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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밀정을 읽는 두 가지 시선

김지운 감독이 6년 만에 한국 장편영화 연출작 ‘밀정’(9월 7일 개봉)으로 돌아왔다. ‘밀정’은 1920년대 말, 의열단(義烈團·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에서 목표를 위해 서로를 이용하려는 자들의 암투를 그린 영화다. 그리고 ‘과연 누구 편에 설 것인가’를 고민하는 인물을 통해 자신도 믿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밀정’은 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가. 나라 잃은 비극적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통해 ‘밀정’이 말하려 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얼마나 완성도 있게 그려졌는가. ‘밀정’을 본 두 전문가의 평을 전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흔들리는 '마음'에 대한, 일제강점기 첩보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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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스틸. 영화사 제공

김지운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영화 ‘밀정’은 그가 11년 전에 만들었던 ‘달콤한 인생’(2005)을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필름 누아르 스타일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조금 사소하다. 두 영화 모두 이병헌이 나온다. 마지막 공통점이 제일 중요한데, 그건 바로 이병헌의 대사에 있는 어떤 단어다.

‘달콤한 인생’은 선우(이병헌)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밀정’에서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은 의열단원 김우진(공유)과 함께, 이정출(송강호)을 밀정으로 이용하자는 이른바 ‘반간(反間·적의 간첩을 잡아 역이용하는 일)’을 이야기한다. 그 가능성에 대해 김우진이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자 정채산은 말한다. “이중간첩에게도 조국은 하나뿐이오. 그에게도 분명 마음의 빚이 있을 거요.”

‘달콤한 인생’이 그렇듯 ‘밀정’도 ‘마음’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달콤한 인생’의 선우가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듯, ‘밀정’ 속 이정출의 심중도 쉽게 알 수 없다. ‘밀정’은 의열단이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을 이중 스파이로 이용해 중국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와 항일 운동을 벌인다는 이야기인데, 이 영화는 “이정출은 왜 이중 스파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피한다.

여기서 근사값을 끌어낸다면, 그건 어쩌면 ‘마음’일 것이다. 선우가 잠시 마음이 흔들려 지옥 같은 일들을 겪게 되는 것처럼, 이정출도 그런 동요를 겪는다. 정채산이 ‘마음의 빚’이라 표현하는, 조선인으로서 지니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그가 김우진을 도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정출은 김우진에게 말한다. “다시 만났을 땐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일반적으로 이 시대의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가, ‘일제에 저항하는 조선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전개된다면 ‘밀정’은 다르다. 이 영화는 그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자들을 보여 준다.

의열단 내부엔 회의론자와 배신자가 있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출신인 이정출은 일본 경찰이 됐지만 의열단을 돕는다. 이것은 김 감독이 그 시대를 보는 프레임이다. 김우진처럼 투쟁 의지에 불타는 자도 있고, 조선인에서 일본 경찰이 된 하시모토(엄태구)처럼 철저히 친일파가 된 사람도 있으며, 그 사이에 선 인간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정출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역사의 격변기에 항상 존재하게 마련인 보편적 인간형이다.

여기서 ‘밀정’은 세 가지 장르적 관습을 결합해 이 테마를 밀고 나아간다. 먼저, 누아르는 이 영화의 전반적인 톤을 장악하며 빛과 어둠 그리고 그림자의 미장센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이 시대에 대한 시각적 메타포다. 두 번째, 스파이 장르의 플롯이다. ‘밀정’에서 캐릭터들은 속고 속이며, 위장하고 감추며, 의심하고 추적한다. 일종의 게임 구조다.

기차 안에서 김우진이 배신자를 색출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서는 수많은 관계들이 서로 엮이고, 다른 관계로 이어지고, 파국과 복수를 낳는 과정이며 여기서 인물들의 마음은 하나씩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정출이 왜 이중 스파이 역할을 하며 의열단과 김우진을 돕는지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추론은 가능하다. 변절의 과거가 그의 양심을 움직였거나, 일종의 거래처럼 잠깐 도와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일본 경찰의 외피를 쓰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인물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단서는 세 번째 장르 요소인 김우진과 이정출 사이의 멜로드라마다. 이정출은 흔들리고, 김우진은 그를 믿는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 오간 ‘마음’이 모든 사건의 모티브인 걸까? 과잉 해석으로 설득할 수는 있겠지만, 이정출은 여전히 미스터리의 인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관객에게 모호한 매력이자, 한편으론 결정적 모순이다.

| 지극히 '김지운스러운' 그러나 어딘가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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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스틸. 영화사 제공

‘밀정’의 주인공 이정출은 오래 갈팡질팡한다. 그는 애초 독립운동 단체의 통역이었다가 일본 경찰의 앞잡이가 되었는데, 옛 동료를 잡으러 가서는 그만 마음이 약해져 쩔쩔맨다. 또 의열단을 포섭하려다 되려 포섭당해 이중 스파이가 되고, 마지못해 일본 경찰의 뒤통수를 치면서도 계속 “원래 내 임무는 이게 아닌데…”라고 구시렁거린다.

