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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20대 총선, 젊은 세대가 종이돌멩이 던진 것”

 
 

오늘 셔츠를 입고 나온 제 모습이 너무 아저씨 같진 않습니까? 셔츠 단추를 풀고 팔소매를 조금 걷을까요?”


지난달 29일 중앙일보 신문콘서트에 온 그의 첫 인사말은 “아저씨 같지 않으냐”는 질문이었다. 김 의원은 “아무리 정치인이라지만 나이 들어 보이는 옷차림을 하는 순간 젊은 친구들이 거리감을 더 느끼는 것 같다”며 “청년들에게 정치에 관심 좀 가지라고 할 게 아니라 정치인들이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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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콘서트를 찾은 2030 관객과 대화하고 있는 김부겸 의원(왼쪽). 세 번에 걸친 도전 끝에 야당 불모지인 대구에서 당선된 소감에 대해 그는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열린 이날 신문콘서트의 주제는 ‘청춘, 정치에 길을 묻다’였다. 인디 가수 민채의 공연이 끝나고 김 의원이 등장하자 객석을 가득 메운 20~30대 100여 명은 환호성을 쏟아냈다. 관객석엔 특별 손님으로 신문콘서트를 찾은 김 의원의 막내딸 현수씨도 있었다. 사회를 맡은 정강현 기자가 현수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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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초대관객으로 신문콘서트에 참석한 김부겸 의원의 막내딸 현수씨(왼쪽).

‘아빠 김부겸’과 ‘정치인 김부겸’을 각각 평가해 달라.
“아빠 김부겸 하면 주말에 소파에서 잠자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웃음). 정 많고 딸들을 많이 예뻐하는 아빠인 것은 분명하다. 정치인 김부겸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상생과 소통인 것 같다. 요즘 청년 세대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김부겸과 함께한 신문콘서트
대구 평균 투표율 52%, 내 지역 67%
청년들 ‘당신들만의 리그 그만’ 경고

이후 김 의원이 등장한 신문기사를 토대로 ‘청년 김부겸’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대학생 시절 청년 김부겸은 어떤 사람이었나.
“여학생들에게 제법 인기 있었다는 소문은 혹시 못 들어보셨나(웃음). 제가 위로의 말을 전한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정말 답답했다. 얼마 전 이화여대생들이 새로운 단과대 설치에 반대하며 학내에서 집회하는 걸 봤다. 당시엔 전투경찰대원이 캠퍼스에 상주했다. 지금 청춘들의 가슴앓이만큼이나 혹독한 시절이었다.”
30세라는 어린 나이에 총선에 출마했다. 정치권에 뛰어든 계기는?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면 졸업 후 갈 데가 없었다. 일부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당연히 취직도 안 됐다. 자연스럽게 반체제 인사, 혹은 야당의 길을 가게 된 거다. 정치권 외에는 갈 곳이 없었던 셈이다. 정말 힘들었는데, 아내 덕분에 버텼다.”
연애 스토리가 궁금하다.
“처음 감옥에 갔다 온 직후인 23세 때, 은행에 다니던 아내를 만났다. 내가 정권에 찍혀 수배되니까 경찰이 집사람까지 못살게 굴었다. 두 번째로 감옥을 갔다오고 나니 아내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이 동시에 들며 더욱 애틋해졌다.”
 
◆왕따 정치인 김부겸
지난 20여 년간 그가 밟아 온 정치 역정은 험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할 때는 온갖 모함에 시달렸고, 대북송금 특검에 반대하며 ‘왕따 정치인’이 되기도 했다. 그의 정치 신념을 물었다.
한때 한나라당에서 활동했다. 보수색 짙은 지역에 출마해 쉽게 당선되고 싶진 않았나.
“한나라당을 나온 건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토론을 했는데,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우르르 달려들어 그 발언을 짓누르더라. ‘여기선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 울먹이며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대통령을 탄핵했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다. 언젠가 역사가들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기득권과 혁신세력이 충돌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 비판도 많이 하고 이념을 빌미로 세력을 갈라치려는 부분도 지적을 많이 했다. 그러나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형·동생 사이처럼 친할 때 고스톱도 많이 치고, 화가 나면 대들기도 하는 막역한 사이여서 감정이 각별했다.”
 
◆대구에 야당 깃발을 꽂다
김 의원이 야권의 불모지 대구에서 당선된 것은 강고한 지역주의의 균열을 상징한다. 19대 총선과 대구시장 선거, 20대 총선까지 세 번에 걸친 도전 끝에 이룬 성취다.
정치를 하면서 힘든 길을 고집했다. 대구 출마는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지역(경기도 군포시)에서 국회의원을 세 번 하고 나니 내가 꿈꿔왔던 정치와 점점 멀어지더라.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생각과도 멀어지고 지역구 사람들을 만날 때도 진지함이 없어졌다. 당시 50대 중반이었으니까, 뭔가 해보려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도전해보자, 세 번 정도 도전하면 결판이 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19대 총선 때는 비록 졌지만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 40%를 득표했다. 그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데, 국회의원 세 번 했고 대구에서 초·중·고등학교 졸업했다는 것만 보고 나한테 40%를 준 거다. 그건 나를 통해 대구시민들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의미 아니겠나. 이때 ‘도망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세 번 도전 끝에 목표를 이뤘다.
“대구시내 다른 지역구의 평균 투표율은 52~53%였는데, 내 지역(수성갑)은 67%였다. 특히 젊은 세대가 많이 참여했는데, 그건 ‘당신들만의 리그는 그만하라’는 요구와 함께 종이 돌멩이(투표)를 던진 거다. 시민들이 변화해 준 덕을 본 거다.”
정치인 김부겸의 최종 목표는 뭔가? 대선 경쟁에는 뛰어들 건가?
“대선 국면은 이미 시작됐다. 남은 기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테지만, 어떤 비전을 갖고 대한민국을 책임질 것이냐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20~30대의 아픔에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보기에 당마다 이미 대선후보가 정해진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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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콘서트에 초대된 홍대 인디 가수 민채는 1집 타이틀곡 ‘레인’ 등 세 곡을 불렀다. 민채는 지난 7일 2집 ‘Come fly away’를 발표했다.

(신문콘서트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김 의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당권 불출마 선언 이후 사실상 대선 경선 출마를 준비해 왔다. 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어진 2030 관객들과의 질의응답에서 김 의원은 청년 문제에 대해 진지한 답변을 내놓았다. 교육과 실업 등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묻자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에 국가 자원을 최우선 분배하겠다”고 답했다. 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성별 갈등과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선 “차별금지법을 통해 남녀 구분 없이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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