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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두근두근 인터뷰] 청소년극 주인공만 세 번째, 배우 안승균

 

지난 1일 배우 안승균(22)은 빙하 조각을 연상시키는 하얀 큐브 위에 서 있었다. 하루하루 사는 게 고달파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가도 충동적으로 뛰어 내리고, 그러다 또 힘없이 축 늘어지는 모양새가 딱 사춘기 소년이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북극곰처럼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열다섯 살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오렌지 북극곰’(9월 1일~10일, 피터 윈 윌슨·여신동 공동연출)은 2014년 시작된 한국과 영국의 공동 프로젝트다. ‘고등어’, ‘죽고 싶지 않아’에 이어 국립극단이 올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청소년극이다.
 

안승균은 이민자의 아들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소년’ 역할을 맡았다. 올해 초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연극 ‘렛미인’의 주인공 ‘오스카’를 맡아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은 그의 행보는 다소 남다르다. ‘비행소년 KW4839’, ‘죽고 싶지 않아’에 이어 국립극단 청소년극에만 세번째 참여하는 안승균을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만났다.

 

 

- ‘오렌지 북극곰’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택했다기보다는 택해'진' 거죠. 오디션을 보고 뽑아 주신 거니까요. 영국과 한국의 협력 프로젝트여서 궁금했어요. ‘렛미인’ 때도 영국 연출가와 작업하면서 무척 재밌었어요. 문화가 다른 만큼 깨달은 게 많았고, 한국인으로서 자극을 많이 받았거든요. 외국 연출의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이번 작품에도 영국 연출가가 참여한다고 하셔서 관심이 가더라고요. 근데 또 외로운 소년이라고 해서 갈등하기도 했어요. ‘렛미인’ 때 맡았던 ‘오스카’와 이번 역할이 비슷한 면이 있거든요. 캐릭터가 묻혀 버리거나 발전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할까봐 고민했는데, 이왕 또 소년 역할을 하는 거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소년을 해 보자! 소년 전문 배우가 되어 보자!’ 이런 생각을 했죠.(웃음)”
 

- 국립극단 청소년극에 세 번째 참여하는 소감은.
"의도치 않게 청소년극을 또 하게 되었는데요. 매번 할 때마다 다르고, 많이 배우는 거 같아요. 10대들의 문화는 계속 바뀌잖아요. 연장자로서 아이들의 문화를 따라가는 게 굉장히 쉽지 않더라고요. 저도 청소년 시기를 겪었고, 지금도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어서 불과 얼마 전에 청소년이었는데 말이죠. 제가 어렸을 때를 많이 돌이켜 보게 되는 거 같아요. 어른과 청소년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저도 아이들과 같은 고민을 하거든요."
 

- 어떤 고민인지.
"‘뭘 해야 하지?’, ‘나는 누구지?’ 이런 고민이요. 지금 배우를 하고 있는데도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할까 끊임없이 생각하거든요. 청소년들도 이런 생각을 무척 많이 하더라고요. 저도 그랬던 거 같고 지금도 하고 있죠. 청소년극이 좋은 이유는 어른들에게 교훈이나 깨달음을 주기보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인 거 같아요. ‘죽고 싶지 않아’를 할 때 청소년의 뇌에 대해 공부했었는데 ‘소셜 브레인’, 즉 사회적 뇌라고 해서 어른들이 아이들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현실적이지만 조금 더 경험이 많고 판단력이 덜 흐린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부족한 점을 보듬어 주고 옆에서 많이 지켜봐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이번 작품에서 맡은 ‘소년’에 대해 직접 소개한다면.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열망이 강한 아이예요. 아버지가 안 계시고, 엄마와 단 둘이 사는데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이민 온 이민자이거든요. 소속감이 너무 없다 보니까 자기 방어적인 성향이 강하고 비디오 게임으로 전쟁놀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군대가 공동체 생활이다 보니까 거기에 관심을 두는 거죠. 영국이라는 사회에 살면서 자신이 왜 여기에 있고, 누구인지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해요. 엄마가 이민자로서 차별 받고 고생하는 걸 지켜보다 보니 속상하면서도 원망스럽고 막상 엄마한테 살뜰하게 굴지는 못하는 그런 아이죠.”

