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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바다로 출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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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전북 부안 왕포항에서 만난 배동권(왼쪽), 최현임 부부. 이들은 서울에서 지내다 어촌으로 내려간 7년차 ‘귀어인(歸漁人)’이다. [프리랜서 오종찬], [중앙포토]

“꽃게는 매우 예민해요. 그물에 걸리면 얼마 살지 못합니다. 온도에도 민감해 주로 밤에 작업해야 해요.”

2일 오후 전북 부안군 진서면 운호리에서 만난 배동권(50)씨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전날 밤 12시에 부인 최현임(52)씨와 바다로 나가 12시간 넘게 그물에 걸린 꽃게를 건져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3시간 남짓 눈을 붙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부부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꽃게잡이 노하우를 기자에게 막힘 없이 설명했다. 이들은 올해로 7년차 ‘귀어인(歸漁人)’이다. 연간 6500만~7000만원의 순수익을 내는 고기잡이 배 선장이다. 꽃게와 주꾸미, 새우, 숭어 잡이로 1년 내내 바다에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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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항구의 모습. [프리랜서 오종찬], [중앙포토]

6년 전만 해도 이들은 뱃머리조차 잡아본 적 없는 ‘어업 문외한’이었다. 배씨는 서울 종로3가 귀금속 세공단지에서 20년 넘는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세공사였다. 유년 시절 친구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낼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스무 살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명동의 귀금속 세공사에서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했다.

상경 3년 만인 1990년대 초 종로3가 귀금속단지로 옮겨 세공업체를 개업했다. 타고난 재주에 노력을 더해 일했다. 시간이 지나자 손님과 동료에게 숙련된 장인(匠人)을 뜻하는 ‘마이스터(Meister)’로 불렸다. 벌이도 괜찮았다. 부인 최씨도 안양 일대에서 매출 1~2위를 다투는 귀금속 판매점을 운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를 느꼈다. 이른 아침부터 한밤까지 작업대에 앉아 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갈수록 체력이 달렸다. 수시로 현미경을 들여다보니 시력도 나빠졌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짓눌렀다. 배씨는 “경제에 가장 민감한 게 금값 시세인데,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금이 집 안 장롱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며 “매출이 예전 같지 않으면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도 지금 같은 생활을 이어 갈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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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서해 에서 배를 몰고 주꾸미 잡이를 하고 있는 배동권씨. [사진 귀어귀촌종합센터]

노후에 대한 불안과 도시 생활에 대한 회의가 들던 중, 고향에 홀로 사시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떠난 빈집을 추스르며 고향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배씨는 ‘어부’를 꿈꾸며 2010년 2월 부인과 운호리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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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라도 어부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웃들은 기술을 섣불리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배씨 부부가 금세 일을 포기할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괜히 바다에 내보냈다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배씨는 새벽부터 항구에 나가 막무가내로 출어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읍소도 하고 사정도 하며 일손을 보탰고 그렇게 몇 달 동안을 바다에서 보내며 꽃게와 주꾸미 잡는 법을 익혔다.

이후 빌린 이웃 배로 단독 출항해 소라와 박하지(돌게)를 잡으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부부는 중고 어선을 사 본격적으로 고기잡이에 나섰다. 배씨는 “꾸준히 연습한 뒤 어업에 나선 덕분에 만선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고기를 잡기도 했다”며 “이웃에게도 ‘손재주도 좋고 수덕(고기잡이 운)까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배씨는 이듬해 부안군 어업 후계자로 선정됐다. 정부 지원자금 5000만원으로 어선 한 척도 추가로 사고, 어업 허가도 정식으로 얻으며 고향에 자연스레 정착할 수 있었다.

50이 넘은 ‘반퇴세대’지만 노령화된 고향에서 부부는 젊은 피로 통한다. 배씨는 “새로운 어장 개척은 우리 부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어획량이 줄어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과 해역 곳곳의 어획 상황을 점검하고 새로운 어장 정보를 어촌계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최 씨도 “어선을 몰고 중국 영해인 동중국해와 멀지 않은 곳까지 나갔다”며 “겁도 없이 나가 그물을 내려 새 어장을 개척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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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는 귀어를 준비하는 다른 가족들의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 인천에서 내려온 두 가족과 연을 맺은 배씨 부부는 자망어선을 소개해주고 함께 배에 올라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최씨는 “아무런 지식 없이 내려와 많은 고생을 했던 터라 다른 주민보다 우리가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새내기 귀어 가족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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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처럼 바다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귀어인은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690명이던 귀어인은 지난해 1073명이 됐다. 배씨 부부처럼 ‘반퇴시대’를 걱정하는 귀어 행렬이 많다. 전체 귀어인구 중 절반 이상인 58.5%가 50대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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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지난해 어촌 가구의 연 소득 평균은 4390만원으로 2014년보다 7% 증가했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증가율(1.7%)을 크게 앞섰다. 특히 50대 어민의 한 해 평균 소득은 6029만원으로 40대 이하 어민 연 소득(9264만원)에 이어 둘째로 많았다. 양식어가의 평균 소득은 6139만원으로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5780만원)보다도 많다. 배씨는 “어촌은 도시보다 생활비 지출이 줄어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며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자연과 함께하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어 노후를 보내기에 매우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다에서의 낭만적인 삶만 기대하고 귀어를 감행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강하다. 배씨는 “현지인들은 귀어인이 오면 ‘몇 년을 버티고 떠날까’부터 생각한다”며 “자립해 어느 정도의 소득을 꾸준히 낼 수 있어야만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연다”고 강조했다. 어업으로 자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최씨는 “기술이 없으면 망하기 가장 쉬운 곳이 바다”라고 말했다. 어망을 제대로 보수하지 않고 조업 시기를 못 맞추면 잡은 꽃게와 물고기도 폐사하기 일쑤다. 고기잡이는 노동 강도가 강하면서도 어장에 따라 어획량이 천차만별이다. 최씨는 “귀어 자금으로 3억원 넘게 대출받을 수 있지만 5년의 거치 기간(이자만 냄)이 지나면 상환액 부담이 엄청나다”며 “성실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여 안정적으로 어획량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안=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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