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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금융노조 사상 최대 총파업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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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경제부 기자

“한국 노동운동 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 될 겁니다. 이번엔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삭발했던 머리가 약간 자란 모습의 김문호 위원장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금융노조는 금요일인 이달 23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총파업을 개최한다. 사용자 측의 성과연봉제 도입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이다. 금융노조 전체 조합원은 10만 명. 김 위원장은 “휴직자를 제외한 전 조합원인 8만5000~9만 명이 참여한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이후 교섭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연말까지 2차, 3차 총파업을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전국의 은행원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한 곳으로 총집결한다. 예사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라는 거창한 수식어와 달리 긴장감은 떨어진다. 9만 명이 참여한다는 금융노조의 공언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개개인의 연봉과 직결된 주제의 파업인 만큼 조합원의 호응은 충분히 있을 거라고 본다.

문제는 과연 9만 명, 아니 10만 명 조합원 전체가 총파업에 나선다고 한들 사회적으로 어떠한 파장이 있겠느냐는 점이다. 2000년 7월 금융노조 총파업을 앞두고는 예금을 미리 인출하려고 몰려든 고객들로 은행 창구가 혼잡을 빚었다고 한다. 인터넷뱅킹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던 옛날 얘기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5년 26%를 차지했던 창구 거래 비중은 이제 10%로 떨어졌다. 사실 굳이 통계를 들춰볼 필요도 없다. 주변에 “최근에 은행 창구에 언제 가봤느냐”라고 물어보면 “가본 지 한참 됐다”는 답이 돌아온다. 아마도 언론 보도가 아니라면 대부분 은행 고객들은 총파업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지나가게 될 거다. 저성과자 해고를 막겠다고 벌이는 파업 투쟁이 역설적으로 은행 인력이 지금만큼 많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드러낼 판이다.

얼마 전 신한은행이 ‘미래형 점포’라며 공개한 스마트브랜치 1호점의 사진이 떠오른다. 총 세 개의 창구 중 한곳만 직원이 앉아있고 나머지 두 곳엔 직원 자리에 사람 대신 디지털키오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창구직원 셋 중 둘이 기계로 대체된 셈이다.

금융노조는 혹시 성과연봉제라는 작은 파도를 막기에 급급해서 그 뒤에 몰려오고 있는 기술혁신이란 해일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상 최대 규모가 될 9·23 총파업은 훗날 ‘그렇게 은행원이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는 회고의 대상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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