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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 성인 된 날…교황, 노숙인 1500명과 피자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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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수십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과 시성 미사가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성식에서 “테레사 수녀는 자비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성베드로 광장 시성식에 앞서 한 여성이 테레사 수녀의 상을 들고 있다. [바티칸 AP=뉴시스]

1997년 선종한 테레사 수녀는 오랫동안 성녀로 불렸다. 가난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를 위한 ‘빈자의 성녀’였다. 그는 4일 공식적으로도 성녀가 됐다.

선종 19년 만이다. 수 세기가 걸린 경우가 다반사란 걸 감안하면 이례적 초스피드로 성인 반열에 오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일 오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과 시성 미사를 집전했다. 광장은 신도들로 발을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수십 만 명이 운집했다. 테레사 수녀의 대형 초상화가 광장에 내걸렸다. 테레사 수녀가 거의 평생을 바쳐 봉사한 인도가 수슈마 스와라지 외교장관 등 정부 각료 12명을 대표 사절단으로 파견했고, 13개국 정상과 바티칸 주재 외교 공관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교황은 이날 “여성성의 상징적 인물이자 자비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했던 분”라고 말했다. 이어 원고에도 없이 “어쩌면 많은 이들이 ‘성 테레사’라고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지도 모른다. 그냥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라고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우리 안에 있는 인물이란 의미다. 교황으로선 이날 행사가 지난해 말 선포해 올 11월20일 막을 내리는 ‘자비의 희년(禧年)’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테레사 수녀의 시성은 두 가지 기적이 있었다고 인정됐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해서 위종양을 치유 받았다고 증언한 인도 여성의 2002년 사례와 뇌질환에 걸렸다가 회복한 브라질 남성의 지난해 사례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그는 시성식을 앞두고 바티칸 기자들과 만나 “2008년 뇌질환으로 병원에서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지만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한 덕분에 수술 직전에 두통 등의 증상이 깨끗이 사라졌고 수술 없이 몇 달 후 일상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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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이스라엘이 공습한 레바논 서베이루트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는 테레사 수녀. [중앙포토]

테레사 수녀의 명성도 시성에 기여했다. 그는 20세기 가톨릭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197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 인물이 됐다. ‘살아있는 성인’의 한 명으로 불렸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테레사 수녀는 당시 “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테레사 수녀는 카리스마 넘치며 못지않게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요한 바오로 2세와 가까웠다. 바오로 2세는 테레사 수녀가 선종한 지 2년 만에 시복 절차를 시작했다. 원래 5년이다. 2003년 테레사 수녀를 복자로 추대했다. 바오로 2세도 2014년 성인이 됐다. 테레사 수녀는 현재는 마케도니아의 수도이지만 당시엔 오스만제국에 속했던 스코페에서 알바니아계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10대 초반부터 가톨릭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그는 1928년 아일랜드로 건너가 수녀가 됐고 이듬해 인도로 건너갔다.

인도에선 20년 간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일했다. 주변의 가난을 목격하곤 50년 12명의 수녀와 함께 ‘사랑의 선교회’를 세웠다. 극빈자·고아, 나병·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등 죽음을 앞둔 사람을 위해 헌신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후에도 그를 따르는 이들은 여전하다. ‘사랑의 선교회’는 현재 139개국에서 5800명이 일하는 단체로 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시성 미사를 마친 후 노숙인 1500명을 초대해 피자 점심을 대접했다. 대부분 테레사 수녀가 세운 '사람의 선교회가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에 기거하는 이들이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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