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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500년 숨결 품은 안동 권씨 마을, 그만큼 이어온 한과를 만나다

| 그 길 속 그 이야기 <77> 봉화 솔숲갈래길
  
9월의 추천길 테마는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걷기여행’이다. 낮에는 고즈넉한 고샅을 걷고 밤에는 한옥에서 하룻밤 쉬어갈 수 있는 트레일 중에서 경북 봉화의 ‘솔숲갈래길’을 골랐다. 솔숲갈래길은 봉화 읍내에서 닭실마을이 있는 유곡리까지 이어진 7.1㎞ 길이의 트레일이다. 실마을은 약 500년 전 충재 권벌(1478~1548)이 터를 잡아 조성된 동 권씨 집성촌으로, 마을 안에 추원재·문행당 등 한옥 숙소가 있다. 지난달 29일 솔숲갈래길을 걸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옥에서을 보내고 이튿날에는 닭실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만든 한과를 맛봤다. 흘에 걸쳐 손으로만 만든다는 닭실마을 한과에는 옛날 집안 경조사를 준비하던 우리네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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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계곡 뒤로 석천정사가 보인다. 조선시대 선비가 며칠씩 머물며 글 공부를 했던 곳으로 이곳을 지나면 닭실마을이다.




500년 묵은 마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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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숲갈래길 이정표. 솔숲갈래길은 봉화군이 2011년 조성했다.

솔숲갈래길은 2011년 봉화군이 조성한 트레일이다. 봉화 읍내를 휘감아 흐르는 내성천을 따라 난 산책길, 닭실마을과 봉화읍을 연결했던 석천계곡 옛길, 닭실마을 안에 있는 토담길을 이어 붙였다. 트레일 대부분이 천이나 계곡 등 물을 끼고 있다. 지난달 29일 박경숙(52) 봉화군 문화해설사와 함께 솔숲갈래길을 걸었다. 시작점인 봉화체육공원부터 봉화교까지 1.5㎞ 구간은 줄곧 내성천변으로 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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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읍 내성천에 놓인 징검다리.

 
“어제 종일 비가 내려 징검다리가 잠길까봐 걱정했어요. 40일 만일 거예요. 봉화에 제대로 된 비가 내린 것이.”

박경숙 해설사가 반갑게 말했다. 징검다리를 건너자 강둑으로 길이 이어졌고 강둑을 따라 5분쯤 걷자 석천계곡 입구에 다다랐다. 석천계곡 입구부터 닭실마을까지 이어진 석천계곡 옛길(약 2㎞)과 닭실마을은 문화재청이 지정한 명승 제60호다. 100여 년 전 마을 앞을 지나는 신작로가 생기기 전까지 닭실마을 주민은 이 계곡 길을 걸어 봉화 읍내를 오갔다. 옛길은 고즈넉했다. 계곡이 깊어질수록 길은 좁아졌다. 빽빽한 금강송이 하늘을 가렸고 길바닥에는 계곡물에 쓸려 내려온 큼지막한 돌들이 널려 있었다.
 

석천계곡 옛길에는 소나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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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란 길을 따라가다 보니 ‘청하동천(靑霞洞天)’이라고 적힌 바위가 나타났다.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닭실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바위를 지나자 물길이 넓어졌다. 계곡 건너 구릉에 석천정사(石泉精舍)가 보였다. 1535년 세워진 석천정사는 선비의 별장 같은 곳이랬다. 현재 석천정사는 관광객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관광객이 석천정사 출입문을 뜯어 불을 지핀 사건 이후로 석천정사의 문은 굳게 닫혔다.

담장 밖에서 바라본 석천정사는 긴 역사에 비해 깔끔한 모습이었다. 단청도 최근에 새로 입혔는지 색이 바랜 것이 없고 뚜렷했다. 보수를 많이 했다는 것은 그만큼 훼손이 많았다는 뜻이다. 부끄러운 마음과 죄스러운 마음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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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촬영한 닭실마을 전경.


석천정사를 지난 뒤 오솔길을 따라 5분쯤 걷자 닭실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벼가 푸른 무논 뒤로 기와를 얹은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닭실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으로 영남을 대표하는 명당이다. 문수산(1207m) 남쪽 줄기에 자리한 마을을 둘러싸고 남동쪽으로 동막천이, 북서쪽으로 가계천이 흐른다. 기묘사화(1519년)로 파직당한 충재가 1519년 닭실마을로 들어왔고 그의 후손이 대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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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 충정공파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을 전시한 충재박물관.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 도계촌에서 나고 자란 충재 선생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충재 선생의 삼촌이 유곡리에 살았는데 닭실마을의 땅을 충재 선생에게 물려줬어요. 충재 선생의 어머니도 이 마을 출신이었죠.”

안동 권씨 충정공파 19대 손 권용철(44)씨의 설명이다. 마을에는 충재의 흔적이 담긴 건물이 여럿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청암정(靑巖亭)이다. 충재는 1526년 청암정을 세우고 거처로 삼았다. 현재 청암정 내부에 들어가려면 해설사와 동행해야 한다. 청암정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지난 3월 시행됐다. 청암정 옆에 있는 충재박물관에서 근무하는 해설사에게 관람을 요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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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6년 세워진 청암정. 충재가 거처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나무로 둘러싸인 정자에 들자 현실과 단절된 기분이 들었다. 관직에서 쫓겨난 이가 머물던 외딴섬 같은 곳에 서서 가을바람을 맞았다. 바람이 쓸고 간 마음이 사뭇 쓸쓸했다.


