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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하드고어한 오후 한 시 #5. 눈 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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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동창생 박상구가 회사를 그만둔 것이 작년 말이었다. 상구로 말하면 학창시절 내내 상위의 성적을 유지했으며, 번듯한 대학을 나왔고, 높은 토플 점수에, 용모까지 준수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였다.

씨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길을 걸어갈 확률이 높은, 슬쩍 상류층에 끼워 넣는다고 해도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는 그런 아이였다. 흠이라면 남들과 어울리는 데 소질이 없다고나 할까, 집안에 틀어박혀 웹툰을 보거나 인터넷 플래시 게임을 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즐거움인 친구였다.

하지만 놀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해나감에 있어 매우 치명적이었으니 그로 인해 상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부서장의 눈 밖에 났으며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게 말이 돼?”
 
“세상이 그렇더라구. 노래방 가서 분위기 못 맞추는 인간이 어떻게 바이어 기분은 맞추겠냐는 거지.”

 
씨는 그의 불운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하지? 나도 못 노는데.”
 
“그러니 너도 위험하다는 거야.”

 
상구는 자기 일처럼 씨를 걱정해주었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지내던 상구는 숲속 정신병원에 일자리를 구함으로써 재기에 성공했다. 말이 재기지 시급 4천 원의 저렴한 알바자리였다.
 
그는 주로 입원환자들에게 볶음밥을 배식하는 일을 했는데 하루 세 번 C 병동에 가는 게 큰 문제였다. 숲속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처박힌 C 병동에는 중증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처음 배식구를 열고 그들에게 밥을 들이밀었을 때, 상구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포악한 짐승들이 으르렁거리며 밥을 빼앗아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이 밖을 두리번대더라는 것이다. 정말이지 말썽 따위는 모를 것처럼 생긴 눈이었다. 그러나 치료시간이 되어 그들을 풀어주었을 때, 상구는 한 마리 토끼가 야수로 돌변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길길이 날뛰는 것도 모자라 닥치는 대로 아무 팔이나 물어뜯고 매달렸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행동만은 너무 난폭하여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두툼한 토시를 끼지 않고는 누구도 그들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에 오래 붙어 있는 직원이 없으며 병원에서는 늘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꼭 자신에게 오라는 말 같아 씨는 기분이 나빴다.
 
‘이봐, 친구! 그런 곳에서 일할 수는 없어.’
 
세면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씨는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나는 남들처럼 살 거야. 격리 환자들에게 볶음밥 따위를 배식하며 살지는 않을 거라고.

씨에게는 3년째 사귀어 온 여자가 있었다. 갈수록 변덕이 심해지고 짜증이 느는 것이 더 이상 청혼을 미룰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씨의 소망은 매우 소박했는데 그저 남들처럼 결혼해서, 남들처럼 아들딸 적당히 섞어 낳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말이 쉬워 평범이지, 신이 나 괴물처럼 극항의 존재들만 희귀한 세상이 아니었다. 유사 이래 계층 간 격차가 가장 극심하다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로선 평범함이라는 단어마저 이상이 되어버린 형편이었다. 이런 마당에 평범함은 관두고 그저 사람 흉내나 내면서 사는 게 수였다.

그러려면 고정된 일터가 필요했다. 터무니없이 월급이 적다고 해도, 직원이 여남은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직장만큼은 가지고 있어야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을 자격이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전 전무는 전 직원의 생사여탈권을 쥔 존재로서 씨가 첫 단추를 잘 꿰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다행히 전 전무는 씨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그게 다 눈쇼 덕이었다. 어떤 재주도 없는 그로선 눈쇼만이 희망이었다.

눈쇼를 생각하니 평소 이상하게만 보이던 커다란 눈이 조금은 매력적으로 비쳐졌다. 억지로 우기면, 선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아이의 눈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씨는 워밍업 삼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가벼운 통증이 시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들었다. 통증이 이토록 기분 좋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관건은 아이템이었다. 기존의 묘기로는 버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못을 박는 데 쓰는 둔중한 철물도 급변하는 시장의 요구에 발맞추지 않고는 도태를 피할 수 없지 않은가.

씨가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세운 공로가 송곳의 손잡이를 바꾸도록 건의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누구도 송곳의 디자인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송곳이 뭐 다 그렇지, 하는 태도랄까.

하지만 송곳이라는 공구는 구멍이 뚫릴 때까지 들입다 파야 한다는 특징이 있어 다른 공구에 비해 오래 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손에 착 붙는 손잡이야말로 필수라는 것이 씨의 생각이었다.

