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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일탈의 화폭…최욱경·황창배를 다시 보다

최욱경(1940~85)과 황창배(1947~2001)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선 굵은 작품세계로 촉망받던 화가들이다. 고정관념과 형식적 틀을 혐오했던 두 사람은 각기 서양화와 한국화 분야에서 새 지평을 여는 기수로 열기를 뿜어냈다. 이들이 한창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 땅을 떠났을 때, 부음을 받아든 미술계는 아까운 작가를 잃었다고 아쉬워했지만 세월의 변전 속에 두 이름은 점차 잊혀졌다. 타계 30년과 15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두 화가의 특별전이 마련됐다. 고인이 남긴 작품을 잘 건사한 유족의 힘이 돋보이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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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에서 작업 중 카메라를 응시하는 최욱경. 짧은 생애 동안 한국적 정체성을 찾으려 과감한 실험과 독자적인 화법으로 매진했다. [중앙포토·황창배 기념전 실행위원회]

최욱경 개인전은 ‘미국 시기(American Years 1960s-1970s)’란 제목으로 지난 달 31일 개막해 10월 30일까지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서 열린다. 화가의 어머니가 소중하게 갈무리한 회화 70여 점이 나왔다. 최욱경이 미국에 체류했던 1963년부터 78년까지 약 15년 동안 제작한 아크릴화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한 흔적이 진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내가 살아온 순간의 경험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 유학시절 미국 화단을 지배한 추상표현주의가 안겨준 일말의 허무감을 극복하려 형체를 찾았다고 밝힌 작가는 단청과 민화 등 한국 전통 색감을 더해 불꽃처럼 일렁이는 뜨거운 화면을 창조했다. 68년을 전후해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에 대응하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그림도 생산했다. 당시 한국 화단이 단색화 일색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최욱경의 독자적인 행보는 과감하고 돌발적이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예술감독은 “최욱경은 가장 미국적인 사조인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출발했으나, 우리 소재와 재료 연구를 거쳐 한국적 정체성을 독자적 화법으로 발전시킨 작가”라고 설명했다. 이 전시를 계기로 작가의 전작 도록(카탈로그 레조네)이 출판될 예정이다.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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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에서 작업 중 카메라를 응시하는 황창배. 짧은 생애 동안 한국적 정체성을 찾으려 과감한 실험과 독자적인 화법으로 매진했다. [중앙포토·황창배 기념전 실행위원회]

황창배 개인전은 ‘무법(無法)의 법(法)을 그리다’라는 큰 제목 아래 다양한 형식으로 이어진다. 15주기 특별전(9월 1~29일 동덕여대 박물관), ‘이화화인(梨花畵人)’(9월 6~17일 이화아트센터), ‘탈고 안 된 전설’(9월 7~20일 동덕아트갤러리) 3개 전시에 작가의 유작 40여 점이 나온다. 12일 오후 1시 30분 이화여대 중강당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세미나가 열린다.

황창배는 ‘한국화의 테러리스트’ ‘무법(無法)의 자유주의자’라 불렸을 만큼 한국화의 오랜 숙제에 온몸으로 부딪쳤던 화가다. 전통의 현대적 계승, 한국적 정체성 찾기, 동시대미술로서의 새 지평을 열어젖히려 좌충우돌했다.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는 “고인은 한국화의 고답적인 틀에 맞서 일탈의 방법과 정신으로 자기 양식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는 “기성 가치에 대한 거침없는 반항과 자아 확인을 위한 방황의 연속으로 점철된 듯하지만, 그 귀결점은 언제나 우리 것을 향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송희경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문인화의 발상을 토대로 한 민화적이고 현대적인 한국화”라고 황창배의 회화를 정의했다.

황창배는 1997년 중앙일보 통일문제연구소의 ‘북한 문화유산조사단’ 일원으로 참여해 남의 화가로는 처음 북을 방문했다. 방북 뒤 김복기 대표에게 “다가오는 봄에 뭔가 큰 사건을 터뜨릴 거야”라고 전시계획을 알렸으나 암 발병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최욱경과 황창배, 두 사람이 실험하고 모색했던 20세기 한국화의 길은 아직 중도에 있다. 그들이 견지했던 불꽃과 무법이 그립다.
최욱경
1940년 서울 생. 10세에 운보 김기창·우향 박래현 부부 화실에서 공부한 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미국 크랜브룩대와 브룩클린 미대를 졸업하고 프랭클린 피어스대 조교수를 지냈다. 78년 귀국해 영남대와 덕성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85년 45세에 심장마비로 요절.
황창배
1947년 서울 생.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철농 이기우에게 서예와 전각, 청명 임창순에게 한학과 미술사를 배웠다. 78년 국전(國展) 대통령상을 수상한 뒤 ‘일연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동덕여대·경희대·이화여대 교수를 지냈다. 2001년 암 투병 중 53세로 타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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