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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검사의 초상]김각영 전 검찰총장 사법시험 합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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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전쟁 
김각영 전 검찰총장(1960년 사법시험 합격)
 
#. 머리말
적막이 감돌고 산새도 외로워 구슬피 울어 대던 가파른 산길, 숨을 헐떡이며 아득히 만년설 덮인 봉우리를 향하여 걷기 시작한 지 어언 4년 6월.

용솟음치던 패기는 이미 백골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되고, 자존심은 숨을 죽이기 시작한 지 오랜 지금, 문득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펴보니 이게 웬 변고인고? 아득히 지나온 길이 구름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발아래에서는 흰 눈이 유일하게 나의 발자국으로 수를 놓고 있지 않겠습니까? 기뻤습니다. 절규하며 환호성을 질러 보았습니다. 희박한 공기로 막혔던 호흡이 비로소 제대로 되고 있다는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8월 21일 밤, 드디어 정복의 나팔을 울리고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의미 없는 아니 어떤 의미인지 조차 모르고 흘리던 눈물을 주먹으로 닦아내던 그 날의 흥분이 가시고, 이제 새로운 제 인생의 길이 전개되려 하는 이 마당에, 무언인가 또 다른 것이 길을 꽉 메우고 버티고 서 있다는 착잡한 심정, 전쟁의 상대를 잃은 듯 한 허탈한 감정만이 제 주위를 무서우리만치 감싸고 조여 드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런 할 말도 없고, 그 무엇 하나 염두에 두지 못한 채 그래도 사법시험이라는 험준한 고시전쟁에서 한 걸음 앞서 탈출한 한 전사로서 오늘도 악전고투하시는 수험생 여러분께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을까 하여 합격소감을 쓰기로 했습니다. 먼저 짜임새 있는 책자에 변변치 못한 저의 합격소감을 게재코자 요기한 지면을 할애하여 주신 고시계사의 후의에 감사를 드리며,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 엉터리 법대생
인간생활에 있어서 의식주의 충족은 곧 생활의 안정을 의미하는 것 같더군요. 1학년 때의 제 생활은 곧 뜨내기 생활이었습니다. 고교 2년 때 부친의 실적에 이어 형님 두분까지 직장을 잃자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게 기울더니 제가 대학 1년이 되었을 때는 생활난이 극심해지더군요. 제 수험생활 중에도 꾸준한 보탬을 주시던 숙부댁에서 1학기를 지내고, 2학기는 이모님 댁에서 누를 끼치며 보냈습니다.

아마도 향학열이 없는 집안에 태어났던 들 사법시험을 고사하고, 대학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고교졸업과 함께 제 갈 길이 결정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럭저럭 지난 대학 1년은 C학점으로 끝났더군요. 2학년 때는 자취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본래 계획적이지 못한 제 성격은 하숙을 하느니만 못하리 만큼 경제적인 손실을 입히며 1년이란 시간을 가버리게 하고, 구태여 표 나는 일을 했다면 예비시험 합격이라는 보잘 것 없는 것을 들어야겠죠. 3학년이 되면서부터 집안 형편도 좀 나아지고, 종회에 안주하고 보니 마음의 안정만은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를 따라 다니다가 차인 언짢은 기분에 내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난 신경쇠약증상(수험생활 중 계속 나를 괴롭힌 악질이기도 함)이 두 둔을 아프게 하고, 바늘 끝으로 쪼는 듯 한 두통을 가하여 마음에는 있으나 공부다운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고 세월만 허송시켰습니다. 이제 4학년, 그러나 악순환은 되풀이되었습니다. 혈압이 180을 오르락 대고, 기관지 확산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공부나 열심히 하고 생긴 병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제 경우에는 공부를 하지 못한데 대한 죄의식으로 생긴 병이었으니 그저 유구무언 이였지요.