그립감이 좋으면 좋을수록 흔들림이 방지되어 기능이 향상되는 것이다. 다만 그립감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제품이 두꺼워지고 튀어나오는 부분이 생겨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인데 송곳이 휴대폰도 아니고 손에 들고 다니거나 허리에 차고 다닐 일이 있을 리 없으니, 회사 측에서는 씨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송곳의 판매량은 급신장했으며 씨의 입지도 그만큼 올라가게 되었다.

일개 송곳이 그러할진대 회식의 흥을 돋우는 눈쇼의 경우 기술력에 따른 반응도가 훨씬 직접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는 일이 관건이었다. 씨는 눈쇼에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기로 하고 효율적인 시간관리에 들어갔다.
 
먼저 회비나 가져다 바칠 뿐 섞이지 못하고 겉돌던 동창회부터 발길을 끊었다. 동창회라는 게 그렇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얼굴을 내밀지만 근무지의 지명도라던가 연봉 액수가 거론되면서 슬며시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직업이나 연봉의 보잘것없음에 관계없이 꿋꿋이 참석하는 부류는 둘이었다. 잘 나가는 친구를 상대로 보험이나 펀드, 차 외판이 목적인 친구, 그게 아니라면 동창회 말고는 갈 데가 없는 외로운 인생들. 씨는 후자에 속했다.

하지만 곧 회사 조직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될 터이니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릴 필요가 없었다. 눈쇼를 생각하면 하늘에서 구원의 로프가 내려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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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쇼 대부분이 그렇듯 눈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축소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기본 묘기라 할 수 있는 ‘눈동자 모으기’의 경우,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발휘해야 할 집중력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씨 역시 대학을 졸업할 즈음 남들처럼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외국어능력시험에 도전하는 등 나름 열심을 냈다. 그 기세를 몰아쳐 계속 취업에 몰두했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 와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계기로 인해 소설을 쓴답시고 모든 것을 접고 절간에 들어갔던 것이다. 한 겨울 내내 절간에 처박혀 있는 것도 모자라 속세로 내려와서는 여기저기 손을 벌려 대학원을 또 몇 학기 다녔다.

이러저러한 모색 끝에 씨가 얻은 결론은,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막심한 후회 속에서 씨는 다시금 취업에 도전하였고 셀 수 없는 낙방 끝에 지금의 직장에 이른 것이다. 어째서 올곧게 취업에만 집중하지 않았는지 자기 발등이라도 내리찍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집중력을 발휘했다면 지금쯤 ‘보쉬’의 일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 묘기인 ‘눈알 굴리기’의 경우, 직장생활에 있어 민첩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조 팀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전 전무가 무엇을 바라는지, 회사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파악한 뒤 즉각 실행에 옮기는 일이 필요했다.

조 팀장은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을 좋아했고, 전 전무도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러므로 회사는 그에게 고도의 민첩성을 요구하고 있었다.

마지막 묘기인 ‘쥐불놀이’의 경우, 다재다능한 인간형을 대우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은유였다. 업무에 충실한 것만 갖고는 부족했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를 잘해야 하고, 사내 체육대회가 열리면 체육을 잘해야 하고, 사내 등산대회에서는 등산에 재능을 보여야 했다.

그뿐인가. 풍요로운 대화를 위해 시사상식에 정통해야 하고, 정치, 경제, 영화 심지어 TV 드라마와 개그 오락 프로그램까지 꿰고 있어야 했다.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과 자주 언급되는 유행어는 반드시 알아야 대화에 낄 수 있다.

물색 모르고 그게 누구냐,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 경우, 트렌드를 따라 가지 못하는 구시대 인물로 낙인찍히기 십상인 것이다. 전문성은 깊게, 교양은 다방면으로! 이것이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최고의 인물상이었다.
 
씨가 그날 선보인 눈쇼는 두 개의 안구를 각기 바깥으로 잡아당기는 묘기로서 그때까지 씨 자신도 시원하게 성공시켜보지 못한 고난이도 아이템이었다.

인간에게 달려있는 두 개의 눈동자는 같은 곳을 동시에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현상은 사물의 형체를 분명하게 파악함과 동시에 거리를 정확하게 가늠함으로써 닥쳐올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소용된다. 이런 본능을 해체시킨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니만큼 이번 눈쇼는 성공시키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외부의 위험에 대비하고자 설계된 인간의 신체는 자손 번식의 본능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기도 하는데 그것을 이용한 것이 ‘눈동자 벌리기’ 묘기였다. 그러니까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두 여자가, 옷을 거의 안 입은 상태로 양옆에 서 있다고 상상하면서 눈동자를 서서히 벌리면, 비교적 수월하게 눈쇼가 완성되는 것이다.
 
