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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32> 오스트리아식 선술집, 호이리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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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칭에서 가장 오래된 호이리거, 알터 바흐 헹글.


오스트리아에 가기 전부터 오스트리아 와인에 반해버렸다. ‘오스트리아 와인은 전 세계 1%’라는 수식어가 뇌리에 콕 박혀버린 탓이다. 와인 생산량이 전 세계 1%란 뜻이니, 오스트리아 여행은 보기 드문 와인을 맛볼 절호의 기회구나 싶었다. 오스트리아의 포도 생산 면적은 5만ha로 그중에 70%가 화이트 와인이다. 화이트 와인 중에 간판스타는 고유 품종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로, 레몬과 복숭아향이 감도는 산뜻한 맛이 특징이다. 물론 리슬링,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등의 화이트 와인도 생산한다.

지역으로 따지면 니더외스터라이히(Niederösterreich) 주와 부르겐란트(Burgenland) 주가 오스트리아 양대 와인 산지다. 게다가 수도 빈(Wien)에도 포도밭이 있다. 빈엔 대대로 이어온 소규모 와이너리가 대부분이라, ‘호이리거(Heuriger)‘에서 와인을 마시는 특유의 문화가 정착됐다. 호이리거란 그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와인’란 뜻의 호이리게(Heurige)를 파는 주점을 말한다. 한마디로 오스트리아식 ‘선술집’이다. 그냥 선술집이 아니라 포도밭 옆 선술집이다. 빈에서 호이리거로 이름난 곳은 80㎢의 광대한 빈숲 내에 자리한 그린칭(Grinching)이다. 그린칭에는 ‘루돌프스호프(Rudolfshof)’, ‘알터 바흐 헹글(Alter Bach-Hengl)’ 등 유서 깊은 호이리거가 모여 있다.

그린칭에 처음 가던 날, 빈숲에서 가장 높은 칼렌베르크로 방향을 잡았다. “우선 칼렌베르크에서 노을부터 보고 그린칭으로 내려가서 와인 한잔 하자.” 오스트리아 여행 내내 손에 와인 잔 마를 날이 없었던 일행과 난 노을과 와인 낭만 2종 세트로 그날을 마무리 하고 싶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차창 밖 포도밭 풍경도 탐스러웠다. 길 한번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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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칼렌베르그에서 우리를 격하게 환영하는 것은 칼바람이었다. 핑크빛 석양을 담으려다 카메라가 날아 가버리는 건 아닌지 겁날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서로 어깨를 끌어안고 석양을 바라보는 커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 커플 말고는 사람도 몇 보이지 않았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눈을 부릅떴다. 그제야 포도밭 너머 도나우(Donau) 강과 시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맑은 날엔 슬로바키아까지 보인다는 풍문이 영 거짓말은 아닌 듯싶었다. 아름답고도 추운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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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에 소나무 가지를 걸어두면 호이리거라는 표시다.


종종걸음으로 그린칭에 돌아오자, 조르르 늘어선 노란 집들이 존재만으로도 아늑하게 느껴졌다. 비슷비슷한 집들 사이에서 호이리거를 알아보는 법도 간단했다. 대문에 소나무 가지를 늘어뜨려 놓으면 호이리거란 표시다. 루돌프스호프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루돌프스호프는 18세기에 루돌프 왕이 서민들과 허물없이 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하던 선술집으로 유명하다. 안으로 들어서자 경쾌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홀을 가득 채운 통나무 식탁,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2인 1조의 슈람멜(Schrammel) 음악, 뷔페식 샐러드 바는 호이리거의 3대 구성요소다. 연주자들이 테이블을 돌며 연주에 열을 올리면 흥에 취한 손님들은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이 특유의 흥겨운 분위기야말로 호이리거를 찾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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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루돌프스호프의 서민적인 분위기는 좋았지만, 와인 맛은 실망스러웠다. 미련 없이 ‘알터 바흐 헹글’로 발길을 돌렸다. 알터 바흐 헹글은 부시, 푸틴, 클린턴도 다녀간 호이리거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무려 1137년부터 와인을 만들어 왔다. 와인 리스트는 물론 식사 메뉴도 다양하다. 안주로는 햄, 살라미, 치즈 등 푸짐하게 담아내는 콜드플래터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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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작쿵작 호이리거에선 늘 흥겨운 음악이 흐른다.


산뜻한 그뤼너 벨트리너 한 모금에 집 나간 생기가 돌아온 듯했다. 넓을 홀을 가득 채운 음악 소리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2인조 연주자가 테이블 사이를 돌며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아리랑’을 연주하는 게 아닌가. 점점 다가오더니 ‘애모’, ‘운명’ 등 한국 가요를 막힘없이 들려줬다. 준비된 관광객용 레퍼토리라 하더라도, 마음이 뜨끈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여행의 피로가 스르르 녹고, 내일 일정에 대한 걱정도 점점 희미해졌다. 밤새 음악소리에 맞춰 와인 잔을 기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 다음 호이리거를 위하여, 쨍! 잔 부딪치는 소리가 음악처럼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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