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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닮은꼴 고수 박인비·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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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박인비 선수(왼쪽)와 신산으로 불리는 이창호 9단은 닮은꼴 고수다.

박인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 골프여왕에 올랐다. 시종여일한 포커페이스와 정확도 높은 퍼팅 등 박인비 선수의 승부자세와 스타일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박인비 선수를 보면 바둑계의 전설적인 고수 이창호 9단이 생각난다.

평정심, 마무리 기술, 끊임없는 학구열 비슷

둘 다 ‘돌부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박인비와 이창호의 닮은 점을 살펴보고 이들의 기술이나 자세가 비즈니스에 던져주는 교훈을 알아보기로 하자.

무서운 부동심: 이번에 올림픽 중계방송을 본 사람들은 모두 느꼈을 것이다. 박인비 선수는 다른 여자 골프선수들에 비해 뭔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아마도 표정일 것이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희한하게도 박인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사실 얼굴만 봐도 샷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

좋은 샷을 했을 때는 얼굴에 미소가 어리지만 실수를 했을 때는 표정이 어두워진다. 어려운 퍼팅이 들어갔을 때는 대부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쥐는 세리머니를 한다. 그러나 박인비에게는 아무런 표정도 모션도 없었다. 마치 돌부처와 같은 표정이었다.

이창호 9단도 소년 시절부터 이러한 무표정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이창호에게는 ‘부동심’이나 ‘포커페이스’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나중에는 ‘돌부처’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 시 주석은 접견장에 중국 고수 창하오 9단을 데리고 와 “우리가 드디어 돌부처를 넘어섰다”고 자랑했다. 이창호에게 번번이 패하던 창하오가 와신상담 끝에 마침내 이창호를 꺾었다는 뜻이다.

돌부처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는 이 자세에 많은 고수들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승부를 할 때 상대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 사실 매우 답답하다. 상대방이 희비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판세를 판단하기도 하고, 전략을 결정짓는 단서로 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가 불리하다고 비관 무드에 빠져 있다면 여세를 몰아 결정타를 먹이는 작전을 쓴다. 그러나 이창호나 박인비 모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상대는 승부의 감을 잡기가 어렵다. 이 바람에 리듬을 타지 못해 페이스 조절을 잘 못하는 경우도 없잖아 있다. 또한 돌부처 스타일은 실수가 많이 나오지 않는 특징이 있다.

실수를 해도 동요하지 않으니 멘탈이 붕괴될 일이 없다. 박인비 선수는 볼이 해저드로 들어가 보기를 기록해도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승부를 하다 보면 이럴 때도 있는 법이지 하는 자세였다. 많은 경우 선수들은 자신에게 화가 나 무너진다. 자신의 실수에 자책하다가 제2의 실수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바둑격언에는 ‘악수는 악수를 부른다’라는 말이 있다. 악수를 두고 나서 기분이 나빠져 또 다른 악수를 두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감정 동요가 없는 이창호와 박인비 같은 타입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정교한 퍼팅·끝내기: 기술적인 면에서 볼 때 박인비 선수의 최대 강점은 정확한 퍼팅이다. ‘컴퓨터 퍼팅’이란 말을 들을 만큼 정확한 퍼팅이 다른 선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최종 라운드에서 박인비가 어려운 롱퍼팅을 넣었을 때 선수들은 물론 관중도 깜짝 놀랐다. 그 순간 세계 1위 리디아고도 맥이 풀렸다. 저런 것을 넣는다면 이미 승부의 흐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창호도 박인비처럼 정교한 마무리가 일품이었다. 골프의 퍼팅은 흔히 바둑의 끝내기에 비유된다. 이창호는 정밀한 계산을 앞세운 끝내기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 ‘신산(神算)’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릴 정도였다.

골프로 치면 이창호 9단은 퍼팅을 매우 정확하게 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미세한 계가바둑이 되면 상대방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패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바둑의 끝내기 모양을 하나 보기로 하자. 그림 위쪽의 모양은 흑의 집모양이 거의 결정된 상태다. 여기서 백A에 두면 흑B로 받아 이곳 흑집은 10집이 난다. 그러나 정교한 끝내기 기술을 발휘하면 아래쪽의 백1로 두는 수가 있다.

이에는 흑2에서 8까지 받아줄 수밖에 없다. 이 결과는 흑이 2집 밖에 나지 않은 꼴이다. 끝내기 기술에 따라 위쪽의 단순한 진행과 무려 8집 차이가 난다.

이것은 이창호 9단이 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창호는 이와 비슷한 끝내기 장면에서 정교한 기술을 발휘해 마무리를 기막히게 잘 처리하곤 했다. 이창호의 끝내기 솜씨에 막판 반집패로 눈물을 흘린 프로기사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이창호 9단은 특별하게 끝내기에 능해 한국의 바둑 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이창호 이전까지 조훈현·서봉수 등 고수들이 꽤 많았지만 끝내기 분야에는 대부분 약했다. 골프에서 드라이버나 아이언 연습은 많이 하면서도 퍼팅 연습은 잘 하지 않듯이, 바둑에서도 포석이나 정석 같은 분야는 많이 배우면서 끝내기는 잘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창호가 끝내기로 세계를 제패한 후 끝내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이번에 박인비의 정교한 퍼팅을 보며 다른 라이벌 선수들도 이것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아마도 퍼팅의 귀신 박인비 덕분에 퍼팅 훈련에 중점을 두는 골프선수들이 많아질 것이다.

끊임없는 훈련: 이창호와 박인비는 고수이면서도 끊임없이 훈련을 한다는 점도 닮았다. 박인비 선수는 올림픽을 앞두고 손가락 부상으로 출전 여부를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악조건에도 박인비는 계속 트레이닝을 하며 기량을 정비했다.

이런 훈련 덕분에 박인비 선수는 자신의 기량이 더 충실해졌음을 느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프로선수들은 박인비 선수와 같이 시합에 대비해 항상 칼을 간다. 그런데 이런 훈련이나 공부에서 고수들이 보통의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한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다른 분야라면 전문가의 경지에 들어갔을 경우 프로 기사나 골프선수처럼 훈련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갈고 닦은 실력으로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둑 분야에서는 정상급 고수들도 꾸준히 실력을 닦는다. 이창호 9단은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던 시절에도 항상 연구생과 같은 자세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박인비 선수와 바둑계 최고수로 군림한 이창호 9단의 닮은 점을 알아보았다. 세계를 정복한 강자들에게는 뭔가 배울 만한 점이 많다. 분야는 다르지만 기업 경영에서도 이들의 성공 노하우를 벤치마킹하면 좋을 것 같다.

첫째, 매출이 약간 오르거나 내린다고 감정을 너무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불경기가 있으면 호경기가 있는 법이니 일희일비하지 않고 안정감 있게 운영해 갈 필요가 있다. 경영자가 박인비·이창호처럼 부동심으로 경영을 한다면 조직원들은 든든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둘째, 겉모양이 화려한 제품보다 정교하고 정밀한 기술을 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제조업이라면 불량품 제로가 될 정도로 정확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서비스업에서도 사소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처리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고객에게 자랑할 만한 정교한 기술을 한 가지는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셋째, 업계의 선두주자라고 자만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기술과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고수라고 자만해 공부를 중단한 순간 그 조직은 추락의 위험성을 안게 된다. 고수일수록 더욱 열심히 공부해 금메달을 따는 바둑계와 골프계 고수의 자세를 본받으면 좋을 것 같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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