씨가 새로운 눈쇼를 끝냈을 때, 장내는 막 하늘로 비상하려는 어린 새의 날숨처럼 조심스럽고 미세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씨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기다렸다는 듯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탁자를 두드리며 환호했고 휘파람 소리가 날아다녔으며 귀가 먹먹할 만큼의 함성도 터졌다. 조금 과장해서 야마하 스테이지 커스텀 백 대가 동시에 울리는 것과 맞먹는 수준의 데시벨이었다.

쇼를 관람하던 전 전무는 급기야 의자에서 굴러떨어졌고, 몸을 뒤집으며 눈물을 흘렸다.
 
“자네, 자네, 정말······.”
 
호의 가득한 관중을 마주하는 씨의 가슴속으로도 따스한 물기가 차올랐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이런 시시한 장기로도 저를 주목해주는군요. 세상이 한없이 너그럽게 느껴졌다. 이런 기분 처음이었다.
 
삶이 쇼가 되게 하라! 19세기 아방가르드의 강령이 씨의 삶을 점령하게 된 것도 다 그날 눈쇼가 불러일으킨 뜨거운 반응 때문이었다.

씨는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밥 먹는 시간을 쪼개 연습에 몰두했다. 더불어 여자친구 만나는 횟수도 줄였다. 이렇게 뜸하게 만나도 되는 걸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게 다 결혼을 위한 것이고 보면 그녀 쪽에서도 이해해주는 것이 마땅하게 여겨졌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씨의 몸은 말라갔고 눈은 점점 튀어나오게 되었다. 고된 나날이었지만 희망을 가지니 하루하루가 박진감 넘치게 흘러갔다. 가슴 저 깊은 곳에 7기통짜리 야마하 스테이지 커스텀이 들어 있어, 옮기는 걸음걸음 박자를 울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씨는 연습에 매진했고 매일 아침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사실 연습 도중에 거울을 볼 필요는 없었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씨가 눈동자를 굴리는 순간 거울도 세상과 함께 빙글빙글 돌기 때문이었다. 거울이 빙글빙글 돌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씨는 연습 내내 심한 어지럼증을 겪었다. 어지럼이 지나쳐 나중에는 속까지 울렁거렸다.
 
맹연습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침, 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까무러칠 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렇게 끔찍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눈이 피에 푹 절어 있었다. 부어오른 것으로도 모자라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던 것이다.

‘피나는 연습’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정말 실핏줄이 터질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외계 생물 같은 외모가 아닌가. 피칠갑이 된 데다 튀어나올 듯 부어오른 눈으로는 도무지 인간 사회에 섞일 수가 없는 것이다. 씨는 눈병을 핑계로 병가를 냈다.

정말 회사에 안 가도 되는 걸까. 결근 첫날에는, 학교를 처음 결석하는 아이처럼 마음이 불안했지만 이게 다 회사에 잘 다니기 위한 휴식이라고 생각하니 이튿날에는 집에 있는 것도 견딜 만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사흘을 쉰 뒤 씨는 회사에 출근했다.
 
그날 씨는 사장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처음으로 봤다. 정확한 나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외모로 판단하건대 씨보다 열 살은 밑으로 보였다. 피부가 희고 윤곽이 고운 것이 태생적으로 귀족이었다.

다만 흰자위에 털실오라기 같은 핏발이 드문드문 보이고 턱 주변으로 수염이 까칠하게 돋아, 밤새워 놀다 그냥 회사로 출근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갈 데가 없었을 리는 만무하고, 너무 취해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도. 어쩌면 소설을 포기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던 씨처럼 사장도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무슨 바람이 불어 회사에 나온 거야?

수군거리는 소리에 아랑곳없이 사장은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서류를 검토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는 모르지만 전 전무는 아들 뻘 되는 사장에게 깍듯했고 퇴근 무렵에는 사장의 출근을 환영하는 의미로 회식을 주선했다. 사장은 쾌히 승낙했고 2차 노래방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전 전무가 씨를 불러 세웠다.
 
“사장님, 이 친구 하는 것 좀 보겠습니까? 되게 신기합니다. 이럴 게 아니라 자네 저 것 좀 써 보지.”
 
전 전무가 벽에 걸린 모자를 가리켰다. 소품으로 가발이나 모자 따위를 준비해두는 노래방이 있다더니 그런 곳인 모양이었다. 씨는 그때까지 피에로 모자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3류는 쇼를 창조하고, 1류는 쇼를 구경한다던가.

씨는 자신이 저자거리의 광대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생 이런 짓이나 하면서 살 것 같은 예감이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욕설 몇 마디를 던지고 뛰쳐나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눈쇼를 하는 동안은 떨려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말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짓도 불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위하면서 씨는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썼고 조 팀장이 집어주는 반짝이 양복을 걸쳤다. 사장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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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1969년 경기 부천 출생.
· 인천대 국문학과, 한신대 문예창작 대학원 졸업.
· 2010년 전남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발표한 소설로 <예술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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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