 
 



닭실마을 한과에 얽힌 비밀

청암정에서 나와 마을 가장 안쪽에 있는 추원재(追遠齋)로 향했다. 이곳 역시 충재가 세운 전각으로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비나 눈이 내려 묘소에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경우, 추원재에 있는 누각 2층에서 망제(望祭. 조상의 무덤이 있는 쪽을 향해 지내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충재 권벌이 세운 추원재.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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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재의 제사는 ‘불천위(不遷位) 제사’로 치러진다. 불천위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위패를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위패를 사당에 모시고 대가 끊이지 않는 한 지내는 제사를 가리킨다. 퇴계 이황(1501~70), 서애 류성룡(1542~1607) 등 나라에 공을 세운 인물이나 큰 업적을 남긴 유학자를 불천위 제사로 기린다.

“제가 어릴 때는 충재 선생의 불천위 제사 때 200명이 모이기도 했어요.”

권용철씨가 말했다. 안동 권씨 충정공파 종택에서는 불천위 제사를 포함해 1년에 12번 제사를 지낸다. 현재 권용철씨는 상중이다. 선친 권종목씨의 삼년상을 치르고 있다. 제사가 없을 때는 추원재를 숙박시설로 사용하지만 지금은 상중이라 개방하지 않고 있다. 삼년상이 끝나는 2018년 8월 말부터 이용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추원재 근처의 문행당(文杏堂)에서 묵었다. 문행당은 2년 전 전통양식으로 지은 한옥 숙소다. 안채와 사랑채가 구분돼 있고 구들장을 데워 난방을 한다. 문행당 사랑채에서 밤을 보냈다. 귀뚜라미와 개구리가 밤새 울었다. 여름과 가을이 뒤섞인 묘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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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숙박 체험 시설 문행당.


이튿날 아침까지 방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문행당에서 나와 추원재와 청암정을 지났다. 청암정부터 한과작업장이 있는 마을 입구까지 토담을 따라 걸었다. 담벼락 앞에 쪼그려 앉아 이름 모를 꽃도 쓰다듬고 토담을 만져보며 마을길을 천천히 훑었다.

한과작업장에는 닭실마을 부녀회원 10명이 이른 아침부터 모여 한과를 만들고 있었다. 한과(漢菓)는 밀가루나 찹쌀가루에 꿀이나 설탕을 넣고 반죽해 기름에 튀겨낸 옛날 과자를 말한다. 닭실마을 한과가 특별한 이유는 제조 방식 때문이다. 500년 가까이 이어져 오는 방식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만 한과를 만든다.

 

한과를 만들고 있는 닭실마을 부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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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불천위 제사 때문입니더. 제사상에 한과가 꼭 올라가니까. 대대로 안동 권씨 며느리에게만 한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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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용으로 포장된 닭실마을 한과.

부녀회장 박정자(63)씨가 말했다. 말린 찹쌀 반죽을 기름에 튀기고 상온에서 48시간 말린 다음 조청을 바르고 튀긴 밥풀을 고루 묻혀주면 한과가 완성된다.

“이기는 기냥 음식이 아니고 정성입니더. 집안 여자 어른이 며느리를 들이거나 딸을 시집보낼 때도 꼭 한과를 만들어 혼례 상에 올렸지예. 아가씨는 결혼했니껴?”
 
김명자(76) 할머니가 갓 만든 한과를 주며 물었다. 뜨끈한 조청 때문인지 어르신의 정성 때문인지 달큼한 한과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한과작업장을 지나 닭실마을과 이웃한 토일마을로 들었다. 길은 토일마을의 들판을 한 바퀴 돌아 닭실마을로 돌아오게끔 되어 있다. 들판을 걷는 구간은 약 4㎞. 길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풀벌레 우는 소리만 울렸고 참새를 쫓기 위해 설치했다는 사이렌만 가끔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달 말쯤이면 일대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 터였다. 그때를 상상하며 한적한 논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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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정보=서울에서 봉화까지는 경부~영동~평택제천~중앙고속도로를 차례로 타고 간다. 자동차로 약 3시간이 걸린다. 봉화 솔숲갈래길은 모두 7.1㎞로, 천과 계곡을 따라 걷는 구간이 많다. 비가 많이 오면 길을 통제하기 때문에 미리 알아보고 가야 한다. 대부분 구간이 평지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삼년상을 치르느라 숙박 손님을 받지 않는 추원재 대신에 고른 숙소가 문행당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하는 우수 한옥 숙박시설 ‘한옥스테이’에 등록돼 있다. 1박 문간채 5만원, 사랑채 7만원. 010-8789-4108. 닭실 한과는 전화(054-674-0788) 또는 봉화군 특산물 판매사이트(bmall.go.kr)에서 구입할 수 있다. 1.5㎏ 5만원. 봉화군 문화관광과 054-679-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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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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