4학년 말부터 K대학에 재학 중이던 친우 S군과 함께 대천에 있는 조그만 암자에서 본격적인 수험생활에 들어갔습니다. 6회 1차시험에 앞서 부족한 영어를 중점적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점적으로 대비한 영어였지만 막상 시험을 치루고 나니 과락의 염려로 전혀 자신이 서지 않더군요. 요행히 1차시험에는 합격을 했습니다만 2차시험은 치러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대학 4년 평균 B학점으로 1966년 2월 25일 대학문을 되돌아보며 눈물을 흘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 4년 6월
이제 결단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든 장정들에겐 예외 없이 찾아 드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나에게도 찾아 왔습니다. 4월 19일, 논산 수용연대에 입소했습니다. 하지만 군대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것이 세상이더군요. 고혈압이란 판정으로 나흘 만에 즉일 귀향하고 말았습니다. 중형님께서 조그마한 집 한 채를 텃밭 앞에 지어 주시면서 그곳에서 수험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시더군요.

S군과 같이 몇 개월을 그 곳에서 지내다가 7회 2차시험을 치르고자 상경, S군의 집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응시했으나 5명이라는 치사스런 합격자를 내는 바람에 점수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어림없는 시험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곧 이어 있었던 8회에는 1차시험의 영어를 과락하여 낙방하는 바람에 그렇게도 많은 합격자들에 대한 부러움만을 맛본 채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완전 실업한지 2년, 정말로 겁이 나더군요. 나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회의, 사법시험에 대한 경외감, 이젠 공부다운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의를 굳혔습니다. 청량리에 있는 J법률연구원을 찾아갔습니다. 약 2개월간, 다섯시간 정도로 잠을 줄이고 책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본래 엉성하기만 한 제 성격은 어찌된 영문인지 또 다시 긴장을 풀어 놓기 시작하더군요. 9회 1차시험을 치르고 나니 과락한 전례도 있고, 또 영어만을 맞고 그름에 대한 판단조차 서지 않아 2차시험까지 남은 1개월여는 걱정으로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다소간 진정된 듯싶던 신경쇠약증상이 다시 고개를 들고 몸이 부어오르더군요. 결국 9회 시험을 둘째 날 첫 시간 행정법 시험지가 펼쳐진 지 5분도 채 넘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시름없이 걸터앉은 버스의 의자는 바늘방석과도 같았습니다. 끝내 수험표를 씹어 먹으며 결의한대로 약 1개월 행정법만은 거의 암기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상법도 한 1개월하여 득점과목으로 삼았습니다. 그 덕으로 10회 이후의 시험은 늘 합격점 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0회 시험이 있기 전 약 4개월 동안은 시흥군 모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K선생님의 배려로 학교 근처의 민가에서 S군, Y군과 함께 기숙하면서 제 수험생활 중 가장 공부다운 공부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건강상 하루 12시간 이상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다만 책을 보는 동안만은 정신통일을 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듯 한 뿌듯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10회 시험을 치른 후 ‘이제야 구슬을 꿰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책 보따리를 챙겨두었습니다. 그러나 형법 과락, 아무리 60점이 점은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야말로 허탈 그 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11회 시험은 S군의 집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따뜻한 위안을 아끼지 않으시던 S군의 어머님과 형님의 후원을 받으면서 응시했으나 57점도 안 되는 엉터리없는 결과에 울어야만 했습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한 지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할 일은 많고, 병역의무를 필하지 못한 저를 밥 먹여 살리겠다는 곳은 오직 부모님과 형님 내외분 뿐 이 한 몸을 거추장스러워하며 반가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슬픔과 외로움뿐인 이 고독한 전장에 또 무엇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연연이 쌓여만 가는 낙방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경력, 이에 따라 늘어만 가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 이제는 사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비록 미력이었지만 그 때나마 나의 등을 밀어주며 힘을 주던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음은, 내가 못났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군요.

12회 시험은 이와 같은 회의 속에서 환경이 좋다는 마포의 A도서관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웃지 못 할 사실은 서쪽이 좋을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이 A도서관을 찾는데 크게 한 몫을 했다는 점입니다.

시험 중 첫날과 둘째날은 그런대로 합격점을 상회할 것으로 생각됐습니다. 그러나 마의 제3일 민소의 제1문은 어느 답안보다도 충실한 편이었지만, 제2문은 정말로 내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시험관일지라도 채점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엉망인 답안을 작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경우만은 이미 시험이 끝났다고 보는 것이 옳았습니다. 실소를 금치 못하며 시험장을 나오니 S군도 역시 같은 모양이어서 S군에게 목욕이나 하고 그동안 밀린 잠이나 자자고 청해 보았습니다. S군의 만류로 내키지 않는 형법을 치루고, 그 이튿날 마지막 시험인 형소까지도 그런대로 넘겼습니다.

