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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oo으로 배웠네-시즌2] 심미안 2.0의 남자, 그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을까

아니, 나는 그 사람을 전혀 그리워하지 않는다. 지금 만나는 이 사람은 그와 정반대다. 휴대전화로 괴상한 테트리스 같은 게임하기를 즐겨하고,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예능에 히히덕거리는 이 남자가 지금 내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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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 난해한 남자

그는 달랐다. 아름다움을 보는 심미안, 그런 이상한 게 있었다. 아무리 웃어도 우울해 보이는 얼굴로 그는 나를 한 공연장으로 끌고 갔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두 시간 넘게 앉아 연극을 봤는데, 무대 위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감을 부르는 그 어떤 사건도 없었다. 다만 그렇고 그런 사람들의 지루한 일상 이야기가 빽빽하게 이어질 뿐이었다. 별일 없는 한 남자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별다른 사건 없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맺어질 수 없는 이야기. 자신의 세계에만 빠진 채 무기력한 등장인물들. 난 소리치고 싶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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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아저씨, 난해한 남자2

하지만 그에게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그는 물었다. “어땠어?” 아무리 연인 사이어도 일간지 문화부 기자의 체면을 대놓고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멋진 답변을 이리저리 궁리하던 순간, 내 입이 이미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러시아 연극을 봤으니까 러시아 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모호하고, 또 모호하기 때문에 매우 쿨한 답변이라고 생각한 나는 도대체 제 정신이었을까. 이 괴상한 대답 때문에 난 지금도 안톤 체호프라는 이름만 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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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줄거리를 알지못했네

순식간에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 여자가 됐지만 우리가 만나는 동안 그는 언제나 예민하고, 또 예술적이었다. “저 오케스트라의 연주 말이야, 저 뒤쪽 줄에서 밸런스가 좀 깨진 것 같아.” 그래, 뭐, 그런 말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저기 플루트 불고 있는 여자 정말 예쁘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다. “영화가 꼭 재미있어야 한다는 건 편견이야”란 말까지도 참아줄 만했다. 하지만 그의 심미안에 경계란 없었다. “네가 입은 코트는 아이보리도 아니고 핑크도 아니고... 휴... 난감하다. 어디서 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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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귀도 참 밝았지

그래,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허리 디스크가 걸릴 것 같은 연극도, 아무리 들어도 내 싸구려 오디오와 비슷하게 들리는 그의 최첨단 오디오 장비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가 그런 감각으로 나의 일상을 헤집고 들어올 때는 견딜 수 없었다. 쉽게 말해서, 나는 그가 원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그 아름다움을 알아볼 자신도 없었고, 아름다운 대상이 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힘든 연애를 얼마간 이어간 끝에 나는 그 사람이 완전한 아름다움을 찾아 내게서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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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해봤다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그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단순한, 그야말로 단순하신 지금 나의 연인, 이 사람을 만나면서 옛날의 그가 자꾸 떠오르는 것이 절대 아니다. 지금 내 연인과는 그 어떤 예술 작품을 놓고 논할 수도 없고, 손 잡고 고전 연극 한 편을 보러갈 수도 없다. 가끔 기막히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을 때 이어폰을 나눠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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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내 옆엔

그래도 나는 옛날의 그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도대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밋밋한 러시아 희곡을 왜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하는지,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의 전율이란 뭔지, 마음 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옛 연인. 신선한 전시가 시작됐을 때 아무리 바빠도 한번은 보러가야 하던 그 사람, 그래서 트렌드에 늘 깨어있도록 나를 자극하던 그. 그 사람은 하나도 그립지 않다.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절대로.
 
 미련없다니까 기자 imsocoool@joongang.co.k**r
 사진=안톤 체호프, 연극 '바냐 아저씨', 영화 '비긴 어게인' 자료사진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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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