[사진제공=국립극단]

[사진제공=국립극단]

[사진제공=국립극단]

[사진제공=국립극단]

-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인데 이를 표현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는지요.
“확실히 어려웠죠. 이민자에 대한 개념부터 불분명했으니까요. 근데 그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소년’의 마음이었어요. 또 다른 주인공인 한국 소녀 ‘지영’이 다른 배경으로 다른 사건과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소년’과 비슷한 감정이 전개되거든요. 결국 어른과 청소년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청소년이라는 시기를 겪는 ‘소년’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했어요. 그래서 캐릭터를 만든다기보다 이 아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 때문에 갈등하고 힘들어하는지에 집중했어요. 1차원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살아갈 때도 주변의 많은 영향을 받잖아요. 그래서 다른 배역들과의 조화를 통해 ‘소년’이라는 역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공동연출을 맡은 여신동 연출과는 두 번째 작업이었는데요.
“매번 느끼는 건데 연출 전공이 아닌 연출가와 작업할 때 좋은 점이 있는 거 같아요. 여신동 연출이 무대미술을 전공하셔서 연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게 돼요. 아무래도 관점이 다르시다 보니까 배우로서 많은 자극을 받아요. 연기를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데 이런 분과의 작업을 통해 연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거든요. 다른 배우들도 연출 전공이 아닌 연출가와 작업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연극의 좋은 점은 함께 연습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 수 있고, 자신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는 거예요. ‘오렌지 북극곰’은 대본이 열려 있다 보니까 처음 보았을 때 소설 같았고, 이걸 어떻게 연극으로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 때 저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들이 큰 도움이 되었죠. 돌아가면서 연출도 해 보고, 작가도 돼 보고 대본 수정도 같이 하면서 함께 장면을 만드는 이런 과정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좋은 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작품을 계속하는 것도 복이지만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게 진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본인은 어떤 장면이 가장 공감되었는지.
“마지막 부분이요. 엄마와 갈등이 폭발하고 ‘소녀’와 동반 자살을 결심하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편지를 남기고 떠나려는 순간, 엄마가 집에 와서 아무 말 없이 ‘다 떨어졌더라’라고 하면서 ‘코코팝’을 건네요. 영국인처럼 보이고 싶어서 ‘코코팝’을 먹었고, 엄마는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소년’은 단단한 척하지만 마음속은 무척 말랑말랑한 아이인 거 같아요. 마지막 장면은 그 말랑말랑한 마음이 터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고요. 누구나 겪어 본 감정인 거 같아요. 엄마랑 싸우고 의지할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밥 먹었어?’ 이 말 한마디만 들어도 울컥하잖아요.”

- ‘소년 안승균’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사람, 친구, 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이번 작품의 ‘소년’처럼 소속감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거 같아요. 초등학교 때 왕따를 심하게 당한 적이 있어서 중학교 때는 아이들이 무섭기도 했고, 친구 관계에 예민했어요. 과거에 아픔이 있어서 그런지 자꾸 불쌍하고, 동정하고 싶은 캐릭터를 맡는 거 같아요.(웃음) 그래서 청소년극이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어요. 사실 ‘비행소년KW4839’은 뭣도 모르고 연극하고 싶어서 했던 작품이었거든요. 근데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 자신에 대해서, 저의 청소년 시절에 대해서 말이죠.”
 

- ‘소년’이 게임을 하면서 게임 속의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죽이고 살리는 부분은 ‘리셋 증후군’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저도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죠. 지금은 안 그렇지만요. 후회하고 아쉬워하면 남는 게 없는 거 같아요. 과거에 연연하면 성장이 없고, 무엇보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사는 거 자체가 답이 없는데 청소년들이 자기 생각과 주관대로 흔들리지 않고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답은 없고, 그냥 하면 되고, 놀면 된다고 생각해요.”
 

