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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10월호] “박 대통령 개헌불가 의지 확고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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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진행된 국회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정현 새누리당대표가 개헌 등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개헌은 정치문제가 아니라 국가문제입니다. 나라 전체의 미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더 이상 특정 정권이나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들이 주도해서 추진하는 정치헌법, 거래헌법, 한시헌법은 안 됩니다.”

9월 5일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개헌’이라는 두 글자를 꺼내 들었다. 그는 나아가 “(개헌 관련) 개인적인 소신은 있을 수 있으나,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 안보, 민생, 경제의 블랙홀이 되지 않도록 기준과 방식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친박계발(發) 개헌론 식어간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전면 나서 ‘개헌은 민생 블랙홀’ 여론화 …
친박계 중진 “당권 장악한 이상 더 이상 개헌을 통해 당 흔드는 일 없을 것”

새누리당 의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태껏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에서는 개헌 논의를 민감하게 받아들여 기피했기 때문이다. 다소 이례적이라 할 이 대표의 개헌 발언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과연 개헌을 하자는 걸까, 말자는 걸까? 당권파인 친박계 내부에서도 견해가 엇갈렸다. 

새누리당의 대표적 개헌 추진론자이자 친박계로 분류되는 정종섭 의원은 “이 대표의 연설은 개헌을 ‘오픈하는’ 발언”이라며 “개헌 논의를 적극적으로 하자는 뜻으로 본다”고 반겼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자’는 말도 권력구조 형태를 미리 정하지 말고 개방한 상태에서 누구나 개헌 의견을 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안보, 민생, 경제의 블랙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구절은 “개헌 논의를 하더라도 경제와 공공부문 개혁 등 민생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 라고 풀이했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대표연설은 개헌 논의를 민생과 병행해서 진행하자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에 불을 지폈던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해석이 달랐다. 홍 의원은 “현재로서는 이정현 대표가 앞장서서 개헌을 정치 화두로 삼고자 하는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가 보기에 요즘의 새누리당은 민생현장 방문 등 경제 살리기에 푹 빠져있기에 개헌 같은 이슈에 매달릴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이다. 홍 의원은 나아가 “이대표의 심중에는 개헌 문제가 그리 시급하게 와 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히려 개헌론을 당분간 수면 아래로 붙잡아두려 하지 않겠느냐”며 개헌논의 ‘유보’ 쪽에 방점을 뒀다. 원유철 의원도 “당대표로서 할 수 있는 얘기를 한 것일뿐 당장 개헌하자는 말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의 몰락=개헌론의 퇴색
원래 여권에서는 ‘개헌’이라는 단어가 금기어였다. 2014년 10월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가 청와대로부터 된서리를 맞은 뒤로 그런 분위기가 팽배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논의가 국가 역량을 분산할 경우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며 개헌 논의에 등을 돌린 상태였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정치권 개헌론의 동력은 주로 야권에서 공급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올해 6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20대 국회 전반기 개헌을 강조하고, 국회 사무총장에도 현역의원 시절 ‘개헌 전도사’로 불린 우윤근 전 의원이 발탁돼 눈길을 끌었다. 김종인 전 더민주당 비대위 대표, 박지원국민의당 비대위원장 등 야권 지도부도 “지금이 개헌 논의의 적기”라며 개헌론에 군불을 땠다. 9월 6일 이재오 전 의원 등이 중심이 돼 창당발기인대회를 가진 늘푸른한국당(가칭)도 “올해 안에 개헌을 끝내고 내년 대선에서 새로운 헌법으로선거가 치러지도록 하자”며 연내 개헌론을 들고 나왔다.

물론 여권도 지난 4월 총선 전에는 개헌과 관련해 당장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친박계에서 ‘반기문 대통령 + 친박계 총리’를 밑그림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암암리에 또는 공공연히 들고 나왔고, 비박계의 김무성 전 대표도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한국적 현실에 맞는 권력구조라고 추켜세웠다. 여와 야에서 불쑥불쑥 제기되는 권력구조개편 주장과 맞물려 개헌론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총선 후 새누리당의 상황은 확연히 바뀌었다. 여권내 개헌론이 행방불명된 것이다.

