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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문학]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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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최근 한 달 동안에는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장편소설이 여러 권 나왔다. 많은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루며 관심을 표했고 또 그래야 마땅한 작품들이었다. 그 책들 사이에 고요히 놓여 있는 소설집이 있다. 작가도 아직은 신인이고 제목도 자극적이지 않아서 눈에 덜 띌 것이다.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고통이 그와 닮았다. 힘없는 이들의 소리 없는 고통, 그래서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고 마는 종류의 고통. 단지 책 한 권이 간과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간과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김혜진 소설집 『어비』?


김혜진의 첫 소설집 『어비』(민음사)에서도 특히 표제작인 ‘어비’의 여운에 대해 말이다. ‘나’는 도서 물류창고에서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제 또래 청년을 속으로 ‘어비’라고 부르며 호기심을 품는다. 상사에게도 말 한마디 지는 법이 없고 동료들에게도 무뚝뚝한 그를 다들 타박하지만 ‘나’는 그에게 관대한 편이다. 아마 ‘나’는 어비에게서 미래 없이 현실을 버텨 내야 하는 청년세대의 피로를 감지하고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리라. 상사의 근거 없는 질책을 견디다 못해 어비가 일을 그만두면서 둘의 관계는 더 진전되지 못하고 멈춘다.

‘어비’를 다시 만난 것은 생활용품 창고에서였다. 우연히 또 같은 일을 하게 된 것인데, 이번에는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한 걸음 다가가 본다. 함께 엉망으로 취한 날 밤 ‘나’는 지갑을 잃어버렸고 ‘어비’는 다음 날부터 일터에 나타나지 않는다. ‘어비’의 소행인지 궁금했지만 미처 추궁해 볼 수도 없었는데 ‘나’ 역시 그날로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두 청년의 불안정한 삶의 결들을 번다한 말을 동원하지 않고도 섬세하게 짚어 가는 한편 둘의 관계가 어떤 결론에 이를지 궁금하게 만들며 후반부를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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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떠오른 소설가 김혜진. 우리 시대 청춘들의 불안한 일상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중앙포토]

후반부에서 ‘어비’는 ‘먹방 BJ’가 되어 돈을 벌고 있고 ‘나’는 작은 회사에서 잡심부름에 시달리고 있다. 저것은 진짜 노동이 아니라고, ‘나’는 ‘어비’의 방송을 보며 속으로 비난한다. 한때 함께 일했지만 이제 둘의 삶은 달라진 것일까. 그러나 방송에서 거짓을 늘어놓는 ‘어비’와 모욕적인 노동을 감내하는 ‘나’의 모습이 교차 서술될 때 우리는 둘이 보기보다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제 노동으로부터 소외돼 있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지갑을 훔쳐 ‘어비’의 거울상이 되는 장면은 이 소설의 고요한 절정이다. 각자의 길을 택했으나 더 나쁜(슬픈) 쪽으로 흘러가다가 결국 하나가 된 두 사람.

이 소설은 한밤의 다리 위에서 끝난다. “계속 앞으로 가는 것도, 되돌아 나가는 것도 아득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좀 덜 걸을 수 있을까. 금방 다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차피 그런 건 없었다.” 이것은 ‘나’의 말이지만 결국 ‘어비’의 말이라고 해도 된다. 혹은 우리 시대의 청년세대가 함께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청년세대’라고 쓰고 나니 ‘바깥’에서 ‘안’을 힐끗거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무참해진다. 해설을 쓴 평론가는 이 작가를 두고 ‘정직하다’고 평했는데 그것은 이 작가가 언제나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쓴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신 형 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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