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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마을버스 677일 만의 귀환, 두 번째 이야기

 

▶길에서 만난 인연들
제가 무슨 복을 타고 났는지 셀 수 없이 사람들의 은혜를 입었어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는 거예요. 물론 제 미모도 한몫 톡톡히 했지요. 가는데 마다 인기 만점이니까요. 칠레 깔따에서는 경찰이 숙소까지 에스코트를 해주었고요, 볼리비아에서는 마르코와 노엘라 부녀가 잠자리를 내줬어요. 볼리비아 우유니에서는 길을 잃어 사막으로 들어갔어요. 기름은 떨어지고, 해는 지고, 모래폭풍을 불고, 유목민 집에서도 쫓겨나고, 밤중에 도로공사 노동자들 만나지 못했으면 어휴 생각하기도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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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사막

독일에서는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파비안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갔는데, 집 앞에서 모든 동력장치가 나갔어요. 그런데 세상에나 이 친구가 메르세데스벤츠 엔지니어라네요. 로마에서는 12월 30일 신년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님을 먼발치에서 보는 행운을 얻었고요. 피렌체에서는 길가에 서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타더니 ‘아저씨 가요’를 외치대요. 그러더니 ‘어? 교통카드 어디다 대는 거죠?’ 이래요. 조금 있다가 한 아가씨가 오더니 ‘엄마 여기서 뭐해?’
그분이 순간 착각했던 모양인데, 모두 낄낄 웃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는 아부지 드시라고 라면과 햇반을 제 사이드미러에 걸어두고 간 분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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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이스탄불에서는 아부지가 4년 전에 만났던 제네프를 다시 봤어요. 그때 15살이었는데 몰라보게 자랐더군요. 이란에서는 온 국민이 한국 드라마에 빠진 덕에 가는데 마다 환영이에요. 잠자리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덕분에 보름 머물려다가 보름을 더 있었어요. 몽골에서는 게르 옆에서 잤어요. 평생 가축 돌보며 살아온 부드잡 할아버지에게 뭘 드릴까하다가 김 한 장을 드셔보라고 줬어요. 그런데 이리저리 뒤집어보더니 콧물을 닦는 거예요. 박장대소 했어요. 할아버지가 처음 보는 물건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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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부드잡 할아버지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는 탈이 나 정비소에 갔어요. 말이 통하지 않자 직원이 누군가를 전화로 연결해줬어요. 북한 관리였어요. 그의 통역 덕에 몸을 고쳤죠.

길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이 삼십 명이 넘어요. 때론 길게, 때론 짧게 저를 타고 다녔어요. 페루 와카치나에서는 한복 입은 오빠들을 만났고요, 체 게바라가 혁명을 잊을 뻔 했다는 아름다운 호수 과테말라 아띠뜰란에서는 한국 청년이 운영하는 카페에 가봤어요. 프랑스에서는 자전거로 유럽을 일주하는 학생들을, 카파도키아에서는 역시 자전거로 시베리아와 파미르 고원을 넘어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학생들을 만났어요. 시베리아에서는 마주오던 오토바이들이 방향을 바꿔 따라오더니 저를 막아 세웠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까지 바이크 여행하는 한국청년들인데 저를 알아본 거예요. 미국에서는 한인교회 분들 덕을 많이 봤고요. 독일에서는 이제는 노인이 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만나 뭉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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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SNS로 세상이 연결돼 이 모든 일이 가능해진 거지요.

오권태, 정인수, 임성택(이 오빠는 아부지와 이름이 똑같아요). 뭐니 뭐니 해도 잊지 못할 분들은 잠시라도 아부지와 운전대를 나눠 잡은 이분들이에요. 아부지는 모든 구간을 완주했고 이분들은 구간별로 합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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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택 정인수 임성택


▶못 이룬 꿈 하나
북한을 지나오고 싶었어요. 저 험하고 막막한 땅들을 다 지나왔는데 현실의 벽이 막더군요.
블라디보스토크 영사관에 찾아갔어요. 허락해달라고 했지요. 절대 불가합니다. 영사는 단호하더군요. 두만강 쪽 러시아국경은 일반인이 접근을 못한다고 했어요. 자동차로 가는 길은 없고 유일한 통로는 철로인데 남한사람은 어떤 이유로도 허용이 안 된대요. 북측과 접촉하고 싶다니 난처하고 난감한 표정이더군요. 자국민의 안전부터 생각해야 하니 어쩔 수 없겠지요. 남쪽 사람 납치조가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낙담한 아부지 어깨가 쳐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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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단지 동맹비

해외 일정을 8월 20일 두만강 끝 크라스키노에서 마쳤어요. 이 근처 마을이 안중근 의사와 11명의 동지들이 손가락을 잘라 구국의 마음을 다짐한 곳이에요. 이를 기념한 단지동맹비를 찾아갔어요. 기념비 앞에 늘어선 돌들은 이들을 기리는 의미라고 했어요.

