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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마을버스 677일 만의 귀환, 첫 번째 이야기

세계일주 마을버스 677일 만의 귀환
 
8월 30일 오후 5시32분, 서울대학교 병원 본관 앞으로 연두색 소형버스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종로12번 마을버스다. 그런데 생김이 심상찮다. 매직펜으로 쓴 문구들이 온몸을 덮었다. 알 수 없는 문자도 수두룩하다. 차 문이 열리고 아저씨 몇이 내렸다. 머리띠 질끈 묶은 이 아저씨들, 포스가 만만찮다. 그을린 얼굴, 다부진 어깨, 굵은 팔뚝이 ‘좀 놀아본’ 동네 형들 같다. 버스에게 슬쩍 물어봤다.

얘, 저 아저씨들 정체가 대체 뭐니?

▶내 이름은 은수
지난 2년 동안 있던 일,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저는 은수랍니다.
 
▶ 추천기사 배탈난 줄 안 18세男, 뱃속에 털로 뒤덮인 태아가···

종로3가역과 서울대 병원을 뺑뺑이 돌던 12번 마을버스였죠. 2005년생이에요. 9년6개월을 달려 폐차를 6개월 앞두고 있었어요. 사람으로 치면 환갑진갑 다 지난 나이지요. 계기판에 찍혀있는 주행거리가 206209예요. 실제는 45만km를 넘게 달렸는데 바늘이 고장 나 그냥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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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계기판

2014년 늦은 봄, 처음 보는 아저씨가 회사를 찾아왔어요. 사장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저를 보고 씩 웃어요. 얼마 뒤 그분이 운전대에 앉더니 ‘은수야’ 하대요. 그러더니 다짜고짜 ‘오늘부터 넌 내 딸이야’ 이러는 거예요. 이분이 임택(56. 본명 임성택)씨예요. 제가 은수교통 소속이고 편한 이름이라 ‘은수’라고 붙였대요. 아저씨 인상이 아버지처럼 푸근했어요. 아빠라고 부르기엔 낯간지럽고, 아버지라고 부르기엔 딱딱하니, 아부지라고 부르면 딱 좋겠더라고요. 그날로 우리 아부지가 됐어요.

며칠 뒤 아부지가 뜬금없이 말했어요. ‘은수야, 우리 세계일주 가자’

아니 동네만 돌다가 똥차 다 된 저에게 다른 나라 여행이라니요, 그것도 세계 한 바퀴라뇨. 처음에는 아부지가 살짝 맛이 갔나했어요. 제 인생이 그렇잖아도 내리막인데 잘못하다간 막장으로 갈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어요.

아부지는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을 달고 다니던 제게 하얀색 75마 1347 번호를 붙여줬어요. 그러고는 이러저러한 개조를 시작했어요. 발전기와 충전기를 달아 전기팬으로 밥 지을 설비를 갖추고, 승객의자를 들어내더니 간이침대를 들이고, 뚝딱뚝딱 며칠을 공사를 했어요. 웬만해지자 여기저기를 다니며 제가 제대로 굴러가나 점검하더군요. 그러더니 어느 날 한마디를 툭 던졌어요. ‘이만하면 됐다.’ 뭐가 됐다는 건지 모르지만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았어요.

아부지가 대체 어떤 분인지 저를 구경하러 오는 분들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오퍼상을 하며 젊을 때부터 이미 세계 40여개 나라를 다녔대요. 그간 꿈꿔온 세계 일주를 위해 사업을 접었대요. 이를 위해 엄청 열심히 일했고 엄마를 꾸준히 설득했고요. 그런데 모험이 어디 쉽나요.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잖아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험악한 세상에 누가 나가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세상에나, 2013년 아부지 생신날 엄마가 행복하게 다녀오라고 오케이를 했다네요.

▶은수의 7만km
2014년 10월 25일 평택 항구에서 저는 페루로 가는 화물선에 올랐어요. 9일 전에 아부지는 제가 달릴 길이 빨갛게 칠해진 세계지도를 유리창에 붙였어요. 먼저 가 있으라고, 아부지도 곧 간다며 제 엉덩이를 툭툭 쳐주셨어요. 풍랑에 흔들리며 태평양을 건넜지요. 어느 날 눈뜨니 저 멀리 안데스산맥의 꼭대기가 보였어요. 51일 만에 페루 리마 까야오항에 도착했어요. 배에서 내리니 세관원들이 ‘이거뭥미’하는 황당한 표정이에요. ‘듣보잡’ 조그만 버스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더라고요. 세계일주하는 마을버스는 처음 만난대요. 며칠 뒤 비행기를 타고 온 아부지와 만났어요. 아부지는 바다를 건너며 여기저기 탈이 난 저를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리마에 있는 현대자동차정비소에서 꼼꼼히 진료를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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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 현대차 정비센터

