화된 양식을 갖고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절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여기에 속합니다.

형식적 예절의 한계와 방향
요즘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절의 가치를 폄훼합니다.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 예절은 쓸모 없는 겉치레로 여겨질 때가 많죠. 옷을 차려 입을 때도, 미적 가치나 실용적 가치를 넘어 윤리적 가치까지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생각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진심을 담기만 하면 어떤 식으로든 상관없다”는 주장도 나오고요.

어찌보면 틀린 말이 아닌 듯 합니다. 하나의 문화적 형식이 정해지는 건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 선조들의 의식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지금, 그리고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예절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형식적 규범이 맞지 않는다는 게 반드시 그와 같은 형식적 규범은 필요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응당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 윤리적 형식들, 즉 새로운 예절이 태어나는 게 더 정확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고, 따라서 윤리적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형식에 얽매여 살자”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형식만을 강조하는 건 정말 최악의 경우겠죠. 예절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라는 참뜻을 외면한 예절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일 뿐이니까요.

형식으로서의 예절이 갖는 윤리적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누군가에게 간단한 악수를 청할 때라도 진심을 담는 게 좋겠지요. 일찍이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했습니다. 예(禮)가 드러내고자 하는 인(仁)의 마음을 담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국제적으로 약속된 의전대로 대우하지 못한 중국의 태도를 통해 진정한 예절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봅시다.

문우일 세화여고 윤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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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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