반기문 카드 확보로 대선 룰 바꿀 동기 줄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원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의회의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는 ‘다극’ 시대에 접어든 것도 하나의 배경이라고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장은 말한다. 서 원장은 “개헌론을 입에 올리는 게 왠지 뜬금없고 한가한 행위쯤으로 인식되는 게 여권 내부의 표면적 기류”라고 짚었다. 굳이 국회선진화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 시대의 개헌은 여야간 합의 없이는 추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나 여권의 주류인 친박계 내부에서 개헌론의 엔진이 식어간다. 친박계의 한 중진인사는 “총선 전에 그렸던 모든 개헌 관련 청사진은 없던 일로 돌아갔다”고 속내를 내보였다. 총선 이후 국회와 새누리당 권력지도가 바뀌었고 그에 따라 개헌론도 궤도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총선 전에는 민심이 우리 편이고 총선을 통해 우리가 의회를 완전히 장악하리라는 전제에서 이런저런 개헌 관련 시나리오를 짠 게 맞다. 근데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완전히 깨졌다.”

이를테면 총선 전 많은 이가 당연시했던 새누리당의 압승, 나아가 ‘180석 +α’ 의석 획득 전망이 산산조각나버린 것이다. 원내 수적 우위를 발판으로 개헌을 모색하려던 친박계의 구상은 일순간 휴지조각이 된 셈이다. 이 중진 인사는 “이런 상황에서 개헌을 논하는 건 좀 억지스럽고 생뚱맞은 일처럼 느껴지지 않느냐”며 새누리당의 몰락이 개헌론의 퇴색을 가져왔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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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달라진 건 오그라든 새누리당의 원내 의석만이 아니다. 총선 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계가 당을 접수한 것도 새로운 국면이다. 물밑에서 개헌론을 통해 판을 흔들던 친박계 유력인사들도 이제 그럴 이유를 못 느낀다고 한다. 8·9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지도부가 당을 장악한 마당에 개헌 관련 공식입장은 당 지도부에 일임하면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앞서의 친박계 중진인사는 “총선 전에는 비박계 대표(김무성 대표)가 당권을 행사하던 때라 친박계 목소리를 누군가가 대변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지금은 친박계 대표가 선출된 상황인 만큼 친박계의 공식입장은 당대표를 통해서 내면 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내 개헌론은 당내 파워게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김무성 대표 시절 비주류로 전락한 친박계는 은밀하게 준비한 이슈를 순식간에 치고 나와 판을 흔들거나 당권파의 전열을 흩뜨려버리곤 했다. 개헌론도 그런 방편의 하나였다. 하지만 당권을 쟁취한 이상 친박계에 그런 행위들이 불필요해진 것이다. 이 중진인사는 “지금은 (비주류로 전락한) 비박계가 뭔가를 시크리트하게 일을 도모해야 할 상황이며 친박계는 당의 공식입장으로 일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면 그만”이라고 진단했다.

그 1차적 결과가 9월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정현 대표가 자신만만하게 밝힌 개헌에 대한 입장 표명이다. 이 대표는 연설에서 국회의원을 일러 나라에 해(害)를 끼치는 ‘국해(國害)의원’이라고 공격하면서 “국민이 주도하고 국민의 의견이 반영된 반영구적 국민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학계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서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정치권의 합의’에 의해 추진 방법과 일정을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일종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학계→국민→정치권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밟자면 언뜻 생각해도 현정부의 남은 임기 1년 6개월만으로는 빠듯해 보인다. 정치권이 배제된 채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 논의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게 한국적 현실이다. 이 대표의 발언은 개헌에 대한 소극적 입장을 내비친 것이라고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풀이했다. “새누리당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유력한 카드를 사실상 확보한 상황에서 개헌을 통해 정치구조나 대선 룰을 근본적으로 바꿀 동기가 줄어든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개헌으로 국정 동력 옮기는 것 바람직하지 않아”
왜 이 대표는 ‘임기 중 하지도 않을(?)’ 개헌론을 언급한 것일까? 윤 센터장은 “개헌 등 권력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집권당의 대표가 국민적 관심사를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개헌은 당위론적으로 필요하지만 현 정부에서 추진하기는 부담스럽다는 쪽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수행해본 이들도 비슷한 의견이다. 유민봉 새누리당 의원은 청와대 초대국정기획수석을 지내고 20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원내에 들어왔다. 현정부의 주요 정책의 얼개가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하겠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와 정책이 국회와 정부에서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살펴보고자 정계에 입문했다”고 말할 정도다.