12월 16일, 아버지와 함께 장정에 올랐어요. 마오쩌둥은 대장정 때 18개의 산맥과 17개의 강을 건너 1만2500km를 주파했지요. 우리가 갈 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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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쿠스코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에쿠아도르 콜롬비아를 달렸어요. 처음 가보는 길이니 저야 뭐 신났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대요. 3일 동안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안데스 산맥을 넘어 마추픽추로 가는데 동행 분들이 고산증으로 다들 쓰러져 정신이 오락가락했어요. 저도 힘이 달려 눈알이 뱅뱅 돌았어요. 연료가 부실하고 워낙 고도가 높으니 아무리 용을 써도 시속 10km가 안 나와요. 여행대장인 아부지도 식은땀을 흘리더군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쉬면서 핸드폰 사진을 무심코 넘기던 아부지가 활짝 웃는 엄마를 보고는 울었어요. 나 원 참 여행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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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타고 건너는 티티카카호

아르헨티나를 지나 칠레로 넘어오면서 다시 안데스를 넘었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가끔씩 마비도 오고요. 사막에 멈춰서 자고, 가다서다 하면서 페루의 정비소까지 기어가서 겨우 기력을 회복했어요. 어떤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 잘 때는 동네 아줌마 아니었으면 벌집이 될 뻔 했어요. 경찰들도 AK소총으로 중무장하고 있는 동네인데 그날 밤 제가 잠자는 담장 밖에서 총격전 벌어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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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은수

에콰도르에서는 아부지와 일행이 맥주 한잔 마시러 나갔다가 스마트폰을 눈뜨고 도둑맞았어요. 동네 사람들한테 너희들 저 사람 알지? 그 도둑에게 100달러 줄 테니 오라고 해, 하니 정말 데리고 왔어요. 교환협상을 하는 중에 하필 경찰차 사이렌이 울리자 그 놈이 튀었어요. 스마트폰은 결국 찾지 못했어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는 밤길 조심하라는 경고를 많이 들어 조심조심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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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중남미에서는 안전도 안전이지만 제 먹을거리인 디젤이 가장 문제였어요.

저는 유로6 기준에 맞춰진 최상급 경유차예요. 연료는 유로4 기준 이상을 써야 하죠. 그런데 중남미의 디젤차는 유로3이에요. 한국의 오래전 차들이 굴러다니는 거죠. 그러니 제 입맛에 맞는 연료를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배탈이 나고 제대로 다닐 수가 없던 거죠.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유로4기준인 코스타리카에 들어가서는 15리터들이 통 12개에다 디젤을 가득 채워서 싣고 다녔어요. 짐칸에 폭탄을 넣고 다닌 셈인데 어쩔 수가 없었지요. 유로5기준인 멕시코에서는 행복했죠.

니카라과를 지나고 온두라스에서는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를 잃어버려서 170달러를 뜯길 뻔했지요. 아부지가 잘 구워삶아서 40달러로 해결했어요. 과테말라에서 멕시코 들어갈 때는 복잡한 절차 때문에 진을 뺐는데 영사가 나서도 해결이 안 되더군요.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했죠. 다시 과테말라로 와서 우여곡절 끝에 겨우 마이애미 가는 페리에 오르며 한숨을 돌렸어요.

중남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어요. 천국과 지옥의 짬뽕인데 겁나고 짜릿짜릿했어요.

7월 16일 마이애미에서 시작한 북미 종단은 쾌적했지요. 본고장 미제 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달렸어요. 유명한 지역 신문 버지니안 파일럿에서는 제 인터뷰 기사를 대문짝하게 실었어요. 8월 6일, 마침내 세계의 심장인 뉴욕, 그것도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섰어요. 브로드웨이,42번가,7번가 셋이 만나는 이곳은 세계 관광객들의 로망이죠. 제 손 좀 잡아보자고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가슴이 벌렁벌렁하대요. 미국에서 부풀었던 가슴을 누르며 저는 독일 가는 배를 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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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독일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같은 유럽 선진국들은 번쩍번쩍했어요.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모로코로 들어가 불타는 사하라 사막도 달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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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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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