‘내 아들 나이에 이분들은 나라를 구하겠다고 피를 바쳤구나’.

아부지는 비석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서 있었어요. 강 건너로 함경북도 선봉군이 보이더군요.

▶우리 아부지가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은수 아부지 임택입니다. 2009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창동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낑낑대며 올라오는 마을버스를 봤습니다. 사람들을 내려주고 다시 정해진 코스를 뺑뺑 돌고, 그러다가 10년 정도 지나면 폐차 하거나 남은 힘이라도 써보라고 다른 나라로 팔려가는 신세의 차였습니다. 오십 줄에 들어선 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 속에 키워오던 생각이 불쑥 솟았습니다. 중고 마을버스를 타고 떠나자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한국은 지금 700만 명의 베이비부머세대가 노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세대보다 훨씬 수가 적은 젊은이들에게 기대어 산다면 재앙이지요. 언론에서는 날마다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며 우리를 압박합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가족을 부양하는데 노후 준비가 어디 쉬운가요. 갈 곳 없는 은퇴자들은 편의점 치킨집 커피숍을 차립니다. 포화된 레드오션에서 파이를 나눠 가지려 합니다. 하지만 잘게 저며진 파이 앞에서 대부분 절망하지요.

저는 나이 들어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리라고 준비해왔습니다. 저는 여행 작가가 될 겁니다. 25년 전 젊을 때부터 꾸어왔던 꿈입니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아니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거든요. 처음 나온 휴대전화를 사면서 뒷자리 번호를 5060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적으나마 돈을 벌면 소외가정과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에게 해외여행을 시켜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여행하며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게 돕고 싶습니다. 이 꿈을 위해 성실히 일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은수와 함께 떠났습니다. 그리고 2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딸이 그랬습니다. “우리 아빠는 포기하지 않고 씨를 뿌리는 농부와 같은 사람이에요”
어쩌면 무모했던 제 시도와 경험이 많은 분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됐으면 합니다.

▶여정을 마치던 날-서울대병원 본관 앞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동해항으로 들어왔어요. 동해를 지나오는데 가랑잎 같은 북한의 목선들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어요. 금방이라도 파도가 삼킬 것 같은 모습이 애처로웠어요. 부산으로 내려가 경부고속도로를 탔어요. 부산과 신의주를 있는 이 도로는 ‘아시안 하이웨이 1번’ 도로예요. 판문점을 지나 다시 달릴 날만 손꼽아 기다려요.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돈 뒤, 저는 30일 오후 넘어가는 해를 왼쪽으로 보며 서울에 들어왔어요. 제가 뺑뺑이 돌던 코스인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아부지는 운전대에서 손을 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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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12번버스와 나란히 선 은수

애걔. 그런데 이게 뭐예요. 뿡짝뿡짝 밴드가 요란하고, 꽃순이 꽃돌이가 늘어서있고, 환영인파가 북적북적한 피날레행사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 보여요. 아 저기 우리를 보고 있는 두 분, 엄마와 오빠네요. 그런데 꽃다발도 안 들고 나왔어요.

아부지는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었다는 엄마를 꼭 안아 주고, 아들을 꽉 안아주고, 저한테 뽀뽀한번 해주시고, 하하호호 웃고 그게 다였어요.

저는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찡한데, 참 진땀나는 식구들이에요.

