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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가입’이 중간 입장… ‘단독가입’보다 주변국 합의 쉬워

1 유엔본부 앞에 게양된 태극기와 인공기.



지금으로부터 꼭 43년 전인 1973년 9월 18일 동독과 서독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그로부터 18년 후인 91년 9월 18일(한국 시간)에는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동서독은 49년에 각각 정부를 수립한 후 24년 만에, 그리고 남북한은 48년 정부 수립 후 43년 만에 유엔 정식 회원국이 된 것이다. 자국만이 해당 민족국가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면서 상대가 국가로 인정되는 것에 반대한 분단국의 이전 관례에서 크게 벗어난 사건이었다.



[세상을 바꾼 전략] 남북 유엔 동시 가입

 

2 46년간의 기다림 끝에 남북한이 함께 정회원으로 가입한 것을 경축하는 유엔기와 태극기가 과천 서울대공원 앞 큰길에 내걸렸다. [중앙포토]



남한은 48년부터 유엔 총회에 옵서버로 참가했다. 서독은 55년에 유엔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남한과 서독의 옵서버 자격은 당시 미국이 유엔을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60년대 들어서 유엔은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가 아니었다. 71년 중공이 대만 대신에 중국을 대표하게 되면서 동독과 북한은 각기 72년과 73년에 유엔 옵서버 자격을 취득했다.



냉전시대 분단국들은 스스로 합법적 유일 정부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유엔에 자국만 가입하고 상대국은 가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남한의 입장은 70년대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73년 동서독의 유엔 동시 가입을 전후해 남한 정부는 남북한도 유엔에 동시 가입할 수 있음을 비추었다. 이는 72년 7·4 남북공동성명 직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발언과 73년 박정희 대통령의 6·23 선언에 포함됐다. 73년 6월 22일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335호 결의로 동서독의 유엔 정회원 가입을 총회에 권고한 날이기도 하다. 공산 진영은 동서독과 달리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과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 그리고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에는 반대했다.



 

자신이 중간에 있게끔 힘들을 배열할 수 있으면 자신이 선호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국제정세 변화로 유엔 동시 가입 가능국제관계는 70년대 데탕트와 80년대 신냉전을 거친 후, 90년대 탈냉전의 시대로 들어섰다. 90년 북한은 남북한이 유엔에 개별 의석으로 가입하면 분단이 고착화하니 단일 의석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 가입에 반대했다. 이에 남한은 동서독이나 남북 예멘이 개별 의석으로 가입한 후에 통일됐다며 남북한의 동시 가입을 제안했다. 북한이 동시 가입에 계속 반대하자 남한은 남한만의 단독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91년 5월 28일 북한은 단일 의석 가입을 포기하고 개별 의석으로 가입한다는 의사를 처음으로 발표했으며, 7월 8일 가입 신청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남한도 8월 5일 유엔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8월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제702호 결의로 남북한의 동시 가입을 총회에 권고했다.



동서독과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각각 서독 동방정책과 남한 북방정책의 성과로 평가되기도 하고 또 분단국이 민족 정통성을 독점하지 않고 민족 공존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유엔 동시 가입은 분단국의 정책이나 결심에서 시작된 것이라기보다, 데탕트 또는 탈냉전의 당시 국제정세를 분단국이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이다. 동서독과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그에 관한 주변 강대국의 선호 분포가 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힘 분포에 따라 좌우되는 국제관계에서는 유엔 가입 문제도 관련 국가들의 선호로 전망할 수 있고 또 특정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추진하거나 또는 반대로 저지할 수 있다.



91년 4월 필자는 남북한이 동시 가입하는 안이 현상유지를 포함한 어떤 대안과 경쟁해도 더 큰 지지를 얻기 때문에 남북한 동시 가입이 실현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 예측은 중간투표자 정리를 이용한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의 모델에 기초한 것이다. 각 가능한 대안들을 일직선 위에 배열할 수 있고 또 각 행위자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점(대안)에서 멀리 떨어진 대안일수록 덜 선호한다고 할 때, 최종적으로 합의되기 쉬운 대안은 중간 입장이다. 여러 대안이 있어도 결국 협상은 1대1의 대안 비교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모든 대안과 1대1로 경쟁하여 더 큰 지지를 받는 대안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A, B, C의 세 가지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A안을 지지하는 비율이 40%, B안과 C안은 각각 20%와 40%를 얻고 있다고 하자. 만일 A안 지지자가 B안을 차선으로, C안을 최악의 대안으로 여기고, 또 C안 지지자는 B안을 차선으로, A안을 최악의 대안으로 여긴다면, 최종적으로 채택될 대안은 B안일 가능성이 크다. B안은 A안과 1대1로 경쟁하면 B안 지지자(20%)와 C안 지지자(40%)의 도움으로 60대40으로 승리하고, 또 B안이 C안과 1대1로 대결하게 되면 B안 지지자(20%)와 A안 지지자(40%)의 지원으로 B안이 60대40으로 승리하기 때문이다.



