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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하늘에서 본 아무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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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오디세이 2016’, 출발 전, 안내 책자를 받았다.
그 책자의 제목이 ‘아무르강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다’였다.

‘아무르강’ 이라는 단어에 설렜다.
두어 달 전 TV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본 적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아무르강은 동아시아의 젖줄이다.
칭기즈칸이 나고 자란 몽골 고원이 발원지다.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흘러 오오츠크해로 나간다.
길이가 자그마치 4350km이다.

그 중 유독 시선이 머물렀던 곳이 쑹화강(松花江)이었다.
아무르강의 최대 지류이며 그 발원지가 백두산이다.
만주벌판을 장장 1900km 흘러 아무르강과 합류한다고 했다.

‘아무르강’이란 단어를 접하고 마음이 설렜던 이유였다.
백두산의 물과 하나 된 아무르강, 가서 보고 싶었다.

이번 ‘평화오디세이 2016’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가 하바롭스크였다.
5박 6일의 일정 중 닷새째에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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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었다.
가이드의 첫마디가 “유람선을 탈 수 있을지 장담 못 한다”는 말이었다.
비가 오면 유람선이 출항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 말에 온몸에 기운이 쏙 빠졌다.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종일 비 예보였다.

하릴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데 유람선을 탈 수 있다는 통보가 왔다.
비가 오기 전에 유람선을 탈 수 있게끔 그사이 일정을 조율한 게다.
잿빛 구름 낀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나마도 고맙게 여겨졌다.

유람선을 타고 아무르강에 들어섰다.
거슬러 오르는 물길, 물색이 탁했다.
희뿌연 안개마저 아쉬움을 더했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아무르강을 거슬러 올랐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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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오전부터 귀국 비행기 탑승 전까지 세미나가 예정되어 있었다.
혹시나 하여 세미나 전에 강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 갔다.
전날보다 시야는 말끔해졌지만 찌푸린 날씨는 여전했다.
아쉬워도 여기서 작별을 고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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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의 세미나인 만큼 열띤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두어 시간을 넘긴 후에야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바깥으로 나왔다.
찌푸렸던 하늘이 어느새 파란 하늘로 변해 있었다.
파란 하늘빛으로 물들었을 아무르강의 이미지가 머리에 맴돌았다.
그 사진을 반드시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골어로 ‘평화’라는 뜻을 가진 아무르강, 흑 빛보다는 푸른 빛이 메시지에 어울릴 것이다.

뒷일을 후배에게 부탁하고 무작정 유람선 선착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유람선 매표원이 배를 탈 수 없다고 했다.
손님이 없어 오후에나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었다.

십여 분 후, 매표원이 큰소리로 나를 부르며 손짓을 했다.
선착장으로 올라오라는 신호였다.
유람선을 탈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에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십여 분의 기다림이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행운을 불러다 준 게다.
배를 타니 두 가족의 러시아 승객이 있었다.
그들이 준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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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중간에 십여 척의 원목 수송선이 정박 중이었다.
배마다 엄청난 양의 원목을 싣고 있었다.
“저것이 러시아의 자원입니다. 원목뿐만 아니라 엄청난 자원이 이 물길을 통해 운반됩니다.”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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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강 철교에 당도했다.
가이드는 이를 두고 ‘아무르의 기적’이라고 했다.
위층엔 차가 다니고 가운데 층엔 화물 열차가 다니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다니는 철길이라고 했다.
예서 유람선이 뱃길을 돌렸다.

서둘러 세미나장으로 돌아왔다.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세미나가 이어지고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부회장의 순서였다.
“아무르강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합수 지점이라 바다처럼 넓었습니다. 그 장관을 보며 갈등이 불가피한 ‘흡수 통일’ 대신 ‘합수 통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 적었다.
‘흡수가 아닌 합수’ 란 말이 가슴을 쳤기 때문이었다.
TV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몽골 고원과 만주 벌판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흘러와 합수된 아무르강, 그것이 보고 싶었다.

강에 들어서는 볼 수 없었지만 하늘에서는 그것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항 발권 창구에 요청을 했다.
가능하면 비행기의 왼쪽 창가 좌석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발권 창구 직원이 창가 좌석이 아예 없다고 했다.
장비를 정리하느라 늦은 탓이었다.
혹시나 하여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며 재차 간곡히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비상구의 가운데 좌석을 줬다.
창가 좌석에 앉은 사람과 교환하기가 쉬울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마침 배당 받은 좌석 다음 줄 왼쪽 창가 좌석에 앉은 이가 회사 선배였다.
원했던 딱 그 자리였다.
바로 자리를 바꾸었다.
카메라를 준비하고 이륙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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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륙을 하자마자 하바롭스크 시내와 아무르강이 시야에 들어왔다.
뱃길을 돌렸던 아무르강 철교도 보였다.
배를 타고 서는 보지 못했던 물 줄기들이 펼쳐졌다.
몽골, 중국에서 흘러와 합수된 그 아무르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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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방향을 서쪽으로 틀었다.
중국 방향이었다.
습지에 실핏줄 같은 물줄기 들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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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합수의 강, 아무르가 생명을 나누어 주는 듯했다.
‘동아시아의 젖줄’, ‘생태계의 보고’라는 말이 실감났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바에 의하면 몽고, 중국, 러시아에 걸쳐 백 사십여 민족이 기대어 산다고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뭇 생명의 젖줄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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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얼마나 찍었는지 어디쯤인지 가늠할 겨를도 없었다.
비행기는 서서히 고도를 높여 구름과 나란히 했다.
구름 아래 어렴풋한 강줄기, 그 강에 기댄 도시와 마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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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 도달했다.
반달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분명 저 구름 아래도 강이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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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지나니 다시 강이 펼쳐졌다.
습지와 논이 보였다.
이륙 후 5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55분을 날아왔는데도 여전히 강줄기는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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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운행 정보를 살폈다.
하얼빈 인근 상공이었다.
그렇다면 아래에 보이는 저 강은 쑹화강임에 틀림없었다.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아무르강으로 흘러가는 바로 쑹화강이었다.
저 멀리 하얼빈 시내가 보였다.
연해주 크라스키노에서 보았던 안중근 의사의 단지 동맹비가 떠올랐다.
하얼빈과 연해주는 물줄기로 이어져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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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왼쪽 창가 좌석을 고집했던 이유는 이것을 보기 위한 기대 때문이었다.
하바롭스크에서 동해로 바로 내려가지 못하고 중국을 거쳐 서해로 돌아오는 비행기,
그렇다면 왼쪽이 한반도일 것이다.
눈에 뵈지는 않겠지만 왼쪽 어딘가에 백두산이 있을 터이다.
백두산에서 비롯되어 1900km를 흘러 아무르강으로 ‘흡수가 아닌 합수’로 나가가는 그 물줄기를 보고 싶었던 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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