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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예측하지 마세요…툭툭 튀어나오는 맥락없는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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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문헌
강영숙 지음, 문학과지성사
248쪽, 1만2000원

장편 『리나』 『라이팅 클럽』 등을 통해 개성적인 행보를 보여온 소설가 강영숙(49)의 소설집이다. 2012년 가을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발표한 8편을 묶었다. 이즈음 강씨를 사로잡은 건 ‘환상’인 것 같다. 사실주의 소설의 반대편 말이다.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나 긴밀한 인과관계가 돋보이는 감칠맛 나는 드라마 혹은 묵직한 사회적 시선 같은 걸 기대했다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요령부득의 작품들이다. 단편들의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귀향’ ‘불치(不治)’ ‘해명(海鳴)’ 등 재현보다 해체가 목적인 개념미술 제목 같은 느낌이다. ‘폴록’에 나오는 용어 ‘회색 문헌(grey literature)’은 공식 자료 이전의 자료, 최종 결과물이 나오면 폐기될 자료를 뜻한단다. 독자들에게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작품들을 내놓는 데 대한 멋쩍은 자기변명 차원에서 작가가 그런 소설집 제목을 붙였겠거니 넘어가자.

줄거리를 요약한다 해도 큰 의미가 없는 작품들이지만 눈에 띄는 에피소드, 이미지는 있다. 가령 평생 직장에서 은퇴한 ‘검은 웅덩이’의 주인공 정연은 불쑥 자신의 집을 방문한 가사 도우미 울산 아줌마, 한국말 하는 미국인 모르몬교 선교사, 정체불명의 택시기사와 함께 술판을 벌이다 전철 안에서 잠들어 차량 기지에서 밤을 보낸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 작품 전체는 맥락 없는 사건들과 인물들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가득하다. 강씨는 ‘작가의 말’에서 전철에 갇혀 기지에서 밤을 보낸 적 있음을 넌지시 고백한다. 경험의 작은 씨앗을 얼마나 엉뚱하게 부풀렸는지 알겠다. 독자의 예측을 카프카적으로 배반하는 소설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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