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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다시 떠올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진정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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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서울대의대 신경외과학교실

서울의 어느 의원에서 C형간염 집단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비슷한 사건이 최근 들어 10여 곳에 이른다. 국민보건 관리에 지극히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현재까지는 주사기 재사용 등으로 인한 오염이 원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00원에 불과한 일회용 주사기를 왜 재사용했을까. 어처구니없는 후진형 감염사고에 같은 의사로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유명 대학병원에서는 유령수술이 발각되어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유령수술은 환자 모르게 담당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수술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에도 일부 성형외과에서의 유령수술 사례가 보도된 적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의 유령수술은 많은 국민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약 2년 전 유명 가수가 비만 치료를 위한 위수술 후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엄청난 사회문제로 발전됐고 결국은 소위 ‘신해철법’이 제정되었다. 담당의사는 수술이 복강경을 이용한 최신 기법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빈번한 사망에도 어째서 위험한 수술을 계속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우리나라가 줄기세포 연구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질병이 곧 정복되리라는 소식에 특히 암이나 불치병 환자의 기대감은 정말 간절했다. 줄기세포로 병을 치료한다는 병원 홍보물도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어느 날 연구 결과가 허위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연구검체 취득 과정의 도덕적 문제점도 밝혀졌다. 결국 조작으로 확인되었고 논문은 철회되었다. 국민 모두가 허탈했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왜 부도덕한 의료나 의학연구가 최근 들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일까. 과거에는 숨겨졌던 일이 밝혀지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증가하고 있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어쨌든 의료계에 도덕적 해이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약 40년 전 전공의 시절 때 일이다. 병동 옆의 전공의실은 언제나 꼭두새벽부터 부산했다. 매일 아침 열리는 콘퍼런스 준비 때문이다. 어제의 진료활동을 브리핑하고 교육을 받는 시간이라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했다.

눈앞의 교수님들은 매서운 지적과 질책부터 시작했다. 전공의들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오금이 저렸다. 하루도 쉽게 넘어가는 날이 없으니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전문지식이 부족해서 꾸중을 많이 들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의료행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더 심한 꾸지람은 진료를 게을리한 경우였다. 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나 치료를 했을 때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떤 이유로도 환자에게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이로 인한 환자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과오도 묵과하지 않으셨다. 누가 돈 벌어오라고 시켰느냐는 조금 심한 말씀에는 내심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콘퍼런스가 끝나고 회의실을 나올 때는 마음이 편안했다. 혼자 생각이었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가톨릭 신자가 고해성사 후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교수님들도 회진을 하면서는 다시 자상한 모습이 되었다. 환자를 늘 측은히 여기고 돈에 초연한 교수님들이 존경스러웠다.

우리나라 의학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덕분에 국민들은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나아가 외국환자들이 몰려오고 외국으로 진출한 병원도 있다. 의료가 외화벌이를 시작했고 향후 중요한 국가발전 산업이라고 흥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곱씹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진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고 홍보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혹 이런 분위기가 증가하는 부도덕한 의료사고 원인들 중 하나는 아닐까. 산업화, 국제화도 좋지만 당장의 경제적 이득이 의료의 목표점은 아니다. 첨단 기계를 이용한 의술도 효율적인 병원 경영도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윤리의식이다. 의학교육에서도 전문지식 전달보다 인성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도덕적 해이가 계속 진행된다면 국민의 신뢰도 잃고 외국인도 오지 않는다. 각박한 세태에 엄격한 가르침을 주시던 스승이 더욱 그리워진다.


김 동 규
서울대의대 신경외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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