- 반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소녀’와 이야기할 때 ‘소년’은 반짝반짝 빛난다. 본인은 언제 가장 빛나는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걸 볼 때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거 같아요. 가끔 춤을 춰도 무척 신나요. 주변에서 보면 에너지가 확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제가 해야 할 때, 만들어야 할 때, 보여줘야 할 때처럼 책임감이 필요할 때 반짝반짝 빛나요. 책임이 주어지면 의지가 생기니까요.”

[사진제공=국립극단]

[사진제공=국립극단]

- 서울공연예술고 재학 당시 춤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연기과로 전과했는데.
“고1 때까지는 춤에 미쳐 있었죠. 그러다가 선배들의 연극을 봤어요. 태어나서 처음 본 연극이었는데, 슬픈 작품이 아니었는데도 커튼콜에서 제가 오열했어요. ‘저거야. 저게 예술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죠. 너무 멋있는 거예요. 대사를 외우고 연기를 하고 무대 위에서 선배들이 노는 게 진짜 멋지게 느껴졌어요. 사실 춤도 멋있어서 시작했고, 연기도 멋져 보여서 시작했는데 하면서 진정성을 찾는 거 같아요. 그날 공연이 끝나자마자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전과를 하겠다고 교무실에 찾아갔는데 1년 반을 기다려야 했죠. 내신 1등급 유지하면 전과를 시켜주겠다고 하셔서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또 학교 홍보도 하라고 하셔서 댄스팀을 만들어 다른 학교 축제나 외부에 공연 가서 학교를 알리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한테 예쁨도 많이 받았어요.(웃음)”
 

- 10월에 개봉하는 영화 ‘걷기왕’에서도 고등학생 ‘정돈’역을 맡았는데요.
“비중이 크지 않고 주연을 보조하는 역할이지만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예요. 이름 그대로 머리도 딱 정돈되어 있고, 약간의 결벽증과 집착이 있어요. 책상이 어긋나면 모서리를 꼭 맞춰야 하는 그런 아이죠. 너무 표현하면 과할 거 같아서 적당히 힘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생긴 거부터 웃겨요. 지금까지 했던 다른 소년들에 비해선 무척 밝고 엉뚱하죠. 드라마는 아직 자신이 없는데, 영화는 많이 해 보고 싶어요.”
 

-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항상 바뀔 거 같은데. 신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신선하고, 신성하고 감각적이고 귀한 직업이 배우라고 생각해요.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 직업을 통해서 굉장히 많이 공부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좀 더 예민할 줄 알아야 하고,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배우가 하면 보러 가야지!’ 이런 느낌을 주는 배우요. 사람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그 이유는 배우 본인이 만드는 거라 생각하고요. 연기 잘하는 것만큼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어요. 어떤 사람이든 혼자서 살아갈 순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를 보았을 때 편한, 자연스러운 따뜻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소년’은 이민자로서, ‘지영’은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헷갈려 하죠.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한마디.
“일단 부딪혀 봤으면 좋겠어요. 생각보다 버틸 수 없는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힘들다면 기댈 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도 좋고요. 기댈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대보면 의지가 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없다면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믿음이란 건 줘 봐야 아는 거잖아요. 신뢰를 주고 상처받아야지, 자기 자신을 믿어 보지도 않고 믿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잘했어!’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게 생각보다 큰 힘이 돼요. 고민이 많겠지만 그냥 해 봤으면 좋겠어요. 해 보면 걱정했던 것과 달리 더 나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고요. 그래야 재밌으니까요. 그리고 재밌어야 살 만하잖아요.”
 

글=김재영 프리랜서 기자 tong@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kim.choonsik@joongang.co.kr
영상=전민선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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