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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늘 마주치는 죽음, 의사지만 언제나 두렵다

『만약은 없다』 출간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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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의 숱한 죽음을 지켜봤던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씨는 "독자들이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려고 책을 썼다"고 말했다.

루게릭병 환자의 호흡기 떼고 펑펑 울어
환자들 죽음 잊지 않기 위해 글 남겨
한때 자살 생각 … 지금은 죽음과 맞서 싸워


의사는 타인의 죽음에 초연한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라도 신경이 무뎌지지 않는다면 버텨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34)씨의 에세이 『만약은 없다』를 읽고나서야 의사 역시 환자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견뎌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한때 죽음을 열망하기도 했다는 그는 응급실에선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를 돕는다. 진료가 끝난 후엔 생사의 경계에 섰던 이들에 대한 기록을 글로 남긴다.

-환자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만도 고통스러운데, 왜 그런 경험을 굳이 글로 남기는 것인가.

“의사는 죽음을 다루는 프로들이라 환자에게 감정이입하지 않고 냉철하게 판단한다. 대신 그들의 죽음을 잘 잊는다. 사망선고를 하는 순간엔 미칠 것 같이 괴롭고 슬픈 데도 말이다. 내가 느낀 감정, 그리고 환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솔직히 그 감정을 복기 하는 게 너무 힘들다. 어떤 글은 제주도에 방 잡고 4박5일동안 울며 썼다. 환자의 고통을 내 몸으로 고스란히 느낀 기분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원래 읽고 쓰는 걸 좋아해 학창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했다.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대학 시절 이런 저런 글을 1000편 넘게 썼다. 2013년 초 페이스북(페북)에 무심코 올린 글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공유되는 걸 보고 그 해 5월부터는 아예 대중을 상대로 한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의 페북 팔로워는 현재 1만1000명이 넘고, 현재 각종 매체에 칼럼과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책 서문을 보면 스스로 죽으려 했다는 고백이 나온다.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 왜 하필 숱한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응급의학과를 지망했나.

“인턴 시절 응급실에서 일해보니 사소한 통증 환자부터 잔혹한 사고를 당한 사람까지 다양한 환자가 오더라. 공감하며 다른 이의 삶을 엿보는 경험이 흥미로웠다. 의대생 시절 우울증 때문에 죽음을 자주 생각했던 건 사실이다. 그걸 글쓰기로 풀곤 했다. 전공으로 응급의학과를 택하며 ‘죽도록 해보자’고 결심했다. 내 손으로 죽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죽음에 맞서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책에 나온 죽음들은 그 어떤 소설보다 극적이다. 말기 암환자가 집으로 돌아간 직후 응급실에 젊은 여성이 실려왔는데, 알고 보니 그 암환자가 귀가하다 일으킨 교통사고의 피해자였다는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사실인가.

“책 내용은 모두 실제 내가 겪은 일이다. 환자 프라이버시를 지키거나 글의 긴장감을 살리려 대화 등 일부만 각색한 정도다. 방금 언급한 말기 암환자의 교통사고에 관한 글은 한미수필문학상에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이 ‘수필인데 너무 소설 같고 현실감이 떨어진다’며 수상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암환자가 자기가 죽인 젊은 여성 옆에서 치료를 받으며 무표정하고 공허한 표정을 짓던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죽음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놓고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라는 식으로 글을 맺었다.”

-동거남에게 맞아 죽은 여성 환자를 다룬 글에선 가해 남성이 오열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담았다. 가해자를 동정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던데.

“죽은 여성은 말없이 누워있고 남자는 통곡했다. 스스로 저지른 일을 믿지 못하고 시신에 입맞춤과 비슷한 인공호흡을 하더라. 끔찍하게 절박한 장면이었다. 그는 분명 살인범이었지만 동시에 분명 슬퍼했다. 목격자라 어쩔 수 없이 가해자에게까지 감정이 이입된 것 같다.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려고 했던 건 아니다.”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환자는 누구인가.

“루게릭 병을 앓던 여성 환자가 3년간 서서히 몸이 쇠약해진 끝에 실려왔다. 가족과 환자는 호흡근 마비가 올 경우 생존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사인을 한 상태였다. 5분 후면 사망한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고 호흡기를 뗐다. 딸들과 남편, 동생이 환자의 팔과 다리를 잡고 ‘사랑한다, 미안하다, 어서 눈을 감고 이 저주받은 병을 버리라’는 말을 쏟아내는데 그 순간의 비통함이 감당하기 어렵더라. 사망선고 후 펑펑 울었다. 그 뒤 루게릭 환자 후원을 위해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유행했는데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걸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매일 죽음으로 다가가는 루게릭병은 영화 한 편, 기사 몇 개 만으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비극적인 병이다.”

-노인의 팔다리 살점이 다 뜯어져 나가고 관절이 뒤틀리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환자의 고통이 너무 현실적이라 책 읽는 사람이 다 아플 정도다.

“평소 응급실 환자에게 처치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게 그들이 직면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책을 쓸 때도 몰입감과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했다. 한국엔 응급의학과 의사기 1000명이 겨우 넘는다. 아무나 경험할 수 없기에 독자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을 직접 지켜보듯 생생하게 썼다. 이 책이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을 줬으면 좋겠다.”

남궁인이 추천하는 죽음을 다룬 책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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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까치글방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주인공인 쌍둥이 형제는 전쟁이 일어난 국경 근처 소도시에서 자신들만의 도덕규범을 만든다. 인권은 짓밟히고 도덕적 금기가 모두 깨지는 잔혹한 상황을 건조한 문체, 강렬한 묘사로 그려낸 것이 매력이다. 죽음의 불확실성이나 존재의 혼돈을 독특하게 표현했다. 주변인물이 죽어나가고 사건이 얽히고 꼬이면서 등장 인물들의 존재 자체가 거짓인지 참인지 모호해진다.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의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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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민음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마꼰도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가문이 대를 이으며 겪는 일을 그렸다. 대를 이은 남자들은 각자 비슷한 운명을 반복하며 죽고 태어나는데 이 모습이 하나의 큰 순환처럼 보여 독자를 전율케 한다. 가문의 수난사 자체가 곧 인류의 역사를 나타낸다는 점이 크게 와닿았다.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마술적 리얼리즘’이 매혹적이다. 비극적인 사건을 희극적인 상황으로 풀어낸 블랙코미디, 작가의 위트있는 문체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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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사월 문학동네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알바니아 북부에는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이 살인범을 죽일 권리를 얻는 ‘카눈’이라는 관습
법이 있다. 형이 이웃 가문의 일원에게 살해당하자 주인공에게 복수의 임무가 주어진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내용은 심도있다. 피를 피로 갚는 방식에 대해 회의하고 고뇌하는 심경, 그럼에도 결국 살인을 감행하고 자기 죽음을 기다리며 초조와 공포를 느끼는 모습이 차분하고 우울한 어조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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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계 정신세계사
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이 철학책에는 죽음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필자는 한 개인의 자아가 몸과 정신뿐 아니라 주변 환경, 우주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무경계’의 가설을 제시한다. 이렇게 경계 없는 상태를 인정한다면 죽음까지 삶과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 놀라웠다. 자아와 세상이 합일될 수 있다는 개념은 불교적인 세계관과 일맥상통한다. 서양철학과 동양사상, 심리학을 모두 다루며 인간의 본질, 삶의 의미에 관해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열어줬다.

글=박미소 기자 smile83@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lim.hyundo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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