91년 당시 남북한 유엔 가입을 둘러싼 관련 6개국의 입장을 이슈 스펙트럼 위에 표시할 수 있었다. 남한은 ‘남한만 가입’을 가장 선호하며, 이것이 불가능하면 ‘남북한 동시가입’을 희망하고, ‘북한만 가입’이 성사되기보다는 차라리 남북한이 모두 가입하지 못한 ‘현상유지’가 낫다고 여긴다고 전제했다. 북한도 유엔에 자국만 가입하는 것을 가장 선호하고, 그러지 못할 바에야 아무도 가입하지 않기를 원하며, 남한이 단독으로 가입하는 것을 최악으로 여긴다고 가정했다.



 



이슈 따라 각국의 중요도·영향력 달라져이슈에 따라 각국의 중요도가 달라지고 또 영향력도 달라지며 따라서 영향력을 계산한 중간 입장의 위치도 달라진다. 유엔 가입 이슈에서 각국이 행사할 영향력은 군사력 및 경제력에 바탕을 둔 국력뿐 아니라 그 이슈에 얼마나 심각하게 대응하느냐 하는 중요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국력과 중요도는 가장 높은 점수를 100으로 두었다. 남한, 미국, 일본, 소련, 중국, 북한의 국력은 각각 15, 100, 40, 70, 60, 10으로 조사되었고, 또 중요도(힘을 사용할 의지)는 각각 100%, 50%, 30%, 40%, 40%, 100%로 입력되었다. 즉 남북한 유엔 가입 관련 남한, 미국, 일본, 소련, 중국, 북한의 영향력은 국력과 중요도를 곱하여 각각 15, 50, 12, 28, 24, 10으로 계산되었다.



이제 대안 간 우열 관계를 살펴보자. ‘남북한 동시가입’의 대안은 ‘남한만 가입’의 대안과 경쟁했을 때 일본+소련+중국+북한(12+28+24+10=74)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남한+미국(15+50=65)의 지원을 받는 ‘남한만 가입’ 대안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영향력 분포에서 중간 입장인 ‘동시가입’ 대안이 어떤 다른 대안과 1대1로 경쟁해도 승리하기 때문에 최종적인 협상 결과가 된다는 예측이었다.



 

1973년 9월 동독과 서독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며칠 후 유엔본부 앞에 게양된 서독기(맨 왼쪽에서 첫번째)와 동독기(두 번째). [위키피디아]



1970년대엔 중간 입장 아니라 성사 안 돼90년대와 달리 70년대에는 ‘남북한 동시가입’이 중간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시 가입이 성사되지 못했다. 소련의 국력이 더 강했고, 또 소련과 중국의 입장이 ‘북한만 가입’ 쪽으로 더 기울었다. ‘현상유지’ 즉 남북한 모두 정식 회원국이 되지 못하고 옵서버 자격만 갖는 상황이 70년대 영향력을 감안한 선호 분포의 중간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으로 바뀌게 된 것은 남북한의 새로운 합의보다 이해 관련국의 선호 변화에서 온 것이다.



73년 동서독의 유엔 가입 역시 당시 이해 관련국의 영향력을 반영한 선호의 분포에서 중간 입장이었기 때문에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서독이 유엔에 개별 의석으로 동시에 가입하는 대안이 일방만이 단독으로 가입하는 대안이나 아무도 가입하지 않는 대안보다 더 큰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90년 동서독의 통일도 마찬가지다. 서독이 기존 국경선을 확약하면서 동독을 흡수 통일하는 방안은 어떤 다른 대안보다 더 큰 지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공간 모델은 어떻게 최종 결과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중간 입장에 있는 국가나 집단을 움직일 수 있다면 중간 위치 역시 이동하기 때문에 판도를 바꿀 수 있다. 그들이 바로 압력을 가하거나 설득할 대상이다. 그런 설득은 상대방 국익과 부합한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지, 그냥 애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간 위치를 계산하고 또 중간 위치에 영향을 줄 특정 국가의 입장 변화 요인을 알아내서 대처하는 것이 성공적 외교의 비결이다.



더 혁신적인 외교는 자국이 중간에 위치하게끔 이슈 스펙트럼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자국이 갈등 축의 한쪽 끝에 있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만일 불가피하게 한쪽 축에 있을 때에는 자국이 포함된 진영이 중간 위치까지 차지하도록 이슈 프레임을 짜야 한다. 이는 대세에 따라 힘 있는 쪽으로 자주 편승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편 바꾸기가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또 편을 바꿔서는 더 큰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목하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난제들이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다른 이슈 프레임으로 각국의 입장을 다르게 배열할 수 있다. 외교 이슈를 선도할 수 있으면 국제관계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슈 프레임을 바꿀 수 없을 때에는 관련 국가들의 선호와 영향력을 파악하여 그 분포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판도 분석에 따른 맞춤식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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