유 의원도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박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 가능성에는 유보적이었다. 2013년 3월부터 2년여동안 국정기획수석으로 일하면서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특히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국가의 지속적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집권 첫해 대통령의 공약을 국정과제로 전환하자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첫해 예산은 전임 정부에서 편성해놓아 새 국정과제를 뒷받침하기가 어렵다. 재정을 투입해 실행에 옮기는 때는 2년 차부터다. 특정사업 총 예산을 1조원이라고 하자. 사업 예산은 한 해에 다 투입되지 않고 몇 년에 걸쳐 나눠 쓰인다. 보통 집권 4년차부터는 권력누수가 오지 않나. 결국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2~3년에 그친다. 정책이라는 나무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좀 키워보려고 하면 대통령의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걷는다. 많은 정책이 열매도 맺지 못한 상태에서 정권은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국정과제, 정책을 집중해서 관리하고 계속 끌고 가는 동력을 마련하는 차원에서도 현행 5년 단임제는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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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개헌 관련 세미나에서 정세균(앞줄 왼쪽 셋째) 국회의장, 김형오(앞줄 오른쪽 셋째) 전 국회의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 정부에서 개헌이 탄력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박 대통령의 모든 관심과 열정이 경제활성화 등 민생에 쏠려 있어 개헌론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정치권에는 주인의식을 갖고 집요하게 개헌을 추진할 주체도 마땅치 않다고 유 의원은 진단한다. 그는 “개헌을 말하는 국회의원, 정치인들은 많지만 그런 의견을 결집해서 동력을 묶어낼 주도세력이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아가 “지금 상황에서 개헌쪽으로 국정의 동력이 옮겨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박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누구든 그런 생각을 가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총선 전에는 민심이 우리 편이고 총선을 통해 우리가 의회를 완전히 장악하리라는 전제에서 이런저런 개헌 관련 시나리오를 짠 게 맞다. 그런데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완전히 깨졌다.”


이와는 달리,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20대 국회가 구성되고 대통령선거까지 시간적 간격이 있는 지금이 개헌 적기”라며 친박계 인사들 중에는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박근혜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내고 대구에서 공천을 받아 당선돼 ‘진박(眞朴· 진실한 친박근혜)’ 국회의원으로 불리는 그는 줄곧 이원집정부제개헌을 주장해왔다. 그는 특히 “올 연말까지 개헌 논의를 완료해야 한다”고 시기까지 못박았다.

여권 개헌론의 향배는 결국 박 대통령의 의중에 달렸다. 최근의 개헌 관련 발언은 지난 4월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나왔다. 박 대통령은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 경제는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데 지금 상황은 어렵다. 다음에 경제가 살아났을 때국민들의 공감대를 모아서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는 “경제가 어려운데 개헌 논의가 자칫 블랙홀이 될 수 있다”며 쐐기를 박던 2014년 하반기 때의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후로도 8·9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나선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올 7월)과, 야당의 개헌론자인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올 6월)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박 대통령이 개헌에 직접 나서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개헌, 대통령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정권의 임기가 1년6개월밖에 남지 않은 현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개헌에 눈길을 줄 가능성은 더욱 낮아 보인다는 게 참모들의 견해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지금은 정권의 초·중반도 아니고 조만간 대선 국면이 펼쳐지는 상황”이라며 “경제도 여전히 어려워 박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개헌으로 얘기할지는 미지수”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앞으로도 박대통령이 나서서 개헌에 힘을 실을 가능성은 적다는 해석이가능하다.

만약 새누리당의 누군가가 개헌의 깃발을 든다면 박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전히 반대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과거 시기적으로 개헌 논의는 부적절하다는 말씀을 많이 했다”면서 “앞으로 그런 얘기를 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 것 같다”고 예상했다. 새누리당발(發) 개헌 논의를 예전처럼 강하게 부정하거나 누르진 않으리라는 예측이다. 박 대통령이 개헌론에 과거처럼 강력하게 빗장을 걸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동력을 불어넣는 일도 없으리라는 게 청와대 내부의 기류로 읽힌다.

박성현 기자 p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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