▶남은 이야기 몇 가지
-은수는 아부지를 못 만날 뻔 했다. 처음에 아부지는 평창동 산동네를 뺑뺑 도는 6번 마을버스를 점찍었는데 중간에 바뀌었다.
-677일 동안 5대륙 48개국 147개 도시를 지났다. 나라가 200개가 넘으니 그래도 세상은 넓다.
-7만km를 달렸다. 은수의 총 주행거리는 55만km쫌 됐겠다.
-은수 모델명: 현대자동차 25인승 E COUNTY DELUXE. 수동기어.
-에어컨은 은행 객장수준으로 빵빵하다. 캠핑카로 세계일주하는 분이 와서 자고 가기도 했다. 난방은 안 됨.
-1종 보통면허로 은수를 운전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아메리카에서 멀쩡히 다니던 아부지가 독일에서 스위스 국경으로 넘어올 때 걸리고서야 1종 대형면허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스위스가 EU국가가 아니라 국경 통과 절차가 있었던 것. 면허 따러 한국에 들어와 초인적인 힘으로 5일 만에 성공했다.
-75마 1347 한글번호판을 달고 다니다보니 불법주차 딱지를 떼일 때 별일이 다 있었다.
후진국에서는 경찰이 현장서 돈 받아 꿀꺽. 선진국에서는 은행에 가서 해결 한다. 오스트리아에선 단속반이 족쇄를 채웠다. 벌금 내러갔는데 한글 입력이 안 돼 그냥 풀려났다. 하이델베르크에서는 교포분이 은수가 얼마나 유명한 차인지 광고를 해준 덕분에 또 그냥 풀려났다.
-은수는 모두 16번이 고장 났다. 3번은 해외 곳곳의 현대자동차서비스센터에서 점검을 받던 중에 발견했다. 나머지 13번 고장 때는 하나같이 가까운 곳에 정비소가 있었다. 모로코에서는 밤이 오는 산속에서 기어 스틱이 빠져 애먹었는데, 차를 세우고 보니 영업을 마치고 셔터를 내리고 있던 정비소 앞이었다. 속도제한이 없는 독일 아우토반에서 탈이 나 시속 40km로 엉금엉금 휴게소까지 겨우 갔는데, 바로 옆에 선 차가 구세주 한국교포였다.
-전 세계에 거미줄처럼 깔린 현대차서비스센터의 도움이 컸다. 남미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여기에도 에콰도르, 페루,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에 E-카운티 지정정비센터가 있다.
-금호타이어 바퀴를 끼고 달렸다. 펑크 한번 안 나고 완주했다.
-페루 리마, 이탈리아 로마는 이름이 형제지간이다. 이 도시를 기준으로 나라의 북쪽은 치안이 괜찮고, 남쪽은 겁난다는 점도 같다.
- 해발 3880미터 티티카카호에 가니 한국에서 가져온 믹스커피가 기압차 때문에 빵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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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압차로 빵빵해진 커피

-차로 국경 넘을 때는 마약 검사를 조심해야 한다. 마약 밀매자가 몰래 여행자 짐이나 차 어딘가에 마약을 넣고 경찰에 제보한다. 동업자인 경찰의 실적을 올려주기 위한 수법이다. 차량이 표적이 되기 쉽다. 배낭은 덮개를 단단히 덮고 다닐 것. 모르는 사람이 들어달라는 짐은 무조건 노땡큐. 친절을 베풀며 짐을 부탁하는 현지인 특히 노땡큐. 영문도 모르고 억울하게 종신형을 받은 여행객도 있단다. 알바니아에서 마케도니아로 넘어갈 때 세관원이 올라타 ‘이 차에 마약 있지?’하는 데 머리털이 쭈뼛 섰다.
-처음엔 여정을 중국부터 시작하려했다. 그런데 규제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거쳐 갈 성마다 규정이 다르다. 그래도 어찌해보려 했는데 차 값보다 비싼 공탁금을 맡겨놓고 출국 한 뒤 찾아가야 한다. 그것도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기에 포기했다.
-한국말 할 줄 아는 외국인들이 의외로 많다. 은수 몸에다 덕담을 쓰면서 한국어로 쓰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러면 아부지가 그런다. ‘너네들 말로 써야지 우리 딸이 세계 한 바퀴 돈 줄 알지’. 은수 앞에서 밥을 지을 때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참견을 한다. 맛있어요? 많이 먹어요. 맛있었어요? 어떻게 하든지 한국말을 한마디라도 해보려고 열성이다. 이란에서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는데 계산원이 ‘주몽?’ 그랬다. 한국 사람임을 확인하고는 그냥 가라고 했다. 아부지가 이거다 싶어 6군데를 지나며 ‘주몽! 코리아’를 외치니 모두가 공짜로 통과 통과. 진즉에 알았으면 앞서 지난 세 군데서도 써먹었을 텐데. 주몽네 나라 사람이라고 카페에서는 커피를 그냥 주고, 가는 곳마다 사진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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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몸은 외국어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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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km 장정을 마친 은수. 장하다 은수


▶한마디만 더
그런데 저 이제 어떡해요. 골골하며 나가서 팔팔해져서 돌아왔는데 졸지에 백수 됐어요. 직장 하나 알아봐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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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 기자 = newnew9@joongang.co.kr
사진 = 임성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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