이탈리아 로마가 문제였어요. 작년 1월초군요. 밤중에 웬 놈이 제 운전석 창문을 부수더군요. 마침 아부지가 중요한 물건들을 숙소에 가지고 가 피해는 면했지요. 그런데 얼마 뒤엔 무섭게 생긴 애들이 승하차문을 뜯어내서 큰 가방 5개를 들고튀었어요. 잠깐 방심한 틈에 당한 건데 짐 안에는 그간 아부지가 찍어왔던 사진이 모두 들어있었어요. 대범한 척 했지만 아부지는 넋이 나갔지요. 그래도 강한 아부지, 언제 그랬냐는 듯 툭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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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이름도 생소한 나라들을 지나 불가리아에 도착했어요. 여행 종반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어야 했어요. 저도 그렇지만 무쇠 같던 아부지가 글쎄 이즈음에 여행을 계속할 의지가 꺾였거든요. 몹쓸 병 때문이에요. 독일에서 벌레에게 물려 생긴 좁쌀만 한 상처가 온몸으로 퍼졌어요. 별의별 처방을 다 써봤지만 증세가 나빠져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 됐어요. 미련곰탱이같은 아부지, 빨리 처치했으면 됐을 텐데 일정에 쫓겨 다니다가 일을 키운 거죠. 결국 아부지는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신세를 졌어요. 곳곳의 상처들을 꿰매 지금도 흉터가 크게 남았어요. 다시 만난 아부지는 예전처럼 쾌활해져 제가 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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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 아시아 대륙 서쪽 끝 터키로 들어오던 날 기분 참 묘하대요. 갈 길은 먼데 벌써 고향에 들어온 기분이었어요. 푸근한 마음에 동네 잔칫집에 들어가 주민들과 춤추고 놀기도 했어요. 제가 지나오니 이 나라에 쿠데타가 일어났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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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소피아 성당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앞뒤 같아서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아르메니아를 통해 이란으로 들어가려는데 이 나라가 옆에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전쟁 중이래요. 걱정이 돼서 접경지역을 우회하는 산악 길로 접어들었어요. 여기는 본래 큰 차가 다니지 않는 오솔길인 데다 노면마저 폭우로 엉망진창이었어요. 날씨도 좋지 않아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차를 되돌릴 수도 없고 앞의 상황은 알 수 없고 환장하겠더라고요. 아부지가 그렇게 긴장하는 걸 처음 봤어요. 좁고 험한 벼랑길인데다 좌우가 가늠이 안 되니 아부지는 네 바퀴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계산하며 핸들을 조작했어요. 50km 정도 되는 산악 구간을 10시간이 걸려 넘었죠. 볼리비아의 낭떠러지 길과 함께 여기가 전체 일정 중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었지요. 아르메니아에서 사흘은 중남미에서 개고생 한 6개월의 압축판이라 할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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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이란을 지나니 중앙아시아예요.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 우즈베키스탄에 들어가니 주민들이 돈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다발로 가지고 다녀요. 돈값이 껌값이라 그렇대요. 1달러가 6000솜인데 둘이 먹은 밦값이 22만솜 나왔어요. 중앙아시아를 지나던 20여일은 부패의 백화점을 보는듯했어요. 가는데 마다 손을 벌리는데 지긋지긋하더라고요. 카자흐스탄에 들어갈 때는 군인 세관 경찰이 합작해서 뜯어갔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의 엉망도로 1000킬로를 달리며 부서진 완충장치를 운 좋게 발견해 그간의 고생을 갈음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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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

그런데 아부지 넉살이 100단이 넘는 거 있죠. 온갖 군상들을 겪고, 여기저기서 ‘삥’을 숱하게 뜯기며 백전노장이 됐어요. 저 앞에 보이는 경찰이 낌새가 이상하면 비상깜빡이 등을 켜고 먼저 슬슬 그 옆으로 가요. 그러면 대개 경찰들은 저거 뭐지? 하는 표정으로 다가와요. 이때 아부지는 웃는 얼굴로 지도를 내보이며 길을 물어요. 다 아는 길인데도 모른척 하는 거죠. 선제공격을 하면 대개 손을 못 벌리더라고요.

페루에서는 경찰이 전조등을 안 켰느니 뭐니 하면서 세 가지 죄목을 들이대더니 그중 하나만 적용해 120솔을 뜯어갔다. 가련 모드로 변신한 아부지, 밥값이 없어요, 같이 탄 친구 밥값도 없어요, 친구가 덩치가 커서 많이 먹어야 해요, 기름 값도 없어요, 하면서 뜯겼던 돈을 야금야금 돌려받아 결국 50솔만 주고 마무리했어요. 그런데 온두라스에서는 국물도 없더라고요. 지갑 속에 있던 한국 돈 만 원짜리도 빼가던 걸요. 그래도 중남미는 양반이에요. 중앙아시아에서는 외국인이 ‘도시락’으로 보이는지 무조건 잡아 거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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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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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았지만 사실은 좋은 구경이 훨씬 많았어요. 저녁 무렵 안데스산맥의 눈 덮인 고봉들은 한밤에 불을 켠 것처럼 환해요. 바로 옆에는 까마득한 계곡이 흐르지요. 기억에 남는 최고의 장관이에요. 달력에서나 보던 풍경들인 동유럽의 절경들 또한 숨이 멎을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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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두근두근 러시아 땅. 시베리아대평원에 들어서니 바람이 달랐어요. 조국의 냄새가 실린 바람이에요. 바이칼호에서 한숨 돌리고 몽골로 들어갔지요. 여기서 제 형제들을 많이 만났어요. 온양교통도 있고 영등포 안내판을 단 친구 만났어요. 잘 살고 있는 걸 보니 엄청 좋던 걸요. 다시 러시아로 들어와 하바롭스크를 지나면서 부터는 그저 남쪽으로 달리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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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그리고, 드디어, 마침내, 결국 8월 5일. 저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어요. 아메리카를 지나 대서양을 건너 아프리카와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해 대륙의 동쪽 끝에 선 거죠.
거짓말처럼 앞에 동해가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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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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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 기자 = newnew9@joongang.co.kr
사진 = 임성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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