그리고 8월 12일까지는 형님들이 지으시는 조그마한 주택의 현장감독을 하였습니다. 그날 밤 10시 서울방송의 종합뉴스를, 혹 합격자 발표가 있지 않을까 하여 듣기로 했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있다는 아나운서의 말에 이어 명단 발표, 별 기대는 없었으나 조마조마하기는 매 한 가지였습니다. ‘김각영’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멍청히 눈물로 밤을 새운 채 조간을 들춰 보니 꿈이 아니었습니다. 눈앞이 흐려집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두 주먹으로 닦아내는 눈물은 4년 6개월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이고 쌓인 울분의 발산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늘은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도 복을 주셨나니 이것을 우연이라 하는 가 봅니다. 이젠 저를 조소하고 얕보며 괴롭히고 외롭게 하는 분들이 딴 사람이라도 대하듯 축하의 인사를 하는군요. 그 때마다 저는 되뇝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님 산소가 명당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뒷바라지를 하시던 부모님 이하 형님들 내외분, 숙부님과 다른 가족들의 성심의 결과라고, 이제 고독한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어느 의미에선 제 생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묵고해야할 시기인 것입니다. 제삼 제 뒤를 보살펴 주시던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면서 제 앞길을 인도해 주십사하는 염치없는 부탁의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 맺음말
수험생 여러분께 도움이 될까하여 몇 말씀 드려야 하겠습니다.
첫째, 재학생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시도 사람이 하는 것이며, 성의 있는 자 앞엔 굴복하고 마는 것이라는 자신과 긍지를 가지고 학교공부에 충실하시라는 부탁입니다. 제가 졸업 후 4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소요한 이유도 학교공부를 충실히 하지 못한 데 기인된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단적인 예로 3학년 때 민소를 과락한 적이 있는데, 사시에서도 역시 가장 나쁜 점수였습니다.

둘째, 졸업생 여러분께서는 인내하며 조급히 서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너무 긴장하면 시험장 안에서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하는 폐가 큽니다. 제 경우 12회 때는 여유를 갖고자 최대한의 노력을 했습니다.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요사이의 시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시험에 임박한 공부가 그렇게 도움을 주는 것 같지도 않더군요.

셋째, 밤을 새워 공부하시는 분들께도 한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물론 습관입니다만, 습관이란 고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가만히 제 경우를 생각해보면 새벽 4시까지 앉았다가 10시경에 일어나 아침 식사하고 나면 12시, 흐지부지하면 점심시간이 지나야 그 때서 책상 앞에 앉게 되어 시간은 채웠어도 별 공부가 되지 않더군요. 늘 머리가 무겁고 기분이 언짢아서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되도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습관을 고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12회 때는 제 습관은 완전히 고쳐져 있었습니다.

넷째, 책의 선택에 관하여, 제 경우는 단권주의로 하다가 참고문헌을 참조하여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 마지막은 단권주의로 하여 효과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어느 분의 저서인가는 크게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여자문제인데, 나이가 들어서는 거의 필수적인 것이 아닐까요?
여섯째, 대인관계인데, 되도록 자의에 의한 은폐된 생활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애경상문 조차 피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합격 후의 그 동안 못한 인사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곱째, 1차시험을 경시해서는 안 되며, 특히 외국어의 시간배당에 인색하셔서는 안 될 것으로 압니다.

여덟째, 논문작성방식은 정형에 구애되시지 말고 되도록 일목요연하게 개성을 살려서 특히 서론부분에 중점을 두어 쓰는 것이 좋을 것으로 압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개념만은 암기하셔야 하겠죠. 줄을 갈아쓴는데 너무 신경을 쓰시지 말고, 분량에 구애되지 마십시오, 제 경우 1문당 넉장을 썼습니다.

아홉째, 12회때부터는 끼어든 면접도 하나의 시험이니 만큼 2차시험이 끝났다 하여 너무 긴장을 풀지 마시고 다소간의 대비는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구술은 답안작성과는 달리 특히 기술을 요하는 것이니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불확실한 것은 모른다고 답변함으로써 시험관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출처=고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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