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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동네 중국집 값에 호텔 요리 “철가방 때 시절 잊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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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큼 맛있는 요리도 없다. 체취만큼 뒷맛이 길게 남는 것도 드물다. ‘중식계의 대부’로 꼽히는 왕육성(62) 셰프가 그랬다. 진한 듯 강한 맛이 풍겼다. 그의 첫마디는 ‘보신주의 불가론’이었다. 공직사회 비판도 아니고 갑자기 웬 보신주의?

맛집 평가 중식 부문 1위 왕육성 ‘진진’ 셰프

“요리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간 맞추는 것 하나도 소신 있게 해야해요. ‘안전빵’으로 가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저는 열 명 중 둘이 짜다고 할 정도로 간을 맞춥니다. 싱겁게 먹는 사람은 과감하게 포기하죠. 모든 손님을 만족시키려면 백전백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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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죠. 단 음식은 달게, 매운 음식은 맵게, 맛의 깊이와 쾌감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음식은 행복해지려고, 즐겁기 위해 먹는 것 아닙니까. 느끼할 만큼 달다면 신맛으로 달래면 됩니다. 식초나 레몬을 써요. 감칠맛도 살아나고요. 그런 게 소신입니다.”
맛이 무거워지지 않을까요.
“복싱에 비유해 볼게요. 맛난 음식을 먹어 본 사람일수록 중량급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저도 중량급을 선호해요. 헤비급은 아니라도 미들급은 되겠죠. 요리사는 전장에 나선 장수와 같습니다. 적 앞에서 움츠리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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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당 진진의 대표 요리 멘보샤(위쪽)와 우럭찜. 멘보샤는 다진 새우를 식빵에 넣어 튀겨낸다.

왕육성 셰프. 흔히 왕 사부로 불린다. 그가 꾸려가는 중식당 ‘진진(津津)’이 요즘 음식동네 핫이슈다. ‘동네 중국집 가격에 호텔급 요리’를 즐긴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미식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음식전문가 100인이 꼽은 국내 대표 맛집(KOREAT 선정) 3위에 올랐다. 중식당으론 최고 순위다. ‘정통 중식의 문턱을 낮춘 주역’이란 평을 받았다. 지난해 1월 서울 서교동에 1호점을 낸 이후 지난 6월 인근에 3호점을 낼 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다. 짜장면 배달에서 시작해 코리아나호텔 중식당 운영까지 40여 년 요리인생을 집약한 그만의 철학과 기량이 ‘진진하게’ 꽃피고 있다.
문을 연 지 2년도 안 됐는데요.
“업계에서 과찬을 한 것 같습니다. 입지도, 시설도 변변하지 못한데 말이죠. 1, 2호점만 해도 권리금이 없는 곳이죠. 주변에선 모두 안 된다고 반대했죠. 하지만 자신이 있었어요. 요즘이 어떤 시대입니까. 맛이 있으면 금방 알려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 아닙니까.”
거의 LTE급 성장입니다.
“매미도 나무에 오르려면 땅속에서 7년가량 기다려야 하지 않나요. 저도 오랜 시간 에너지를 비축해 왔어요. 그간 호텔에서 관철하지 못했던 것, 즉 ‘싸고 맛있게’를 실현하려고 해요. 무엇보다 재료만큼은 좋은 걸 쓴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식당이라면 당연 그래야죠.
“일반 경비를 줄이고 그만큼 재료에 집중합니다. 예컨대 우럭찜은 활어를 고집하죠. 영업 당일 새벽 노량진시장에서 받아옵니다. 생선의 경우 수족관에서 하루 이틀 지나면 진이 빠지고 살도 퍽퍽해집니다. 전복도 활전복만 씁니다. 일단 삶아보면 압니다. 살아 있는 것은 살이 껍데기 밖으로 나오지만 죽은 건 껍데기 속에 파묻혀요. 1㎏을 삶을 경우 A급은 400g 정도 살이 나오지만 C급은 280g에 그쳐요. 속일 수가 없습니다.”
돼지고기는 뭘 씁니까.
“암퇘지 전문점과 거래합니다. 수퇘지는 다소 누린내가 있고 살도 상대적으로 덜 고소합니다. 칼질을 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요. 암퇘지 고기가 칼에 더 착착 달라붙고 색상도 조금 더 붉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싸게 받는다고요. (※오향냉채·멘보샤·깐풍기·대게살볶음·마파두부 등 진진의 요리는 대개 1만~2만원대다)
“일품요리 10여 가지만 제공합니다. 종수가 적은 대신 시간을 갖고 준비할 수 있어요. 식당 자체도 크지 않고요. 세 곳 모두 100㎡(약 30평) 규모죠. 관리비·인건비 부담이 다른 곳보다 덜한 셈이죠.”
짜장면·탕수육을 팔지 않습니다.
“주변 음식점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죠. 면류는 메뉴판에 없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하려고요. 영업도 오후 5시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세 번 예약을 받습니다. 낮 12시에 여는 3호점에선 해물짬뽕 하나를 추가했죠.”
개업 2년간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당분간 변함이 없습니다. 수지를 맞추지 못할 지경이 되면 그때 재고해 봐야죠. 저녁 두 차례 만석이 돼야 경상비를 건집니다. 세 번째 손님부터 이익이 남는 거죠. 남들은 ‘돈 많이 벌었겠다’ ‘좋겠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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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만에서 열린 명주(名廚·명주방장) 선발대회에서 입상했을 때의 왕육성씨.