혼란한 시대상과 평범한 개인의 선택 메커니즘에 대한 통찰이라 추켜세울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것이 이 영화 속에서 잘 구현되었느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스파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제작 의도나 주요 인물의 비중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극 후반 이정출이 장르극의 히어로로 급격히 진화하기까지 꽤 혼란을 느낄 것이다.

이 영화는 의열단 투사 김장옥(박희순)이 이정출을 위시한 일본 경찰에게 쫓기다가 자결하는 비장한 장면으로 문을 연다. 그 후 곧바로 이정출이 처한 상황, 라이벌 하시모토와의 관계, 경성에 머물던 의열단 멤버들, 의열단 2인자 김우진과 이정출의 첫 만남 등이 소개된다. 이러한 초반 장면들은 매우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사실, 너무 급하다. 그 때문에 각 장면의 포인트는 모호해지고, 이정출을 포함해 꽤 많은 주·조연 캐릭터 중 누구도 제대로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한다. 이 장황하고 산만한 도입부는 극의 구조를 기우뚱하게 만든다.

가장 큰 문제는 ‘김우진’이라는 인물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것이다. 극의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이정출의 태도는 시대의 무거운 기운을 온전히 대변할 만큼 진지하지 않다. 그는 김지운 감독의 초기 희극들에 나오는 인물처럼 얄팍하고 즉흥적이다.

한편 김우진은 그의 대척점에 서서 뚜렷한 신념을 갖고 움직여야 할 인물이다. 극에 무게감을 부여하고 이정출을 감화시켜 드라마의 바통을 건네주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유의 김우진은 미약하다.

덩달아 이정출이 갖는 함의들도 흐릿해지고, 김우진을 중심으로 한 의열단원 간의 중력도 느슨해진다. 이병헌이 특별 출연으로 등장하고, 그가 연기하는 정채산의 카리스마가 이야기를 감싸기 시작한 후에야 ‘밀정’의 붕 뜬 기운이 가라앉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고도 한참을, 이 영화는 김지운식 ‘미끄러지기’라 불러도 좋을 법한 연출과 서늘하고 짓눌린 장르극의 공기 사이에서 서걱거린다.

극의 중반부에 폭탄이 실린 열차에서 벌어지는 의열단원들과 일본 경찰들의 술래잡기, 그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며 진땀을 흘리는 이정출의 모습은 어떤 지점에선 흥미롭다. 과연 의열단 내의 밀정은 누구인가, 주인공들이 기세등등한 하시모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폭탄은 무사히 운반될 것인가 등 여러 궁금증이 긴박감을 낳는다.

그러나 연출은 많은 순간 인물의 내면에 밀착하기를 회피하는 듯한 인상이다. 어색한 임기응변으로 일관하는 이정출과 이를 받아치는 하시모토 일당의 심리전은 그 자체로는 재치 있다. 변죽을 울리는 인물들, 연극적인 구도 등 김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는 후반의 진지한 서사와 균형이 맞지 않는 소극이다.

인물들은 도둑 잡기 게임판 위의 말들이며,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캐릭터의 감정으로부터 끊임없이 괴리되고 미끄러진다. 이 영화의 결말을 통해 미루어 보면, 이것이 애초 의도한 효과인지는 대단히 미심쩍다. 극 후반에 이르러 어수선한 곁가지들이 사라지고, 관객이 집중해야 할 기표가 ‘송강호’ 하나로 수렴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이정출은 비로소 진지하고 과묵해져서 자신에게 주어진 영웅의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며, ‘밀정’은 일반적인 장르극의 문법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제야 혼란은 멈추고, 이 영화가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비로소 드러난다. 하지만 왜 그토록 먼 길을 돌아와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 기차에는 아주 많은 폭탄이 실려 있었다. 어떤 폭탄은 불이 붙었다. 거사는 성공인가? 글쎄. 그러기엔 도화선이 너무 길고, 불발탄은 너무 많다.

김형석, 이숙명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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