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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갤노트7 vs 한진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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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잘나가는 조직과 망가지는 조직은 위기가 닥칠 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지난 열흘간 삼성전자와 한국 정부의 위기대응 방식은 드라마틱할 정도로 달랐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 공급된 250만 대의 갤럭시노트7을 전량 교체·환불해 주기로 했다. 35개 제품에서 밧데리 불량이 발생하자 1조5000억원 정도의 손실을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스케일 큰 해법에 시장은 놀랐다. 신뢰는 회복됐다. 순식간에 사태는 반전했다. 추수감사절을 겨냥한 아이폰7의 출시를 앞두고 과도한 대응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애플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삼성의 영업 이익은 줄어들지 모른다. 대신 삼성은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신뢰 자산을 얻었다. 돈이 부족해 발생한 위기는 신뢰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뢰를 까먹어 생긴 위기는 돈으로 회복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오래 전부터 예고된 한진해운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미국 롱비치 해안에서,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수십억 달러어치 물품을 실은 한진해운 소속 선박들이 갈 곳을 잃은 채 뱅뱅 돌고만 있다. 돈을 떼일 것을 염려해 해외 채권자들이 선박압류, 하역거부, 운송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글로벌 무역국가다. 해운이 있어야 무역이 있다.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한진의 화물선들은 한국 무역이 표류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 정부는 국내 금융과 세계 물류·실물 시장이 실핏줄처럼 얽히고 설킨 국적 해운사의 퇴출을 결정하면서 이 문제를 오직 금융위원장한테만 맡겼다. 이건 유대인 상인 샤일록이 살점은 도려내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선 안 되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같은 설정이다. 정부의 결정으로 5000억원쯤 되는 금융은 아꼈을지 모르지만 물류 한국의 신뢰는 추락했다. 이로써 정부의 안목과 수준과 실력이 드러났다.

금융과 물류, 양쪽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연쇄적으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내려야 할 시기에 대통령 수행차 중국에 있었다. 지난 3~6일 항저우에서 열렸던 G20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도 대통령을 따라갔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물류·실물 쪽을 고민했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청와대는 요새 정책 기능보다 대통령을 흔드는 세력을 찾아내 힘을 과시하고 혼내는 일에 골몰하는 듯하다. 다들 정신을 딴 데 팔고 따로 놀고 있는 것 아닐까.

나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어마어마한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병원장을 포함해 전공이 다른 여러 명의 관련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 부작용과 후유증을 예측하고, 수술 뒤엔 흔들림 없이 대처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실제론 집도의 격인 임종룡 금융위원장만 뛰었다.

삼성전자를 살린 건 사내 게시판에 뜬 익명의, 그러나 회사의 운명을 자기와 동일시한 한 직원의 ‘노트7 배터리 리콜 사태에 대한 의견’이라는 짧은 글이었다. 그 직원은 “우리 제품을 예약 구매한 충성 고객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 새 제품으로 교환해 줘야 한다. 이걸 실천하지 않으면 고객가치가 최우선이라는 직원 교육도 하지 말라”고 썼다. 이 글의 조회수가 2만5000회에 달했고 “성과급은 안 받아도 좋으니 제발 새 제품으로 교환해 달라”는 댓글이 줄을 이으면서 경영진의 마음까지 흔들었다.

글쓴이의 신원은 아직도 파악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그가 리콜을 결정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가 어느 위치에 있든 ‘여기가 내 자리다. 물러설 수 없는 내 자리’라는 자존감과 책임감이 그의 양심을 때렸을 것이다. 돈을 넘어서는 자존과 책임의 가치가 조직문화로 뿌리내렸다는 의미에서 삼성전자는 세계일류의 칭호를 받을 만하다. 다시 한국 정부의 정책결정자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들에겐 ‘여기가 나의 마지막 자리.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최고 공직자다운 자존과 책임감이 있는 것일까. 그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고 이리저리 빠져나갈 구멍이나 챙기는 의식미약 상태는 아닌가.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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