왕씨는 사업수완도 남다르다. 일반 중식당에선 처음 도입한 회원제가 대표적이다. 3만원만 내면 평생 20% 할인 혜택을 받는다. 일례로 8000원짜리 3호점 짬뽕을 6400원에 즐길 수 있다. 회원만 벌써 8000명을 넘어섰다. 외부의 체인점 제안도 거부해 왔다. ‘진진’의 맛을 지키는, 이를테면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다. 그는 “호텔에서 1인당 7만원짜리 식사를 해도 실제 재료비는 1만원이 넘지 않는다. 인생 2막의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인생 1막’과 무엇이 다릅니까.
“2013년 12월 31일 코리아나호텔에서 손을 뗐습니다. 나름 제법 돈도 모았죠. 등산에 견주자면 정상에 오른 거죠. 그때 결심했습니다. 지금까지 사회에서 받아온 것을 앞으론 나눠 주면서 살자고 말이죠. 그간 쌓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고, 또 여건이 익으면 제자들에게 식당도 하나둘 열어줄 겁니다. ‘철가방’ 시절을 기억해야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최근 지인이 보내준 문자메시지가 있어요. ‘인생 8미(味)’를 논했는데, 그중 두 번째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하는 ‘직업의 맛’이었죠. 지금 딱 그런 마음입니다. 주는 것, 비우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됐어요. 행복합니다.”
요리인생 반세기, 사연이 많겠죠.
“아버님이 중국 톈진(天津) 출신입니다. 일제 강점기 주물기술자로 한국에 건너오셨죠. 저는 경북 안동 태생이고요. 주물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가세가 기울어졌고, 저도 고2 올라갈 무렵 학교를 중퇴해야 했어요. 그때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든 거죠. 17세 때 고향 이모뻘 되는 분 가게에서 짜장면 배달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기저기 홀 서빙을 거쳐 1975년 요리에 본격 입문했습니다.”
대우빌딩 지하 홍보석이었죠.
“당시 칼판(재료 손질 및 코스 관리, 직접 불을 만지는 불판과 대비 개념) 실력자였던 친구 왕춘량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이후 신촌 만다린에서 초고속 승진을 했어요. 11개월 만에 주방장에 올랐죠. 월급도 3만원에서 24만원으로 껑충 뛰었고요. 사보이호텔·플라자호텔 등을 거쳐 86년에 코리아나호텔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5남매 중 둘째,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짐을 덜고자 정신없이 일했는데 어느덧 지금까지 왔네요.”
 
학력 콤플렉스는 없나요.
“전문가 시대입니다. 중식에서는 제가 박사 아닌가요(웃음). 다만 아쉬운 건 있어요. 예부터 중국에선 서(書·글), 금(琴·음악), 기(棋·바둑), 화(畵·그림) 넷에 능통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음식밖에 몰라요. 그게 제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겠지만요.”
TV에서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섭외가 종종 들어오는데 예능 프로는 능력 밖입니다. 재미있게 풀어가는 데 자신이 없어요. 홈쇼핑 출연도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 이익을 많이 남겨야 하잖아요. 제 인생 2막 철학과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첫째도 위생, 둘째도 위생 … 30년 쓴 손톱깎이가 애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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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육성 셰프가 내놓은 물건은 뜻밖이었다. 가방을 뒤지더니 손톱깎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인터뷰 전 전화통화에서 “40여 년 요리인생을 대표하는 애장품을 하나 골라 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날이 무뎌진 칼이나 구멍 난 웍(중식용 둥근 팬), 혹은 가운데가 파인 도마 등을 예상했다.

“1986년 코리아나호텔에 들어갔을 때 그곳 동료들이 선물해준 겁니다. 30년 내내 책상에 올려놓고 사용하고 있어요. 요리사는 무엇보다 청결해야 하거든요. 직원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점이고요. 중국집 하면 사람들이 지저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는 곤란하죠. 위생당국에서 검사를 나와도 저희 가게에선 꼬투리를 잡을 게 없다고 해요.”

중식당 ‘진진’의 주방은 개방형이다. 손님들도 조리 과정을 볼 수 있다. “도마나 칼은 소모품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버릴 수밖에 없어요. 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조리사 자격증 심사위원·출제위원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첫째도 위생, 둘째도 위생을 내세웠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은 뒤에 탈이 나선 안 되잖아요.”

기자가 내심 기대한 건 왕씨가 수련 시절 적어놓았던 ‘조리 노트’였다. 그가 그날그날 배운 기술을 퇴근 후 일기장에 옮겨놓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느라 잃어버렸어요. 그림도 하나하나 그려 넣었는데 저로서도 무척 아쉽죠. 지금처럼 기록의 중요성을 몰랐던 거죠.”

글=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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