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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oo으로 배웠네-시즌2] 상실감을 달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공효진이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공유에게 태블릿 PC를 내밀며 묻는다.
“영어 좀 하죠? 이거 읽어봐요.”
공유가 ‘SSG’를 한번 쓱 보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한다.
“쓱.”
공효진이 진지하게 말한다.
“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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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SSG) 쇼핑몰 광고

2016년 상반기에 나온 신세계 쇼핑몰 광고다. 한눈에 ‘참 잘 만들었다’ 싶었다. 이어서 나온 시리즈 광고도 공효진과 공유가 나누는 대화 속에 등장하는 단어를 SSG와 연결시키는 포맷인데 꽤 감각적이다. 예를 들어 ‘선수군’ ‘상실감’ ‘세시간’ 등 초성이 ‘ㅅㅅㄱ’로 돼 있는 단어를 SSG와 이어지게 하는 식이다.

자칫 잘못 만들면 유치할 수 있는 포맷인데 세련되게 느껴지는 건 영상미 덕분인 것 같다. 깔끔하게 절제된 구도와 색감이 광고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잡아주고 있다. 이 광고의 등장 인물과 배경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그림을 오마주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쓸쓸하다. 그렇다고 그가 절절하게 고독과 상실감을 화폭에 드러낸 건 아니다. 1940~50년대 미국 도시민의 일상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한 그의 그림에는 알 수 없는 묘한 쓸쓸함이 베어 있다. 작품 속 장소들은 커다랗고 텅 비어 있는데, 그마저 자연광과 인공광의 대조로 더욱 황량하고 삭막해 보인다. 그림에는 사람도더러 등장하는데 대부분 초점을 잃고 어디론가 헤매는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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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판매식 식당(Automat), 1927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과거가 있다. 바로 나의 대학교 새내기 시절이다. 나는 지방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 때 처음 상경했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첨엔 간섭할 사람 없는, 마냥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지긋지긋했던 엄마의 잔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혼자라 완벽히 행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이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자취방에 우두커니 앉아있으면 정신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때부턴 무작정 학교에 나가 죽치고 시간을 보냈다. 누구라도 만나 말을 섞어야 정신적인 공허함이 채워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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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Hotel Room), 1931년

외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선수 군을 만났다. 한눈에 반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나는 그를 보자마자 사귀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쉽게 우린 만나기 시작했고, 사귄 지 한 달쯤 되었을까 그는 다른 남자 동기를 통해 이별을 알려왔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서 한가하게 연애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아침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상투적이고 진부한 사유였다.

납득할 수 없는 이별이었지만, 대학 생활은 그럭저럭 이어졌다. 나에겐 대학 친구들이 있으니, 그들과 함께 선수 군을 욕하며 우애를 다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선수 군을 안주 삼아, 이별을 조미료 삼아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대학 생활을 연명했다. 친구는 대학 생활에서 나에게 남은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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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1942년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선수 군과 이별하고 한 달이나 흘렀을까, 캠퍼스에서 그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는 내 친구가 함께 있었다. 둘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다. 서로 피할 수 없을 만큼 거리가 좁혀지자 선수 군의 눈동자는 나를 외면했고, 내 친구는 나를 보며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내가 그 인사를 받았던가, 받지 않았던가. 황망히 자리를 피했던가, 도도하게 지나쳤던가, 기분 나쁘게 무시해버렸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마치 술에 잔뜩 취해 필름이 중간 중간 끊긴 것처럼, 그날은 장면 장면의 기억이 스냅 사진처럼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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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방(Room in New York), 1932년

더 이상 학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선수 군은 둘째치고, 친구를 다시 만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쿨하게 넘겨야 할까, 보란 듯이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내가 멀쩡하다는 걸 보여줘야 할까, 사정 뻔히 아는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며 한바탕 푸닥거리를 해야하는 걸까. 아무것도 자신이 없었다.

한동안 자취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철저하게 혼자였다. 의지할 친구도, 함께할 사랑도, 늘 곁에 있던 가족도 없었다. 나는 다시 자취방에 고립됐고, 유일하게 세상으로 향한 창문 앞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만 바라봤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아침해(Morning Sun)’에 등장하는 여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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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해(Morning Sun), 1952년

결국, 난 한 학기를 휴학했다. 해가 바뀌고 다시 캠퍼스를 밟았다. 신입생으로 북적이는 학교는 모든 게 낯설었다. 좌표를 잃어버린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학 생활은 공허했고, 쓸쓸했으며, 여전히 외로웠다. 상실감 기자 SSG@joongang.co.k**r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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