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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1975년 마오쩌둥 만나 한반도 무력 통일 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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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건배하는 마오쩌둥 전 주석. [중앙포토]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75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회담하면서 한반도 무력통일에 대한 의욕을 드러낸 구체적인 기록이 발견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일 보도했다. 신문은 북·중 관계 전문가인 선즈화(沈志華) 중국 화둥(華東)사범대 교수가 관련 자료를 입수했으며 당시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던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그 해 4월 18일 중국 최고 지도부의 집단 거주지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마오의 집에서 만났다. 당시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패배로 끝나가고 있었고 북·중 회담 약 2주 후에 사이공이 함락됐다. 캄보디아에서는 회담 전날 극단적인 공산주의를 내세운 크메르루주 반군 지도자 폴 포트가 친미 정권을 쓰러뜨렸다. 회담 기록을 정밀 조사한 선즈화 교수에 따르면 김일성은 “그들(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와 같은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한반도에서도 같은 형태로 무력통일을 시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오 주석에게 전하려고 했다.

선 교수는 “김 주석이 ‘우리의 공통 승리’라는 표현을 쓰며 화제를 무력통일로 옮기려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오는 말을 돌렸다. 회담 막판엔 “정치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며 약 30분에 걸친 김일성과의 대화를 끝냈다. 선 교수는 “회담에서 김 주석이 제2차 한국전쟁의 발동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을 방문하기 전에 조선노동당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한 것을 보면 실제로 (무력통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마오 주석이 김일성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관련 발언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1975년 북·중 회담에서 중국 측이 무력에 의한 한반도 남북통일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관측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명확하지 않았다”며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이어 “마오가 회담에서 남침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김일성은 미·중 접근 후엔 중국도 중요한 때 결국 북한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란 걸 통감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이니치신문은 북한이 중국을 의지하지 않고 핵 개발을 추진하는 등 자주독립 노선을 택한 것도 당시 회담이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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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