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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이화여대 ‘진선미’는 기독교 정신 강조…중대 ‘의에 죽고 참에 살자’ 민족애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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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인 서울대 명예교수가 7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쓰촨(四川)대 교훈 ‘해납백천(海納百川·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인다)’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진리는 나의 빛’.

이정인 교수 ‘서예전’으로 본 대학 교훈

지난 7일 ‘석정 이정인(77·서울대 에너지 자원공학과) 명예교수 희수 기념 서예전’이 열린 서울대 문화관 1층 전시실. 서울대의 교훈 여섯 글자에서 진한 묵향이 배어 나왔다. 한지에 훈민정음 판본체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지난 3~8일 열린 전시회에는 서울대뿐 아니라 이화여대의 ‘진선미(眞善美)’, 성균관대의 ‘인의예지(仁義禮智)’ 등 국내 여러 대학의 교훈을 적은 서예작품 40여 점이 빼곡히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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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의 교훈 ‘진선미(眞善美)’

이정인 명예교수가 직접 붓으로 옮겨 적은 국내외 100개 대학의 교훈 가운데 서예 스승인 남두기 선생이 “잘 썼다”고 평가한 작품만 추려 전시했다. 100개 대학 중 국내 대학은 48개교다. 중앙일보가 매년 선정하는 국내 대학 평가의 순위를 참고했다. 나머지는 중국의 베이징대를 비롯해 일본·미국·영국의 대학이다. 10년간 서울대 교수 서예 모임인 ‘묵향회’에서 활동한 이 명예교수는 9개월 동안 서예전을 준비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하루에 3시간씩 글씨를 썼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사실 서예와는 거리가 먼 ‘암반역학(岩盤力學)’의 전문가다. 큰 돌을 연구하고, 터널을 뚫고 자원을 채취하는 분야가 전공이다. 1975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2007년 퇴임할 때까지 30여 년을 암반 연구에만 매진했다. 서예에 본격적으로 취미를 갖기 시작한 건 퇴임 이후다. 그는 “평생을 공대 교수로 살아서인지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전문 분야만 아는 ‘전문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서예를 배웠다”고 말했다.

대학의 교훈에 주목하게 된 이유를 묻자 51년 자신을 가르쳤던 초등학교 스승의 얘기를 꺼냈다. “당시 학급의 급훈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였다. 한국전쟁으로 혼란하던 시대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매일 아침 짧은 얘기를 해주고 급훈을 소리 내 외게 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살이에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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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게이오대의 교훈 ‘독립자존(獨立自存)

당시 급훈이 인생의 버팀목이 됐다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가 70년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일본 도호쿠(東北)대로 4년간 유학을 떠났을 때도 초등학교 급훈이 큰 힘이 됐다. 이 명예교수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적 시선에 부닥칠 때마다 급훈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가 교훈을 ‘인성교육의 화두’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명예교수는 “대학이 전문지식을 교육하기 전에 학생들이 인성을 갖추도록 돕는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교훈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명예교수는 한국 대학 교훈에 반영된 건학 정신과 교육 이념이 ‘유교’와 ‘기독교’라는 두 줄기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그가 2년간 교훈 100여 개를 연구 분석한 뒤 내린 결론이다. 유교 정신의 반영은 성균관대의 ‘인의예지’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는 46년 유교 정신이 집약된 ‘인의예지’를 교훈으로 정했다.

한국 대학들의 교훈에 기독교 정신이 반영된 건 초창기 한국 대학 설립을 선교사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의 교훈인 ‘진선미(眞善美)’가 그랬다. 이 명예교수는 “1930년 교훈을 제안한 이화여대 김상용 교수의 해설을 보면 기독교 정신이 느껴진다. 당시 그는 ‘진(眞)은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의 진리’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성경의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따온 연세대 교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에도 기독교 정신이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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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의 교훈 ‘섭심(攝心)·자애(慈愛)·신실(信實)·도세(度世)’.

교훈은 학교의 정체성도 담고 있다. 한국외국어대의 교훈 ‘진리·평화·창조’ 중 ‘평화’는 ‘서로 다른 민족 간 교류를 통한 인류 대화합’을 의미한다. 어문계열 학과가 많은 한국외대는 학교의 특성에 맞춰 글로벌 인재 육성이 목표다. 불교에 뿌리를 둔 동국대는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 세계의 구현 방법, ‘섭심·자애·신실·도세’를 교훈으로 삼았다. 학생들도 늘 마음을 다잡아 가다듬고(섭심), 대중을 자비심으로 대하며(자애), 참되고 미더운 행실(신실)을 하라는 뜻이다. 포스텍(포항공대)처럼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이공계 대학은 좀 더 진취적인 느낌을 교훈(‘창의·성실·진취’)에 반영했다.

교훈에는 시대의 색깔이 반영된다. 서구 대학들의 교훈은 16세기 중세를 독점하던 기독교 정신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이 ‘주님은 나의 빛’을 교훈으로 정한 뒤, 여러 대학이 근대 철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모습을 바꿔 왔다. 한국 대학의 교훈에는 질곡의 근대사가 반영됐다. 중앙대의 교훈은 ‘의에 죽고 참에 살자’다. 이 학교가 일제시대인 1918년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할 목적으로 설립된 ‘중앙유치원’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이 47년 민족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나라가 부강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설립한 단국대는 ‘구국·자주’가 교훈이다.


글=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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